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정의는 친절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인천시론] 정의는 친절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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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좋아하는 니체의 말이 있다.

‘정의로운 사람은 빠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자는 스스로 서둘러 판단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자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이고, 정의로운 자는 남에게 친절한 자다.’

결국 정의라는 것은 남에게 친절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의로운 자는 강력하고 우뚝하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남을 복종시키고 목표를 향해 주변도 둘러보지 않는 사람을 연상한다.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는 어떠한 편견도 개입하지 않도록 두 눈을 붕대로 동여맨다. 정의는 편이 없다. 눈가리개를 풀고 나와 너를 가르기 시작하면 정의는 흉기가 된다.

정의(正義)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정의(定義)했지만 파스칼이 말했듯이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는 저쪽에서의 불의다”는 말처럼 상대적인 것이고 잘못하면 권력의 독버섯이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말보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가 더 중요하다. 완벽한 정의가 무엇인가를 찾기보다는 정의란 불완전한 것임을 인정하고 부정의(不正義)를 없애는 데 관심을 둬야 한다.

정의의 실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오류는 특정 계급의 정의를 전체의 정의로 눈속임하는 일이다.

철학의 내용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늘 변화했듯이 ‘정의’ 역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발전에 부응해 나타나는 산물이다. 정의는 인간의 욕구 가운데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갖는다.

정의를 너무 강조하면 문제가 생긴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야’ 또는 ‘우리는 정의로운 정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정의로운 게 아니다.

그런 사람은 100% 순도의 정의를 찾기 위해 누군가를 계속 공격해야 한다. 김정탁 교수는 “인위적인 정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둥근 원을 더 둥글게 만든다고 계속 깎다 결국 모를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진정 정의로운 사람은 ‘나는 정의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함부로 정의를 외치고 자신을 ‘정의의 파수꾼’으로 임명하게 되면 망나니 칼춤을 추게 된다.

관용이나 사랑이 빠진 정의는 위험하다. 상대방에 대한 보복으로 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8년간 공부했던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는 “한국은 화려한 도덕 쟁탈전 사회”라며 “도덕을 가지면 모든 걸 독차지하는 도덕, 권력, 부(富)가 삼위일체인 독특한 사회”라고 했다. 여기서 도덕은 정의와 의미가 같다.

정의는 한 사람이나 특정 세력이 독점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이 정의이고 타인은 악이란 생각은 위험하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짓누를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조리와 부패가 정당화됐다. 아직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겠다’는 드라마 대사가 난무한다.

정의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는 인간을 사랑하는 의무와 책임이다. 정의는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가치가 되지 못한다.

증오와 복수를 가장한 정의는 악의 원천이 된다. “당신의 적이 얼마나 사악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악이 뿌리내린다는 것을 안다.” 입만 열면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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