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꼭 끼어서 한 번씩 멘트를 날린다. 엉뚱할 때도 있지만, ‘엄마가 그런 것도 알아?’하며 가족을 놀라게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요즘같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가족 카톡방에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글도 올린다. 가족의 생일 축하 메시지도 이모티콘과 함께 제일 먼저 챙긴다. 종종 맞춤법이 틀려도, 김 여사의 마음이 느껴져 따뜻하다. 김 여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다.
김 여사도 그 또래 많은 다른 엄마들처럼 ‘그녀’ 박근혜를 찍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 대통령이 임기 중 어려움에 처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워했다. ‘결혼도 않고, 여자 혼자의 몸으로… 대통령하기 참 힘들겠다’ 어쩌고 하면서. ‘세월호 7시간’ 관련, 사람들이 대통령 얼굴이 부어 보이는 게 무슨 시술을 한 것 같다고 했을 때도 김 여사는 ‘나라 걱정에 잠을 잘 못자서’ ‘피곤이 쌓여서’라고 옹호했다.
그런 김 여사가 며칠 전 밥 먹는 자리에 종이컵과 양초를 가져왔다. 딸이 토요일에 서울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쩍 건네줬다. 촛불 집회 분위기가 어떤지 가보고 싶은데 다리가 아파서 못 간다면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길래 동네 슈퍼에 물어보니 없어서 집에 있는 비상용 초를 가져왔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현 시국 얘기가 나왔고, 김 여사가 또 멘트를 날렸다. 이번엔 좀 흥분한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하느냐’ ‘빨리 그만둬야 한다’고. ‘감쪽같이 속았다’고도 했고, ‘배신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김 여사는 토요일에 날이 춥다니 옷을 두둑이 입고 가라고 했다. 몸조심도 당부했다.
엄마, 김 여사의 얘기지만 또 다른 김 여사들도 돌아섰다. 그녀의 골수팬인 줄 알았는데, 변하지 않는 그 5%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얼마 전 한 여성 모임에서 만난 60~70대 김 여사들도 더 이상 ‘그녀’를 옹호하거나 응원하지 않았다. 믿었던 까닭일까, 화를 내는 이도 있었다.
어떤 김 여사는 ‘그녀를 찍은 걸 후회한다’고 했고, 또 어떤 김 여사는 ‘대선때 선거운동까지 열심히 했다’며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이 나라를 위해, 국민들을 위해 빨리 내려와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나이 지긋한 김 여사들은 이 나라 보통의 엄마이고 할머니들이다.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 열심히 해보겠다니, 그동안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달라졌다. 분노하고 있다. 딸에게 촛불을 밝혀야 한다면서 초를 건네고 있다. 이게 민심이다.
김 여사를 비롯해 상당수 국민들은 ‘그녀’를 이미 탄핵했다. 그들의 맘 속에 ‘그녀’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내일, 광화문엔 그런 의미를 담은 김 여사의 촛불이 켜질 것이다. ‘그녀’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외치던 그 자리에.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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