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제점 드러난 수사, 사실무근 추론 남발 / ‘화성사건에 반성해야 할 사람들’ 자중해라
[사설] 문제점 드러난 수사, 사실무근 추론 남발 / ‘화성사건에 반성해야 할 사람들’ 자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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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지난날의 무용담 꺼내듯 자화자찬할 일인가. 마치 영화의 속편 설명하듯 관조적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을 땐가. 이건 아닌듯하다. 33년 미제 사건의 용의자 특정은 분명 경찰의 쾌거다. 30년간 묻어뒀던 옷가지로 풀어낸 집념의 결과다. 그렇다고 사상 최악의 연쇄살인 사건에서 밝혀지는 수사 맹점까지 미화할 일은 아니다. 또 ‘영구 미제’라는 가설하에 무책임하게 남발했던 거짓말 주장들을 그냥 덮고 갈 일도 아니다.
용의자 이춘재는 연쇄살인사건 내내 범행 지역에 살고 있었다. 1963년에 태어나 1993년 4월 청주로 이사할 때까지다. 10차 사건 1년 전에는 강도 예비ㆍ폭력 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거주지와 연령이 용의자 추정대와 비슷했다. 폭력 범죄 이력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이유는 혈액형이다. 경찰은 범인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고, 이춘재는 O형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범한 오판이다.
더 가슴 칠 순간도 있다. 이춘재는 청주로 이사한 뒤 처제를 살해했다. 성폭행 후 살해, 사체 유기 등이 화성연쇄살인과 닮았다. 청주 경찰서는 이춘재가 살던 화성집을 압수수색했다. 이를 알게 된 화성연쇄살인 수사본부가 ‘화성으로 데려와 달라’고 했다. 청주 경찰은 ‘직접 데려가라’고 했고, 이후 아무 진척도 없었다. 왜 데려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증언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 같았으면 당장에 부실수사 책임을 물어야 할 중대 실수다.
무책임한 여론 남발도 짚고 가야 할 부분이다. 한 언론사는 수년 전 방송에서 범인의 거주지로 수원을 지목했다. 사건 발생 지역이 수원을 오가는 국도였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기존과는 색다른 접근이라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원지역 주민들에게는 여간 불쾌한 가정(假定)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 화성ㆍ수원연쇄살인사건으로 바뀔 수도 있는 주장이었다. 이춘재는 수원에 거주한 적 없다. 거짓말이다.
강호순에 꿰맞췄던 억지도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10명의 여성을 살해했다. 이 강호순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계시키는 주장이었다. 강호순의 연령대가 비슷하며, ‘고운 손마디’ 등이 유사하다는 근거였다. 이 주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퇴역 형사까지 TV에 나와 거들었다. 한동안 강호순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가정하는 여론이 나돌았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건의 본질만 뒤범벅 해놓은 궤변이 됐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남긴 옳지 않은 반향이 있다. ‘사람 죽인’ 사건이 지나치게 희화화됐다. ‘영구미제’라는 한계 속에 갖은 낭설이 유포됐다. 그러다가 범인이 특정됐다.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서 결정적 수사 오류, 무책임한 여론 남발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데도 무책임한 말 잔치가 여전하니 걱정이다. 반성해야 할 수사 책임자들이 영웅담을 쏟아내고 있고, 부끄러워해야 할 언론이 시치미떼고 다른 소리를 한다.
이러면 안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미제 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찰도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 등에 대한 재수사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만큼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계된 지난날의 실수를 냉정히 짚고 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책임 있는 사람들과 반성해야 할 사람들의 자중(自重)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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