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남한산성의 선택, 좋은 전쟁과 나쁜 평화
[천자춘추] 남한산성의 선택, 좋은 전쟁과 나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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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약 380여 년 전. 외교술에 능했지만, 광해군은 폭정으로 물러났다.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명분에 집착하여 친명배금(청) 외교 정책을 취한다. 그 결과,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불과 한 세대 전에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으로 임란의 교훈을 남겼으나 무색했다. 적의 기동마저 살피지 못한 정보로, 인조는 미처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 행궁으로 피신했다. 변변한 대비책 하나 없었으니 항전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항복했다.

당시 명분을 내세운 항전파와 실리를 앞세운 화친파의 쟁론은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다. 대표 주자는 김상헌과 최명길이다. 훗날, 이 둘이 청의 감옥에서 주고받은 시가 있다. 서로 나라를 위했음을 인정한 듯한 화해의 시담이다. 이태 전에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도 주목을 받았다.

김상헌: 양대의 우정을 찾고(從兩世好), 백 년의 의심을 풀었소(頓釋百年疑). 최명길: 그대 마음 돌 같아 끝내 돌리기 어려웠고(君心如石終難轉), 나의 도는 둥근 꼬리 같아 때에 따라 돌았을 뿐이었소(吾道如環信所隨).

영의정 이경여는 ‘擎天大節濟時功-하늘을 떠받드는 큰 절개요(김상현), 한때를 건져낸 큰 공적일세(최명길)’라고 지천유사에서 다소 정치적 평가를 했다. 또 택당(澤堂) 이식(李植) 같은 이는 뼈있는 평을 하기도 했다. “청음(淸陰,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나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비록 지조가 높다 하나, 이 또한 완성군(完城君, 최명길)이 열어놓은 남한산성의 문으로 나왔다.”

둘 중 누가 옳았을까? 둘 다 아니다. 국난을 당하여 두 가지 정책 중 오직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역사는 이미 어리석고 실패한 역사다. 안일과 무능의 끝점에 이른 자업자득의 결과로 ‘죽음이 예고된, 닫는 성문’과 ‘치욕이 예정된, 여는 성문’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든 이미 불행이다. 최선도 최고도 될 수 없는 갑론을박에 불과하다는 거다. 명분 좋은 전쟁이나 파국을 막는 나쁜 평화는 결코 선택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 선택이 오기 전에 늘 방비하라는 것이 누대의 교훈 아니었던가? 이 시대도 ‘북핵 동란’, ‘사드 호란’, ‘독도 왜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미 불씨는 상존하고 있는데 말이다.

남한산성의 바람은 아직도 치열하고도 매섭다. 유사시 국토 전체가 남한산성일 수밖에 없다. 산성을 떠나면서 아린 옛 역사를 애써 지워본다. 그런데 스치고 지나는 텍스트 하나, 3년 전 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글을 남겼다.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아! ‘가장 나쁜 평화’라… 하필.

이만식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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