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집도 연락처도 없습니다”…방명록, QR코드에 밀려난 노숙인의 하루
[르포] "집도 연락처도 없습니다”…방명록, QR코드에 밀려난 노숙인의 하루
  • 장희준 기자 junh@kyeonggi.com
  • 입력   2020. 09. 25   오후 2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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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수원역 광장 야외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 한씨. 최근 방역 문제로 가는 곳마다 명부 작성, QR코드 확인 등을 요구하는 탓에 노숙인들은 식당과 편의점에 가기도 어렵다. 조주현기자
▲ 25일 수원역 광장 야외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 한씨. 최근 방역 문제로 가는 곳마다 명부 작성, QR코드 확인 등을 요구하는 탓에 노숙인들은 식당과 편의점에 가기도 어렵다. 조주현기자

■ 한 달 넘게 쓴 마스크, 남루한 행색

덥수룩한 머리 위에 푹 눌러쓴 모자와 치수가 맞지 않아 자꾸만 흘러내리는 허름한 운동복 바지, 한 달 넘게 쓰느라 때가 탄 일회용 마스크. 노숙 생활 9년차인 한씨(67)의 차림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루하다. 그는 요즘 어딜 가나 명부 작성과 QR코드 확인을 요구하는 탓에 곤혹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25일 오전 10시께 수원시 팔달구 매산동의 수원서부경찰서 매산지구대 옆 벤치. 한씨는 하나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할지, 끼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난 한씨는 덜컹거리는 카트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 작은 카트 안에는 언제 뜯었는지 알 수 없는 새우깡 과자 한 봉지와 해어진 수건, 옷가지 등이 담겨 있었다. 한씨의 물건 중 유일하게 빛이 나는 건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컵라면 하나뿐이었다.
 

25일 갈 곳이 없어진 노숙인 한씨가 거리에 앉아 쉬고 있다. 조주현 기자
25일 갈 곳이 없어진 노숙인 한씨가 거리에 앉아 쉬고 있다. 조주현 기자

■ 가는 곳마다 노숙인 거절하는 방역대책

한씨는 담배를 사러 편의점 문을 열었지만 곧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직원은 명부를 작성하기 전엔 물건을 고르거나 결제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편의점을 등지고 선 그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서성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대다수 기관에서 무료급식을 중단하면서 한씨와 같은 노숙인들은 끼니 해결에 곤란을 겪고 있다. 식당이나 편의점에 들어가려 해도 명확한 거주지나 연락처가 없는 이들은 입장을 거절당하기 일쑤다. 하다 못해 담배를 사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씨는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1장과 천 원짜리 7장을 꺼내 보였다. 그는 “일을 해서 돈이 생기면 종종 식당에 가곤 했는데 요새는 개인정보를 적지 않으면 들여보내 주지를 않는다”며 “코드가 뭔지도 모르겠고 난 집도 없고 휴대폰도 없다”고 토로했다.
 

▲ 25일 노숙인 한씨가 자전거거치대에 널어둔 빨래를 걷고 있다. 조주현기자
▲ 25일 노숙인 한씨가 자전거거치대에 널어둔 빨래를 걷고 있다. 조주현기자

■ 쉼터 입소하면 거주지 생기지만, 코로나19 검사 비용 부담

결국 한씨가 다시 돌아온 곳은 수원역 광장 야외화장실 앞. 능숙한 손놀림으로 박스 조각을 깔고 주저앉은 한씨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도 쉼터에 있으면 명절마다 한 번씩 연락이 닿았다”며 “근데 쉼터마저 갈 수 없으니 아마도 이번 추석은 가족들의 소식을 듣지 못할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부 제도마저 한씨에게 등을 돌렸다. 주민센터를 찾아 기초생활수급자 심사도 문의해봤지만 등록된 거주지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노숙인 쉼터와 같은 시설에 입소하면 등록 거주지가 생기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는 탓에 쉽지 않다.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검사를 받으려면 1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 25일 노숙인 전씨가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한 나눔의집에서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 25일 노숙인 전씨가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한 나눔의집에서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 끼니 해결 위해 무료급식소 전전

이날 오전 10시40분께 모자를 눌러쓰고 잠을 청하려는 한씨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거리 생활 3년차인 전씨(53)는 곳곳에 구멍이 난 바람막이를 입고 다가와 “이따 연무동, 연무동으로 와요”하고는 한씨의 대답을 듣지 않고 길을 떠났다.

끼니를 해결할 곳도, 마음 편히 누워 쉴 곳도 없는 노숙인들 사이에선 아직 무료급식을 유지하는 2~3곳의 소식이 공유된다.

전씨는 이른 아침 수원역 광장 정나눔터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 때까지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한 나눔의집으로 걸어간다고 했다. 수원역에서 약 5㎞ 떨어진 나눔의집은 도보로 1시간10분이 훌쩍 넘게 걸린다.

전씨의 걸음은 먼저 권선구 세류동의 한 교회로 향했다. 그는 한동안 이곳에서 자주 끼니를 해결했고 덥거나 추우면 예배당에서 쉬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아니었다. 교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문을 두드리자 나온 관리자는 전씨의 입장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방역수칙 탓에 시설 내로 들어오려면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적어야 하는데 전씨에겐 거주지나 연락처가 없기 때문이다.

갈 곳이 없어진 전씨는 다시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12시20분께 나눔의집에 도착한 전씨는 따뜻한 국물과 밥을 식판에 받아 건물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노숙인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이곳에선 하루 세 끼 무료급식을 계속 유지하되, 거리두기를 위해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식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나눔의집 관리자 김수강씨는 “이분들이 정말 갈 곳이 없는 상황임을 잘 알기에 체온 측정과 손 소독 등 방역수칙을 최대한 준수하는 선에서 무료급식을 이어가고 있다”며 “곧 날이 추워질 텐데 언제까지 밖에서 식사하시라고 할 수도 없고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 도내 노숙인 927명…道 “찾아가는 신청 서비스 등 지원 대책 강구”

한편 지난 6월 기준 경기도 내 노숙인은 927명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179명(19.3%)이 수원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경기도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찾아가는 신청’ 서비스를 시행, 90여명의 노숙인을 발굴해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한 바 있다.

경기도 복지사업과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숙박시설 임대 등으로 노숙인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바가 없지만 도는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자 방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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