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보수의 분열과 한풀이
[변평섭 칼럼] 보수의 분열과 한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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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김종필 前 국무총리)는 그야말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음모와 배신이 찌들어있는 정치를 하면서 그가 겪은 회한을 말하라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생전에 한 언론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거나 배신한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그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하지만 JP는 그보다 먼저 92세를 일기로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인생은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1952년 그 유명한 ‘거창 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국회에서는 서민호 의원을 조사단장으로 현지에 파견했다. 서 의원은 1903년 전남 고흥 출신으로 미군정(美軍政)하에서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거쳐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조사활동 중 현역 육군대위의 암살위협에 갖고 있던 권총을 발사하여 대위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서 의원이 군법회의에 의해 구속됐는데 국회는 정당방위라는 서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석방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부는 국회의 결의를 거부하였고, 서 의원은 4ㆍ19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8년이나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손자가 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첫째 손자의 이름을 ‘치승(治承)’이라 했고, 둘째는 ‘치만(治晩)’이라 지어 보냈다고 한다. ‘치승(治承)’은 이승만 대통령의 ‘승(承)’을, ‘치만(治晩)’ 역시 그 이름의 끝 자를 딴 것으로 이승만을 다스리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그대로 호적에 올렸는지, 그냥 하나의 정치적 결기를 표현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긴 세월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그래서 자신의 정치활동이 중단됐음이 한(恨)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출감 후 5ㆍ6ㆍ7대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되어 국회 부의장을 하고 대통령 후보에까지 올랐다 사퇴하는 등 정치가도를 달렸으나 72세에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만약 8년을 교도소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더 화려한 결과를 가져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JP의 경우처럼 인간의 운명은 자기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지금 우리 정국(政局)은 벌써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로 몰입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내년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하고 작금의 정치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광화문 광장의 천막 문제로 연일 서울시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리공화당’과 지금 수감 중에 있는 박근혜 前 대통령과의 관계일 것이다.

박근혜 前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사법당국에 의해 수형생활을 하고 있지만 선거라는 것이 도덕 교과서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안개처럼 보이는 ‘박근혜-우리공화당’의 등식이 확실해지면 보수 지지층이 겹치는 영남권에서 자유 한국당은 의외의 변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바른미래당’ 역시 보수층과 겹친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야당(野黨) 복(福)’이 있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특히 박근혜 前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 지역에는 반드시 공천자를 낼 것이라니 민주당으로서는 속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과 한(恨), 보수의 분열… 그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 한(恨)은 한(恨)일 뿐, 정치의 동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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