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남녀 아이들이 모두 좋아했던 외화엔 ‘헐크’가 있었다. 주인공이 불의를 보고 화가 쌓이다가 어느 순간 분노의 버튼이 당겨지면 엄청난 괴력을 가진 헐크가 되어 ‘나쁜 놈’들을 혼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어릴 때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해했던 것 같다. 악당들을 혼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고소함이나 통쾌함을 기대하며 호기심 어리게 보는 친구들은 너무나 재미있어했지만, 나는 저 화가 언제 폭발할까 싶어서 그 순간이 되기 전까지 너무 무섭고 두근거려서 폭발 직전엔 텔레비전 화면을 제대로 쳐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사회면 뉴스를 보면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 ‘헐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상점 종업원이나 버스기사를 폭행한다거나, 내 차에 흠집을 냈다거나 내 차에 음료를 올려놓았다고 시비가 붙거나 폭행을 한다. 결별을 선언한 여자친구나 그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실제 모두 기사화되어 다 알지 못할 뿐이지,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 보복 같은 형태로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희생되고 있다고 한다.
욱하는 성미를 가진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늘 불안하다. 그 사람이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경우가 권위적인 가장이다. 욱하는 성격으로 집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하고 가족구성원이 조심해도 어느 순간 자제력을 잃으면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집안이 난장판이 된다. 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식구들이 눈치 보고 비위를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죄의식이 내면화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혹은 우리가) 뭘 잘못한 것일까? 내가 또 무엇을 실수한 거지?’ 이런 생각으로 자기 검열을 하는 단계다.
그런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가 있다면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민감해지고, 타인과 갈등이 생기기 전에 알아서 저자세가 되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있어도 상대방의 의견에 그냥 동의하고 마는 일도 생긴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주변에 쉽게 화를 잘 내며 욱하는 성격의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주변 사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그 사람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나를 왜 화나게 하나,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주변이 날 가만두지 않는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내가 화났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타고난 성격이나 정말 참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딱 그만큼의 자제력과 자기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에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이 주변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무참히 깨뜨리는 것에 어떤 지각도 없다면 문제는 크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화가 나려고 한다면 그것을 의식하며 상태를 차분하게 갖도록 조절하며, 아무리 짧은 사이라도 내가 지금 화를 폭발적으로 낸 후 다음 상황이 어찌 될지 미리 상상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한 번의 화로 어떤 잘못된 상황으로 번져 평생 후회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 내가 감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조절해야 한다. 화가 날수록 의도적으로 말의 톤을 낮추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또박또박 조곤조곤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작은 화가 났을 때부터 연습해야 할 수 있다. 날씨는 하루하루 더워지고 있고 모두 마스크를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내 화를 건사할 수 있는 자제력은 사회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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