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사라진 사다리-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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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500만원으로 시작.’ 김우중을 상징하는 말이다. 대우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건 1967년이다. 다니던 섬유수출업체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와 손잡고 만든 대우실업이다. 당시 투입한 자본금이 500만원으로 알려진다. 창업 첫해부터 58만 달러를 수출했다.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납품했다. 수출이 곧 국력이던 시절이다. 창업부터 그는 주목받는 기업인이었다. 나이 30세 때다.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바꿨다. 1976년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다.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 주력으로 키웠다. 창업 15년 만에 대우는 국내 4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주목받았던 건 해외 시장 개척이다. 1969년 이미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지사를 세웠다. 1998년 말 대우는 396개 현지법인을 보유했다. 해외 고용 인력만 15만2천명에 달했다. ▶박정희와의 특별한 관계가 많이 얘기된다. 그는 ‘나를 자식처럼 여겨준 대통령’이라고 했다. 곡절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 은사가 김우중의 부친이다. 김우중과의 첫 만남에서 박 전 대통령이 물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세계를 돌며 무역업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 김우중 답변에 박 전 대통령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육당 최남선의 ‘한국해양사’였다. 대우의 급성장에는 이런 권력과의 연(聯)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그 권력이 종단엔 역풍으로 바뀌었다. 바뀐 권력이 대우를 침몰시켰다. 1998년 외환위기의 충격을 대우가 그대로 받았다.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공중 분해됐다. 대우의 성공도 ‘정경 유착’의 적폐로 재명명됐다. 그는 부당하다고 했다. 평생을 그렇게 말했다. “외환위기 때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방침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책임을 기업에 돌리는 등 잘못된 구조조정을 시행했다”(2014년 연세대 특강 중에서). ▶기업 흥망에는 수 없는 원인이 있다. 대우의 성공을 정경 유착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대우의 몰락도 권력 횡포로만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남긴-특히 70, 80년대를 청춘으로 살았던 세대에게- 분명한 기억은 있다. 김우중은 그 시절 청년들의 꿈이었다. ‘나도 500만원으로 70조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의 모태였다. 지금은 사라졌다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다. 어찌 보면 그 사다리의 마지막이 곧 김우중 대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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