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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칼럼] 한국은 만만하고 한국인은 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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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칼럼] 한국은 만만하고 한국인은 봉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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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보고,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이케아(IKEA)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그렇잖아도 더운 날씨에 열불이 난다. 한국 소비자가 문제일까, 한국 정부가 문제일까. 둘 다인 것 같다.

 

세계 최대 가구업체 이케아의 서랍장 ‘말름’ 모델이 말썽이다. 이 서랍장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미국에서 2년동안 유아와 어린이 6명이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에 이케아는 북미에서 서랍장 3천560만개를 리콜(수거)하고, 판매중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지난 6월 이케아의 유사 서랍장 32개 제품에 대해서도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이케아의 미국 홈페이지에는 ‘더 안전한 우리 집을 함께 만들어요’라는 문구와 함께 리콜 절차가 상세히 게재됐다.

 

중국에서도 리콜이 결정됐다. 당초 이케아는 중국에서 환불은 가능하지만 리콜 계획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이 “중국인을 차별한다” “이케아를 보이콧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관영 신화통신도 이케아가 오만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난징, 톈진의 관변 소비자위원회도 잇딴 성명을 발표하며 이케아 때리기에 동참했다. 결국 이케아는 무릎을 꿇었다. 중국 내 매장 곳곳에 리콜 안내문을 붙였다.

 

한국에서도 같은 제품이 2014년 12월부터 최근까지 4만여 개 팔렸다. 비슷한 모양과 규격의 서랍장까지 합치면 판매량은 10만여 개나 된다.

 

문제는 미국에서 리콜하고 판매 중단된 이 서랍장이 한국에선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케아 한국 홈페이지에는 리콜이나 판매 중단에 대한 안내가 없다. ‘단단히 고정하세요!’라는 문구로 가구를 벽에 고정시키는 방법만 알려줄 뿐이다. ‘서랍장이 벽에 고정된 경우에 어떠한 사고도 보고되지 않았다’는 설명도 곁들여 놓았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에 대한 엄연한 차별 대우다. 한국 소비자를 ‘호갱(호구고객)’으로 알고 우롱하는 처사다. 북미 지역에서 안전하지 않은 제품이 한국에서는 괜찮다는 것인가. 우리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이케아는 국내 소비자들의 비난과 항의에 최근 리콜 대신 선심 쓰듯 환불을 해준다고 했다. 정부도 뒤늦게 논란이 일고 있는 서랍장 안전성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늘 몇 발씩 느린 소극적인 조치다. 답답하고 속 터진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의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은 명백하다. 이케아뿐 아니라 폴크스바겐도 그랬다. 배기가스 조작으로 자동차 시장을 흔든 폴크스바겐은 미국의 차량 소유주들에게 147억달러(16조7천억원) 규모의 배상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서는 보상 소식이 없다. 리콜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도 피해 보상을 미루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마지못해 진전된 대책을 내놓았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의 소비자를 차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폴크스바겐이나 이케아의 경우 미국서는 즉각 소비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서는 보호조치를 하지 않아도 정부로부터 큰 제재가 따르지도 않고 엄청난 벌금을 물지도 않는다. 오히려 물건이 더 많이 팔리기도 한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 입장에서 굳이 한국 소비자에게 배상이나 보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여기엔 소비자들의 책임도 크다. 제품에 문제가 있거나 차별 대우를 받으면 제품 구입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하는데 거꾸로 더 늘어나고 있다니 아이러니다.

정부나 국회는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등을 강화해 법으로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지지부진이다. 한국 정부도 그렇고 소비자도 그렇고, 글로벌 기업들에겐 봉이다. 언제까지 멍청하게 당하고만 살 것인가. 한국인을 우습게 아는 기업, 소비자 안전을 도외시한 상품을 외면할 의지가 우리에겐 없는 것인가.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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