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칼럼] 민주주의를 향한 처절한 투쟁 ‘4·19혁명’
[학생 칼럼] 민주주의를 향한 처절한 투쟁 ‘4·19혁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 건졌네”

4·19혁명의 기념식에서 부르는 ‘4·19의 노래’의 도입부 가사다.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다시 민중의 품으로 되찾으려 투쟁했던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담긴 내용이다.

4·19혁명은 근대 한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다. 1960년 3월, 사건의 시작점이 된 3월 부정선거 이후 민주주의를 향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시위의 시작은 마산이었다. 이승만의 독재를 위해 조작된 3월 선거에서 사전투표, 3인조·5인조 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부정행위가 만연하자 결국 선거에 부당함을 느낀 마산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정부는 일언반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총을 발포했다. 당시 8명이 사망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산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차 의거 이후 마산 중앙부두에서 정부의 최루탄이 머리에 박힌 김주열 학생의 참혹한 시신이 떠오른 것이다. 이 소식이 퍼지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정부의 독재에 모두 일어섰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는 곧 마산 전역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혁명의 시작이었다.

‘피의 화요일’이라고도 불리는 1960년 4월19일, 서울을 비롯한 부산, 광주, 대구, 전주, 청주, 인천 등 약 10만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시작했다. 정부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고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 총격을 난사해 100여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를 향한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계속됐고 결국 이승만은 3월26일 하야를 선언하고 사임서를 제출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올해로 4·19혁명은 6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더불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66.2%로 역대 최다 투표율을 기록한 4월15일 총선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면 이는 더욱 가치 있는 해다. 4·19혁명에 대해 찾아보면서 몇 번이나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특히 김주열 학생의 참혹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는 차마 더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60주년을 맞이한 4·19혁명은 다르게 생각하면 일어난 지 이제 겨우 6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되찾은 시기를 계산해보면 그보다 더 짧은 시기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이자 국민이 가지는 가장 큰 권리인 선거. 현대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이와 같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권리란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의견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을 비판할 수 있으며 정부에 건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권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것은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수많은 사람의 피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4·19혁명은 우리가 지금 지닌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한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많은 이들이 기계적으로 한국사를 습득하고 그 내막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건 이름만 줄줄 외우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나 4·19혁명과 같이 사건 하나하나가 우리의 자취이자 수많은 사람이 처절하게 노력해온 흔적들임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두천외국어고 이채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