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선 555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3)
경원선 555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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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북구에 성북역은 없다.



글,사진 김추윤(신흥대학교수)



용산역을 떠난 옛 경원선 열차는 버드나무 쭉 늘어선 한강물의 쪽 밑을 끼고 돌아 서빙고와 왕십리를 거쳐 청량리역에서 잠깐 정차한 다음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중랑천을 끼고 가다가 성북역에 도달한다.



조선후기 순조때 지은 한경식략(漢京識略)에 의하면 “맑은 계곡과 언덕을 끼고 사람들이 모여 복숭아를 심어 생업을 삼고 매년 늦은 봄이면 놀이를 나온 사람들의 차마가 두 줄을 지어 산계곡사이를 가득 메우고 깨끗한 초가집이 많았다”는 성북.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성북구에는 성북역이 없다. 1988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서 성북역이 있던 월계동이 성북구에서 노원구로 분구되었기 때문이다. 성북(城北)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도성의 수비를 담당하던 어영청의 북둔(北屯)이 영조41년(1765)에 설치되어 주둔한데서 유래했다.



일제의 경원선과 함경선 철도도 따지고 보면 옛 우리 선조들이 짚신 신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다니던 파발로인 관북로를 참조해서 건설한 것이다. 옛날에 한양을 떠나 강원도 서북부를 거쳐 함경도로 가려면 동소문(東小門)으로 나가 성북구 돈암동을 거쳐 미아리고개를 넘어야 했다. 의정부 다락원과 포천 파발막, 김화, 철령, 안변, 원산, 함흥, 북청을 거쳐 서수나까지 이르는 머나먼 길의 시발점이 바로 동소문이다. 동소문-함경도의 이 관북로는 수많은 병마가 왕래하고 숱한 물자가 운반되던 길이다. 한양에서 일용잡화가 실려 나가고 거꾸로 강원도, 함경도에서 농산물과 해산물이 한양으로 실려 왔다. 특히 마른 명태가 많이 들어 왔다. 조선왕조가 개국한후 왕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후 궁궐을 짓고 아울러 성곽을 둘러 도성을 쌓고 8개의 문을 설치했다. 이때 동북쪽의 출입문이 동소문이다.



그 옛날 붉은 복숭아꽃 피고 꿩과 산비들기, 산새들이 많이 서식하던 성북에는 옛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늘날 대부분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다. 해방후에도 산비들기가 많아 김광섭 시인은 그 유명한 시 “성북동 비들기”를 남겼다. 성북역앞 북동쪽의 월계2동에 조금 남아 있는 야산을 제외하고는, 성북역의 뒤쪽 월계3동과 중랑천사이에는 월계시영아파트가, 성북역앞 남서쪽 월계1동에는 성북 맨션, 신동아 아파트, 동신아파트가 있어 주변이 온통 아파트로 둘러 싸여 있다.



바로 인근에 지하철 석계역이 생기기 전에는 삼표연탄, 대성연탄, 삼천리연탄 등의 큰 저탄장이 있어 1천만 서울시민들이 사용하던 애환서린 석탄이 강원도에서 중앙선을 타고 이 곳까지 수송되어 하역되었다. 지금은 이문역 구내에 대성, 삼천리연탄이 일부 남아있고 일부지역은 철도청 동부전동차사무소 기지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다.





성북역은 화물기지출입구 주변에 현재 동양, 현대, 태영양회 공장과 한솔제지, 현대자동차출고쎈터, 대한통운 등이, 경춘선이 분리되는 곳 주변에 성신양회 공장이 위치하고 있어 동부화물쎈터의 기지역으로 3개의 양회싸이로가 있고 하루 평균 벌크(bulk)가 100여량씩 도착되는 아주 큰 화물역이다. 지금도 성북역에서는 유조 탱크와 모양이 비슷한 아주 큰 탱크롤리형 벌크양회 화물열차를 자주볼 수 있다. 성북역은 한수이북에서 무연탄, 시멘트 등 정책물자를 수송하는 화차를 조정하는 중계역 역할을 수행하는 역이다.



성북역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지역인데 1914년 4월1일 군면 페합에 따라 녹천, 벼루말(연촌), 능골마을을 병합하여 월계리라 하여 양주군 노해면에 붙었다가 1963년1월1일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되어 월계동이 되었다가 다시 노원구에 편입되었다. 성북역은 1937년 7월5일 경원선의 보통역으로 영업개시를 할 때는 역 앞에 있는 월계리 벼루말의 이름을 따서 한자명으로 연촌역(硯村驛)이라 하였다. 그후 1963년 3월5일 성북구에 편입된 2달후에 현재의 성북역명으로 바뀌었다. 벼루말이란 “마을가운데 못이 있어서 벼루의 물과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경원선은 용산에서 경부선, 경의선과 갈라진 뒤,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성북역에서 경춘선과 갈라지며, 의정부역에서는 교외선과 연결된다. 성북역은 1971년 10월5일 성동역 폐쇄로 경원선의 시,종착역이 되고 1978년 4월1일 교외선의 시,종착역으로 되었다. 1986년 9월2일 성북-의정부간 지하철이 전철화되면서 경원선과 교외선의 시,종착역이 성북역에서 의정부역으로 바뀌었다. 성북역은 서울지방철도청이 폐지되면서 2000년 1월1일자로 경원선과 경춘선의 29개 역을 관할하는 관리역을 겸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스라브 지하1층, 지상2층의 현 역사는 1978년 12월30일에 완공하였다. 인근에 광운대가 있어 광운대앞역이라고도 한다.



한때 경원선, 경춘선, 교외선 3개 여객선의 시,종착역이던 성북역은 이제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의 정차역과 의정부-인천, 수원간 전철 및 국철의 정차역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과 춘천을 잇는 단선철도인 경춘선은 1937년 7월25일 개통될 때는 성동역에서 춘천까지 93.5km였으나 현재는 성북역에서 춘천까지 87.3km로 무궁화와 통일호가 정기 운행되고 있다. 2010년 개통예정인 경춘선복선 전철화공사가 완료되면 성북역을 거치지 않고 청량리-망우리-퇴계원역을 지나 춘천까지 운행될 예정이다. 그럼 1시간40분대에서 1시간10분대로 단축될 것이다.



20여년전만해도 성북역은 서울 근교 유원지 나들이의 관문역이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사시사철 행락객이 봄철에서 늦가을 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휴일에는 임시열차를 운행하고도 폭주하는 여객을 수송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젊은 대학생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보는 MT코스가 경춘선의 강촌역과 대성리역 그리고 교외선의 송추역, 일영역 등 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 가기 위해서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성북역에 몰려 들었다. 그래서 성북역은 나이 지긋한 50대 이후의 서민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낭만과 추억어린 역이다.



햇살이 묵직하게 드리웠던 어둠을 거두어 내고 출근객이 찾아드는 아침 8시의 성북역 대합실은 초만원이다. 홍수같이 밀려나고 밀려드는 인파의 물결이 장관이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머리에 이고 진 무리들이 뒤섞여 밀고 당기며 그 속에서 역무원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사고 예방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 다닌다. 밤12시 20분에 도착하는 인천발 전철을 끝으로 성북역사의 대합실은 정적속에 휩싸인다. 늦은 잠자리를 뒤로하고 역무원들이 다시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은 인천행 아침 5시2분발 첫 열차의 출발시간이 다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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