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난임 지원 사업 확대에도... 병원 한 번 찾을 때마다 경제 부담 커 난임 치료 3일 이내 휴가도 ‘그림의 떡’... 경기 45.7%·인천 47.2% 절반도 못 미쳐
저출생 극복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정부와 지자체의 난임 지원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저출생의 위험 신호가 커진 상황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난임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부부가 늘자 정부는 2017년부터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또 ‘기준중위소득 180% 이하 가정 및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인 가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추가 지원을 하고 있다. 만 44세 이하의 신청자는 체외수정의 경우 신선배아는 최대 9회·110만원, 동결배아는 최대 7회·50만원, 인공수정은 최대 5회·3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난임부부들은 여전히 경제적인 부담을 토로한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본인부담률이 낮아졌지만 난자 채취 방식 등에 따라 적용받을 수 있는 횟수가 제한돼 있고, 이후엔 시술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또한 ‘중위소득 180% 이하’ 가정에만 시술비를 추가 지원하다 보니 상당수 맞벌이 부부는 시술비 추가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난임 시술 사업이 지난해부터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거주지에 따른 지원 사업 역차별 논란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난임 시술 사업과 관련해 전국 17개 시·도에서 보건복지부의 공통 지침과 지원 범위·내용을 준수하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선 자율로 조정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광주광역시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보험 적용 횟수를 모두 소진하면 연 4회까지 차등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선 횟수 제한 없이 시술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서울시는 신선배아에 한해서 건강보험 적용 횟수 소진 시 소득 기준 없이 추가 시술비를 1회 지원(최대 180만원)한다.
전북은 난임 관련 시술 횟수를 모두 사용하면 추가 2회를 지원(소득 기준 180% 이하는 110만원, 초과자는 90만원 최대)하고 부산, 대구, 세종, 전남, 경북, 경남에선 소득 기준을 모두 폐지했다. 세종시 관계자는 “시내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고소득자에 맞벌이 형태인 부부가 많아 소득이 높게 잡히다 보니 더 많은 이들이 지원을 받게 하기 위해 소득기준을 철폐했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도와 인천시는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되, 추가적인 지원은 없다. 이에 일부 난임 부부들은 정부 지원을 받고자 소득 수준을 낮추려고 퇴사하거나 휴직을 택하는 상황이다.
시술비 이외에 소요되는 금전적인 부담 역시 난임 부부에게는 큰 짐이다. 시험관 시술 절차를 밟으면 병원 별로 난자 채취 및 동결 방식에 따라 결제가 다르게 이뤄지는데, 본격적인 시술에 앞서 진행되는 검사와 주사비, 약값 등으로 병원을 한 번 찾을 때마다 30만원 이상의 비용을 내기 일쑤다.
안양에 거주하는 직장인 B씨(37)는 “맞벌이 부부인 탓에 기준중위소득을 초과해 난임 보험급여 외엔 받는 혜택이 없다”며 “정부의 예산은 늘어나지만 정작 아이를 가지려 노력하는 입장에선 난자를 채취하는 날엔 정자 채취 비용, 약값 등을 포함해 하루에만 60여만원을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B씨는 “검사부터 주사, 채취, 냉동, 약값 등 한 차수에 많으면 200여만원을 쓰고 있는데, 아기를 꼭 갖고 싶은 이들에게만큼은 첫 아이만이라도 지원을 확대해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난임 환자가 늘고 있지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근무 여건 등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현재 근로자는 난임 치료를 위해 3일 이내의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행한 ‘난임여성노동자의 난임치료휴가제도 인식 및 이용실태와 정책과제’을 보면 임금노동자 527명 중 21.3%만이 “난임치료휴가를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21.6%는 “휴가 제도가 있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경기도 소재 사업체 10만9천507개 가운데 난임치료휴가제도를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5.7%(5만6개) 였으며 인천은 47.2%(2만484개 중 9천678개)로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이는 인접한 서울시(56.0%)와 강원도(52.5%) 보다 낮았고, 가장 응답률이 높은 충북(71.2%)과 비교하면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난임을 전문으로 치료해온 양광문 수지마리아병원장은 “간절하게 임신을 바라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은 만큼 환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지점, 즉 임신 여부 및 가능성에 영향을 크게 주는 요인을 파악해 대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전히 난임 시술 환자에 대한 사회 제도적 지원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시술 끝에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엔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게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재 난임 지원 정책은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아 문제”라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관계자는 “출산 이전과 이후에 영향 주는 요인들 가운데 어떤 점을 개선할지 찾아보겠다. 건강보험료 적용 범위, 시술비 지원 등의 금전적인 확대도 논의 대상”이라며 “뿐만 아니라 난임 전문 상담 센터 확대 개소, 안전한 출산을 위한 난임 정보 제공 및 캠페인 강화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 제언 “저출생 해결, 사회 전반 대대적 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출산 기피 요인과 환경을 바꾸는 동시에 ‘아이를 낳을 의지가 있는 부부’나 사람에 대한 집중 지원,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 마련 등 사회 전반의 대대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문경용 아이오라 여성의원 원장은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부부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시술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지원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술비 지원 외에도 가임력 보존에 도움이 되는 지원도 필요하다. 결혼 후가 아니더라도 난임 검사를 미리 받고 고위험군을 선별해 치료한다면 이후 임신하고 싶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착된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비혼 출산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덜어주는 것이 저출생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란 의견도 나왔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비혼 출산 문제가 반드시 건드려져야 한다”며 “2030세대의 자유로운 성생활 및 비혼주의 등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서 사회가 정한 정상적인 가족 형태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가졌다면 출산하고 육아하도록 국가가 책임진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원장은 “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만큼 특정 부분을 건드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저출생으로 인한 위험과 어려움을 인지해 다 같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의 가장 큰 요인은 불확실성이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및 일자리를 제공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금전적 지원을 하는 저출생 정책들은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빛을 발하지만 출생은 물론 결혼마저 자기 일로 생각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겐 효과를 볼 수 없는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