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장애인기능경기대회 필기시험 폐지 환영
[기자노트] 장애인기능경기대회 필기시험 폐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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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장식·네일아트에 재능 있어도
국가기능사 수준 문제 못풀면 탈락
장애 유형 고려 안한 제도는 ‘차별’

대학시절, 5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14살 자폐아를 만난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알파벳’에 관심이 많았다. 길을 걷다가도 영문이 적힌 간판이 보이면 걸음을 멈춰 10여 분을 보냈고, 멀리 떨어진 자판기 속 ABC가 적힌 음료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봉사활동하면서 그와 사흘을 붙어 있었지만 목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했을 때, 갑자기 “거북이가 영어로 뭐에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해 답을 못하자 그는 다시 입을 닫고 손에 쥔 ‘쿠키’ 껍질만 바라봤다.

수년이 지나 그의 신체적 나이가 20살이 됐을 무렵 문득 안부가 궁금했다. 여전히 알파벳을 좋아하는지, 몸은 건강한지 묻자 그의 부모는 “모두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덧 쉰을 넘기게 된 그의 부모는 변했다. 아이의 사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알파벳 외에도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관심사를 찾아야만 했고, 성인이 된 아이가 훗날 부모 곁을 떠나게 됐을 때를 걱정해 직업적 능력을 키워야만 했다.

이때의 기억으로 나는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예선 필기시험 논란을 살펴봤다. 장애인의 기능 향상을 촉진하고 사회 참여를 실현하겠다는 이 대회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 취업 기회를 확대하고 직업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음에도, 지난해부터 장애 유형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필기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화훼장식 직종에 출전하는 지적장애인도, 네일아트 직종에 출전하는 지체장애인도 국가기능사 수준의 이론 문제를 풀어 상위권에 들어야만 실기시험의 자격이 주어지는 식이었다.

과거 만났던 알파벳 소년이 꽃꽂이에 흥미ㆍ재능을 보여 대회에 출전했더라도, 그는 문제가 영문으로 출제되지 않는 한 시험지에 눈길조차 주지 않아 예선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17개 시ㆍ도의 장애인단체를 취재하면서 들었던 한 지자체 관계자의 말이 떠오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지만 사실 장애 유형별로 어느 정도 차이는 둬야 해요. ‘장애인’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비장애인’과 비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차별이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권 감수성이죠”.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논란이 된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예선 필기시험을 다음 대회부터 ‘폐지’하기로 한 결정에 비로소 환영의 뜻을 전한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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