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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중고차 사고 보니... ‘아車’ 물 먹었네
사회 팩트체크

[팩트체크] 중고차 사고 보니... ‘아車’ 물 먹었네

사고 이력 안남아 추적 어려워...여전히 암암리 시장 유통 ‘주의’
침수차량 1만2천여대...불법방지 폐차 의무화했지만 자차보험 미가입땐 소유자 재량

최근 수도권에 내린 집중호우로 1만2천여대의 침수차량이 발생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침수차의 중고차시장 불법 유입을 막기 위해 전손 침수차량(수리비가 보험금을 넘을 때)의 폐차를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침수차가 암암리에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여기에 침수차량을 명확히 구분짓는 뚜렷한 기준도 없다. 이런 가운데 제11호 태풍 ‘힌남노’ 북상으로 또다시 차량 침수피해가 우려되는 상황. 본보 팩트체크팀은 잇따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침수된 차량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 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침수차량 불법 유통

5일 화성시의 한 폐차장. 지난달 폭우로 물에 잠겼던 흔적이 역력한 마티즈 차량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천장까지 잠겼던 차량 내부는 토사로 뒤덮여 있었고, 문짝을 해체하자 마른 흙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곳의 공장장 A씨는 “올해는 수도권 침수차량이 유난히 많아 작업량이 상당하다”면서 “작업 이후 문짝이나 룸미러, 타이어 등 재활용이 가능한 부품들은 수리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수출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침수차는 통상적으로 손해보험사들이 임시 보상서비스센터로 운반한 후 보험사의 경매를 거쳐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폐차업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폐차장으로 이동된 차량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 압착기로 눌러 고철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자차보험에 가입된 차량은 폐차가 결정되면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 중고차 시장에 유입되기 어렵다. 하지만 자차보험 미가입 차량의 경우 폐차 처리가 차량 소유자의 재량에 달려 있다. 이 차량들은 사고 이력조차 남지 않아 추적이 어려워 침수 사실을 숨긴 채 개인 중고 거래 등을 통해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 자차보험 가입률은 70% 수준으로, 30%가량의 차량은 침수차여도 추적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에 정부에서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5일 ‘침수차 불법유통 방지 방안’을 마련했다. 침수차에 대한 이력관리체계를 보강해 국민들에게 침수차 정보를 최대한 전달하겠다는 것인데, 국토부는 전체 차량의 85% 수준까지 이력을 관리하는 게 목표다. 자차보험이 가입된 차량(70%)과 자차보험 미가입 차량(30%)의 절반가량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15%라는 사각지대가 남게 된다. 올해 1분기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2천507만180대) 기준 376만여대에 달하는 양으로 경기도 기준으로는 약 94만7천대다.

도내 폐차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에도 자차보험이 가입된 70%가량의 차량 중 침수차는 비교적 잘 관리가 되고 있었고, 이번 국토부 대책에 포함된 것은 남은 30% 중 절반에 불과하다”면서 “여전히 빈틈이 너무 많다. 관련 법안들이 모두 정비되더라도 침수차가 불법유통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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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화성시내 한 폐차장에서 지난달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입은 침수차에 대한 폐차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폐차 기준 오리무중

'침수차 폐차’ 처벌 강화에도… 불법유통 막을 방법 없다

정부가 전손 침수차량의 폐차를 의무화했지만, 정작 침수차량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미폐차 침수차’가 불법 유통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5일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18일까지 집계된 침수차 피해 건수는 1만2천여건, 보상금액은 약 1천570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8일부터 기록적인 폭우가 수도권에 쏟아진 만큼 침수차 역시 대부분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에서 나왔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현행 자동차관리법 26조2항을 살펴보면 ‘침수로 인한 전손 처리 자동차의 소유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간 내에 해당 자동차를 자동차해체 재활용 업자에게 폐차 요청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정부 역시 침수차의 불법 유통을 막고자 지난해 4월 전손 침수차량의 폐차를 의무화하고 폐차 이행확인제를 실시하는 등 처벌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폐차 여부를 결정할 공식적인 침수 기준과 침수차량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장에서 혼란을 겪는 일이 많다는 데 있다.

실제 경기일보 취재 결과, 도는 이번 폭우 이후 도내 시·군과 함께 미폐차 침수차와 관련한 단속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발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침수차량 폐차 의무화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토부는 매매업자가 침수 사실을 은폐하고 중고차를 판매할 경우 곧바로 사업을 취소하고, 매매 종사원은 3년 간 해당 업종에 일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이 같은 처벌 강화는 모두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선행 과제가 필요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김포을)은 “미폐차 침수차와 관련해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안전이 크게 위협 받을 것”이라며 “꼼꼼한 기준과 관련 법령을 마련하는 동시에 자동차 업계를 지원할 방안 등도 다방면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미폐차 침수차와 관련해 도 차원에서 따로 통계 자료를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도민 안전과 관련된 부분인 만큼 할 수 있는 선에서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금지구역 불법 주차 보상 안돼요”

창문 개방 등 부주의도 포함 탈출 위해 문 열었다면 가능

보험에 가입이 돼 있지 않거나 개인 부주의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면 보상 대상에서 제외돼 운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5일 손해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손해보험협회는 지난달 24일 침수차량 피해와 관련한 보상 프로세스 점검 간담회를 열고, 침수차량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보상처리와 중고차 시장에서 침수차량의 불법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사후처리 프로세스를 점검했다.

이들 기관은 사고접수 이후 보험금 지급까지 통상 10일이 소요되는 기존 프로세스를 대폭 줄이고,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 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 같은 조처에도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 특약이나 차량 단독사고 손해배상 특약에 가입돼 있지 않은 운전자들은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차금지구역 등에 불법 주차를 했거나 창문이나 선루프를 열어 놓는 등 개인 부주의로 침수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침수피해가 예상됐거나 통제된 곳에서 피해를 받아도 보상이 제한될 수 있다.

다만, 차량이 물에 잠기면서 문이나 선루프를 열고 탈출하는 행위는 보상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손해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집중호우가 예보되고, 통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차량을 주차해 피해를 봤다면 통상 보상이 어렵다”면서 “현재 가입률이 70% 수준인 자차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향후 침수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팩트체크팀=양휘모·정민훈·임태환·한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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