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새해를 세간에 그림으로 그리면서
[삶과 종교] 새해를 세간에 그림으로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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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시작되고 10여 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한해가 흘러갔다는 아쉬움과 내일의 희망을 꿈꾸면서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도 얼마가 흘러갔다는 의미이리라. 얼마 전의 언론의 기사에서 서울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역동적인 도시라는 기사 일부를 보면서 한국 국민은 여전히 부지런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생태를 지닌 존재임을 다시 느껴보았던 순간이었다.

오늘도 사찰의 일주문을 넘어서 바라보면 승가와 재가의 경계가 존재하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분주하게 활동하는 시장의 역동성을 바라보게 된다. 사찰의 위치가 도심 속에 자리 잡은 탓인지 산사의 근엄함과 고요함보다는 인간의 세상을 지금의 시선에서 바라볼 기회를 준다.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는 다양한 군상의 모습과 현상들을 체험한다는 것이 수행과 대중교화라는 영역에서 교묘하게 교차하는 느낌이다.

중생계에 존재하는 나는 현재의 위치에서 삶의 흔적을 업이라는 소재로 광대한 세계에 개략적으로 그려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그림의 가운데에는 착하게 그려져서 대중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악한 처신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며, 무의미한 상태로 치부되어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 걸어왔던 길은 다른 존재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삶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기록되고 미래의 종자가 되어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위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것으로 가장 중요한 하나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사랑이 없다면 물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나, 지나친 자기 사랑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며칠 전에도 지구촌에 국가 간의 갈등으로 인한 비행기의 피격으로 무고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표면적인 이유로 정치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으나, 인간의 본성에서 살펴본다면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집단적인 사회문제로 발전되고 정치공학적으로 가공되어 일어난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문화와 정신적인 문화를 조화롭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지금까지도 두 영역에는 합일될 것 같으면서도 부조화가 나타난다. 지금도 지구촌이라는 언어의 유희 속에서도 서로 이익과 가치의 우선을 내세우며 갈등하고 있고, 화합과 양보보다는 힘의 논리가 앞서는 현실이다. 요즘에 오랜 세월을 덮어두었던 역대 조사들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인간미를 가장 중요시하였던 인간중심의 사상임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부처님께서 인도에 출현하신 것은 2천500년 전이었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스승들께서는 인간중심의 사유를 강조하고 계신다. 이러한 사유는 단순히 불교의 가르침만이 아니고 여러 종교에서도 인간중심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부처의 성품을 간직한 우리는 마음의 근원에서 복잡하고 역동적인 현대를 살아간다는 핑계로 현실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가!

2020은 같은 숫자로 반복되고 있는 한 해이다. 이러한 숫자가 같다는 것에 너와 나라는 수식으로 대입하여 생각한다면 어떠할까? 너와 내가 같다는 의미로 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도 더욱 화합할 수 있고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는 일 년이라는 숫자라고 인식한다면 지나친 자기도취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치신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은 같은 부처의 성품을 가진 존재이므로 이러한 사유를 버리지 말고 화합하라는 뜻이고, 너와 내가 다르게 존재하되 다르지 않다는 사유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하나의 세상에서 공존하는 공동의 업을 지닌 공동체이므로, 광대한 세계 속에 선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세간에 담으면서 2020년에 그려갔으면 한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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