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1988년 NBC, 2018년 NBC
[지지대] 1988년 NBC, 2018년 NBC
  • 김종구 주필
  • 승인 2018.02.14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8 서울 올림픽 복싱 경기장. 변정일 선수가 67분간 링을 점거했다. 판정 결과에 불복한 농성이었다.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주최 측이 서둘러 조명을 껐다. 하지만, NBC는 어둠 속 장면을 모두 생중계했다. 서울 올림픽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알권리 충족을 위한 선택이겠거니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NBC 직원들의 돌출 행동이 우리 국민을 분노케 했다. 태극기를 모독하는 행동이었다. ▶이태원의 한 옷가게를 찾아 그들이 도안한 문양의 티셔츠를 주문했다. 태극기 태극 안에 권투 선수의 모습을 그렸다. ‘우리는 복싱을 한다’ ‘우리는 나쁘다’는 영문 표기를 넣었다. 옷 가게 주인이 거부했다. 다른 가게를 찾아 기어코 200벌을 만들었다. 국내 언론이 이를 보도하자 국민이 분노했다. 국내 한 언론이 미국 성조기에 ‘AIDS’라고 써넣어진 만화를 보도했다. 그러면서 질병(AIDS)이 아니라 원조(AID)를 좋아하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비꼬았다.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한국 언론이 일제히 미국 때리기에 나섰다. 때마침 꼬투리가 있었다. 미국 수영선수단의 트로이 델비 선수와 어니스트 맨덤 코치의 절도 행각이었다. 묵고 있던 호텔에서 석고 사자상을 훔친 혐의였다. 결국, 둘은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한국 언론은 이 둘의 모습을 끝까지 보도했다. 경찰에 체포돼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 쫓겨나듯 공항을 떠나는 모습이 다 공개됐다. 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한미 언론전(戰)이였다. ▶악화된 국민감정이 폭발했다. 미국과 소련의 남자배구 결승전이 벌어지던 체육관. 한국 관중은 일제히 소련을 응원했다. 모두 소련 국기를 손에 들고 흔들었다. 소련 선수들조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국 사회의 반미 목소리는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울림은 제한적이었다. 일부 극단적 단체의 선동 구호 정도였다. 그랬던 반미(反美)가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도 평범한 한국 시민들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NBC가 30년 만에 또 ‘한 건’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방송에서 한국인을 언짢게 했다. 중계진 조슈아 쿠퍼 라모가 한국을 비하했다. ‘일본이 한국 발전의 모델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조직위가 항의하자 NBC는 곧바로 사과했다. 라모를 방송에서 제외했다. 우리 언론도 다르다. 필요 이상 여론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평창 올림픽은 순조롭게 가고 있다. 여전히 많은 한국 관중은 미국 선수들에 박수를 보낸다. 언론의 역할이 이렇게 중하다. 국가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수도, 우호로 이끌 수도 있다. 하물며 남북 관계를 끌어가는 논조는 어떻겠나. 30년을 사이에 두고 재연된 ‘NBC 사태’에서 우리 언론이 배울 교훈이다.

김종구 주필


연예 2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