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위해 대표 작품 만드는 권영진 칠기 명장, 멸종위기 업종에 ‘희망 불씨’ 키우다
후손 위해 대표 작품 만드는 권영진 칠기 명장, 멸종위기 업종에 ‘희망 불씨’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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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옻칠 경력, 전국무대서 상 휩쓸어
“대학 과목 없어지고 젊은 층 관심 사라져”
딸에 기술 전수… 전통공예 저변확대 앞장
▲ 권영진 명인이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건칠(乾漆) 장구’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50여회의 건칠과 토분ㆍ숯가루를 활용해 만든 이 장구는 1년 간의 제작과정을 거쳐 모양뿐만 아니라, 좋은 소리까지 잡아낸 권 장인의 보물 1호다. 하지은기자
▲ 권영진 명인이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건칠(乾漆) 장구’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50여회의 건칠과 토분ㆍ숯가루를 활용해 만든 이 장구는 1년 간의 제작과정을 거쳐 모양뿐만 아니라, 좋은 소리까지 잡아낸 권 장인의 보물 1호다. 하지은기자

“후손을 위해 이 시대 대표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옻칠을 하고 조개껍데기를 붙여 장식한 우리의 전통 공예 ‘나전칠기(螺鈿漆器)’ 권영진 명인(61ㆍ대한민국 칠기 명장 10-18호, 중요무형문화재 113호 칠장 전수자)의 포부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권 명인은 아무것도 모르던 10대 시절,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사 온 후 일상이 된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전통공예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1987년 국가무형문화재인 정수하 선생(113호)을 만나 옻칠을 시작하게 됐고, 가슴속에 명장의 꿈을 그렸다.

10여 년간 기술을 연마한 뒤 처음 출전한 2001년 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으며 자신감을 얻은 권 명인은 수많은 공모전에 참가해 상을 휩쓸었고, 그렇게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결국 2010년,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명장의 자리에 올라섰다.

▲ 구리시 수택동에 자리한 공방(工房)에서 권영진 명인이 제자에게 옻칠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하지은기자
▲ 구리시 수택동에 자리한 공방(工房)에서 권영진 명인이 제자에게 옻칠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하지은기자

“수입은 모두 공모전 참가비로 사용할 만큼, 많은 투자와 노력을 했어요. 전국 무대를 돌며 받은 상이 50개가 넘을 정도에요.”

50여 년의 옻칠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이제 안승남 구리시장이 그의 능력에 대한 홍보대사를 자처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2016년엔 서울여대에서 지도교수를 맡아 제자들의 전국대회 우승 성과를 이끄는 한편, 구리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서 제자를 자청하는 시민에게 기술도 전수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업적과 성과를 이룬 그에게도 큰 고민거리가 있다. 사라져가는 업계의 명맥과 고령화 때문이다. 권 명인은 “나전칠기 업종의 97%가 떠나가는데다 대학에서 과목도 없어지고 있다. 10년 후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나올 수나 있을까 걱정이 크다”면서 “30~40대 젊은 층이 배우면 좋겠지만, 돈이 되지 않아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딸 미정씨(39)가 옻칠의 명맥을 이으며 멸종위기의 업계에 희망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미정씨 역시 전국 칠목공예 등 각종 대회에서 대상ㆍ장관상을 받을 만큼 재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권영진 명인은 “먼 훗날 후손에게 기억되고 역사에 남는 물건을 만드는 게 꿈이자 목표”라며 “사라져가는 전통공예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권영진 명인과 딸 미정 씨가 각각 자신이 만든 최고 애장품을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은기자
▲ 권영진 명인과 딸 미정 씨가 각각 자신이 만든 최고 애장품을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은기자

구리=하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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