사회가 발전하면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진입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그만큼 문화 분야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셈인데 이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김동언 교수는 5일부터 12월까지 매주 격주 화요일마다 독자들에게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로 문화 관련 최근 경향과 문제점 등 다양한 이슈를 들려줄 예정이다.
현재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 2008년부터 수년간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총괄 기획했으며 로봇 ‘에버’를 주인공으로 한 창극을 선보이는 등 문화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김 교수와 함께 문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봄이 왔다. 3월이면 우리 일상과 마음은 이미 봄날의 생기가 가득 차오른다. 공연장의 봄은 신춘음악회로 시작한다. 3월이 되면 대부분의 공연장에 신춘음악회를 알리는 각종 홍보물이 나붙고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친다. 본격적인 신년 프로그램의 출발점이 되는 신춘음악회는 참신하고 다양한 공연장의 자체 기획프로그램에 봄이라는 계절의 후원을 더한 첫 번째 공연 상품으로 무대에 오르고, 많은 음악가나 단체들 역시 의욕적으로 공연을 마련한다.
문화예술기관, 공연장, 언론사 등이 주최하여 음악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음악가들에게 데뷔 무대를 제공했던 동명의 행사도 신춘음악회였다. 공연장 여건이나 음악 활동 환경이 여러모로 열악했던 시절, 신인 발굴을 위한 신춘음악회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무대가 되었고, 명망 있는 음악가로 발돋움할 중요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 필자를 비롯한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서 일하려는 꿈을 품고 예술경영을 공부하거나 현장 입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이렇듯 신춘음악회는 우리의 음악 수준을 높이고 공연장이 발전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지난 주말, 한 공연장의 신춘음악회를 다녀왔다. 공연 시작 전, 겨울 동안 만나지 못했던 문화예술계 지인들과 모처럼 반가운 안부를 나눴다. 대부분 7,80년대 푸른 꿈을 안고 공연예술계 일을 시작하여 수십 년간 활약해 온 중진들이다. 오랜 세월 공연장에서 일하며 우리나라 공연예술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분 중 많은 수가 지금은 어찌하다 보니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잘못 돌아가는 작금의 문화예술계 인사 관행이 속내를 불편하게 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문화재단과 주요 공연장에서 벌어진 기관장과 예술조직 및 단체장의 최근 인사 행태야말로 참사 수준이라고 할 만큼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서 벌이는 논공행상의 인사 관행 수준이 도를 넘어 상식 이하로 전락했다. 지역의 문화재단 대표를 뽑는 선임 과정과 결과에 파행이 반복되면서 지역문화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양과 무늬만 공모일 뿐,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만들어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방식에 신춘음악회 로비에서 만난 공연예술계 중진들은 모두 들러리만 서고 말았던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인사를 지역의 단체장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대표 자리에 앉힌다고 해서 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인사 방식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가져왔는지는 이미 학습 된 사례들만으로도 수두룩하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이러한 보은 인사나 낙하산 인사가 지역문화재단과 예술단체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의 중심이 되고, 법인으로 독립된 문화재단이 지자체의 택배회사나 외주업체가 담당하는 심부름 역할만을 하게 하여 조직 전체가 무기력에 빠지고 퇴행을 일삼는 심각한 상황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자치단체장이 사유화할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자행하는 지역문화재단과 예술단체의 파행적인 인사 방식은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봄이 오고 신춘음악회가 열리지만, 이 생각만 하면 날씨도 마음도 여전히 봄 같지가 않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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