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의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 기대와 아쉬움”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면 개정이 이뤄져 내년 1월1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그동안 지방자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지만, 지방자치법이 현실과 동 떨어지거나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 전면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와 더불어 지방자치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자치단체임에도 법과 제도가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정 내용에 들어간 지방의회를 통한 주민조례발안제도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은 매우 기쁜 일이다.
주민조례발안제도는 주민이 자신의 삶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직접조례를 제정하고 개·폐정하는 제도로서 성숙한 주민자치에 꼭 필요하다. 1999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발안제의 법적 근거는 생겼으나, 현실에서는 입법취지에 맞게 적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상태다. 종전 법률에는 50만명 이상의 대도시에서 주민이 조례를 만들려면 19세 이상 인구의 1% 이상, 50만명 미만 도시는 2% 이상의 연서를 받아 지방정부의 단체장에게 청구하도록 규정했다.
연서를 받는 일은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단체장에게 제출하는 내용이 지방행정의 방향과 다르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여서 그동안의 주민발안제도는 유명무실했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주민들은 의회에 조례 청구가 가능하고, 의회는 절차를 거쳐 지역주민이 직접 만든 조례를 의결할 수 있다.
이제 지방의회에서는 직접민주주의의 성격을 띤 주민발안제도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이 제도를 잘 설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또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진전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다.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파트너이자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견제와 균형의 주체이다.
지방의회는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사권을 가지고 지방정부를 견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함께 하는 의회사무처 소속 공무원은 행정부의 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지방정부 소속이다. 지방정부가 지방의회에 비해 엄청난 정보 인력, 그리고 행정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속 직원마저 의회에 파견시켜 놓은 상황인 셈이다. 만약에 있을 인사 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느 공무원이 의원들에게 좋은 정보와 행정적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지난 30여 년 동안 지방자치제도가 뿌리 내리면서 지방의회의 역할과 비중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이미 의원 혼자서 감당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회의원이 스스로 임면권을 가지며 동고동락하는 10명 내외의 별정직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의정활동을 하는 것에 비하면 지방의원은 그야말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방의회의 인사권 독립은 가뭄에 만난 단비와 같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제 의회에서만 근무하는 의회직류의 공무원이 생기면 집행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이번 인사권 독립에서 의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공무원은 국회 보좌진과 같이 정치활동을 포함한 의정활동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별정직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닌 일반직만 해당하기에 지방의원을 보좌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개정안에 담긴 정책지원 전문 인력은 의원 1인당 1인 이상의 보좌 인력과 이들이 국회의원 보좌진처럼 정치활동 전반에 관한 직무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초 전국지방의회가 요구해왔다. 하지만 직무범위가 제한적인 1인당 0.5명으로 개정이 이뤄진 상태다. 자칫 허울뿐인 인사권 독립에 머무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올해 30살인 지방자치는 나름의 성과와 한계를 가지고 발전하고 있다. 주민생활과 가장 밀접해 있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지방재정과 지방사무의 확대와 독립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이번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을 계기로 한 걸음 더 전진하는 지방자치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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