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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달항아리 최고 경매가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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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달항아리 최고 경매가를 보면서

지난 달 26일 높이 45cm 백자대호(달항아리)가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도자기 최고 경매가를 갱신하며 31억 원에 낙찰됐다. 엄청난 몸값이다. 보름달처럼 풍만하고 넉넉한 형태에 담백한 유백색이 특징인 달항아리. 그 중 제작기법이 까다롭고 왕실 행사에 주로 사용되었던 높이 40㎝ 이상의 대형 달항아리는 국보와 보물 등을 포함해서 20여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같은 경매에서 김환기의 그림도 9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달 17일에는 김환기의 ‘항아리와 날으는 새’가 케이옥션 경매에 등장한다고 한다. 추정가 11억~17억. 푸른색으로 가득 찬 화폭 속에 청아한 달항아리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한 마리 새. 달항아리의 몸값이 이리도 높고 오래도록 각별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은 우리 민족에게 그저 자연물 중의 하나가 아닌 정신문화와 생활문화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그 무엇이다. 동양사상에서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은 천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달(月)과 해(日)는 음과 양을 상징하며, 수많은 별들 중에서 화성(火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금성(金星), 토성(土星)이라 이름 지은 다섯 개의 움직이는 별을 오행(五行)이라 불렀다. 음양(蔭陽)사상은 밤과 낮, 땅과 하늘, 여와 남, 짝수와 홀수, 어둠과 밝음, 무거움과 가벼움, 추위와 더위 등 세상 모든 것이 대응하여 존재하며 서로 보완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조화롭게 유지하면서 세계를 이룬다는 데에 기초한다. 성경 창세기의 첫 구절에 나오는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는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는 어둠의 혼돈 상태였다. 인간의 출현 이전에 가장 먼저 창조된 하늘과 땅, 빛과 어둠은 결국 음양의 이치가 이 세상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사상에 따르면 동양은 양, 서양은 음으로 구분되며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동양은 음의 문화를, 서양은 양의 문화를 지향하게 된다. 건축물의 경우 서양은 하늘을 지향하고 동양은 땅을 향하는 지향성을 보이고, 춤 역시 서양은 하늘로 치솟는 도약이, 동양은 땅에 발을 단단하게 딛는 동작이 기본이다. 달은 우리 농경문화를 지탱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농사는 달의 삭망주기(朔望週期)를 한 달의 기준으로 하는 음력에 맞추어 진행되었고, 전통사회의 생활문화를 잘 알 수 있는 세시풍속은 음력의 24절기와 명절로 구분 지어져 있다. 달은 연인이고 어머니이다.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통로인 달은 음을 지향하는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상징화된 문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달을 품고 태어난 민족이었던 셈이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1년 중 가장 극성을 피울 양의 기운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음의 기운이 필요하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시달린 뒤에는 달을 보는 피서가 필요하다. 한동안 여름 한낮의 열기 속에서 맹렬하게 펼쳐지던 축제의 기세가 한 풀 꺾이면서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달빛 음악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여름밤 선선한 바람결에 음악을 들으며 ‘달빛’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 오고 있다. 달항아리 경매 소식을 보면서 떠오른 올여름 피서 계획이다. 동네 뒷산으로 강릉 경포대로 지리산 섬진강으로 달마중 가기로.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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