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4. 가평 남송미술관
정치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4. 가평 남송미술관

백혈병에 세상 떠난 딸 애칭으로 박물관 이름...1층 전시실 들어서면 남궁원 작가 작품들 눈길
2층 젊은 현대작가 작품·소장품 기획전 열려, 3층 즐거운 체험학습실 4층 오르면 야외전시실
별관인 ‘허수아비마을’ 더욱 매력적인 공간 탄성

남궁원 작가의 작품을 이어 15m 길이로 만든 남궁원 근작전.

가평 백둔 계곡에 자리한 남송미술관은 쉼 없이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부지런하다. 매달 새로운 작품을 전시하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할까. 새로운 작가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남송미술관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6개월 동안 ‘나는 대한민국의 화가다’전을 6회에 걸쳐 진행했다. “90명의 한국 화가를 선정해 3년간 인터뷰 하고, 매월 15명씩 전시를 진행한 대장정을 마무리했지요.”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전달하는 남궁원 관장의 말투에 강철 같은 신념이 느껴진다.

2006년 개관한 가평 남송미술관은 가평군 북면 백둔리 명지산과 연인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서양화가인 남궁원 관장의 예술활동과 40여년간 수집해온 다양한 국내외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남송미술관 전경.

2005년 개관한 남송미술관은 남궁원 관장의 아호이자 피아니스트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딸 남궁송의 애칭을 따 붙인 이름이다. 450평의 4층 건물로 1층 전시실은 남궁원 작가의 전용 전시실이다.2층 전시실은 젊은 현대작가들의 작품과 소장품의 기획전이 전시되며, 3층에는 체험학습실, 4층에는 야외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남송미술관은 외관부터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민족의 기상과 멋이 깃든 성곽의 형태의 건물이 본관이다. 별관인 허수아비마을은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건물 벽에 대형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붓을 든 형형한 눈빛의 남자가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람이 바로 남궁원 관장(75)이다.

제2전시실에서는 프랑스어로 ‘환희’를 뜻하는 ‘allegria’란 주제로 이순진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냉커피로 목을 축이며 카페 ‘데자르’에서 최준석 학예사가 들려주는 미술관 설립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우리 역사는 물론 세계사에도 해박한 최 학예사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남송’은 남궁원 관장의 아호이자 일찍 세상을 떠난 송이라는 딸의 이름을 조합해 만들었다는 사연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평일인데 손님과 관람객이 줄을 잇고 최 학예사의 휴대폰도 연신 울어댄다. 남궁 관장께서 본인이 직접 미술관을 안내해 주시겠다고 나서신다. 남궁 관장의 뒤를 따라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산속에 자리한 미술관이 시원하다. 1층 상설전시장에 들어선다. 널찍한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작품을 해설하는 자막과 전통 민요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다양한 작업을 펼친 남궁원 관장의 작업실 모습.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연작 그림은 남궁 화백의 ‘물감으로 쓴 자서전’이다. 한국전쟁으로 부친을 잃고 어려운 시간을 보낸 유년시절부터 청년,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생애에서 만난 온갖 사연들이 밝은 표정으로, 때로는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물감을 나이프로 찍어 그렸기 때문인지 화폭에 담긴 이야기가 더 강렬한 듯하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송미술관을 설립한 작가 남궁원의 일생은 물론 그가 추구하는 인생철학도 읽을 수 있다.

허수아비마을에 있는 3m가 넘는 크기의 나무 허수아비.

별관인 허수아비마을은 더욱 매력적인 공간이다. 4천여 평의 너른 공간에 20여 년간 펜션과 연수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전시관 공간이 아기자기하다. 목련관, 들국화관, 철쭉관, 진달래관을 비롯해 그랜드피아노가 놓인 아트홀 등 15개의 전시실이 있다.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 곳곳에 멋스런 조각 작품을 만난다. 지난 7월까지 14명의 작가가 참여한 ‘청년신진작가’전을 열었고, 현재는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 원로 화가 정문규(1934~2021) 작품전은 특별한 전시가 되었다. 남궁 관장의 스승이기도 한 정문규 화백이 마침 이달 6일에 작고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한국의 중견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남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남농 허건, 월전 장우성의 작품은 물론 피카소를 비롯한 외국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 딸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사랑 노래

특별한 공간을 마주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송이에 대한 사랑과 추억이 가득한 작은 집이다. 이 작은 집은 관람객들에게 묵상하며 기도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한다. 피아노 관련 잡지와 인형들이 빼곡한 방안 책꽂이에 딸 송이의 손때가 묻은 인형들과 연필로 그린 초상화도 놓여 있다. “서양화를 전공한 아들이 그려준 것이지요. 누나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자신의 골수를 이식해 주었던 아들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화가이지요.” 남궁 관장은 허수아비 철학이 담긴 허수아비 동화를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동화책의 주인공은 백혈병으로 하늘나라에 간 딸 ‘송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딸 송이는 대학원에 다니던 26살에 갑자기 쓰러진다. 백혈병으로 밝혀져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던 쌍둥이 남동생이 입국한다. 다행히 골수가 맞아 무사히 수술했지만 병이 재발한다. 한 차례 더 동생의 골수를 이식했으나 끝내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아빠 가진 거 있으면 그때그때 나눠줘. 지금 어려운 사람 굉장히 많아. 하나님이 언제 생명을 거둬 갈지도 모르는 일이야.” 병실에 있던 딸의 당부였다. 기부를 준비하던 그는 딸의 부탁대로 백혈병 아이를 비롯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1947년 가평에서 출생한 남궁원의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전쟁으로 부친을 잃은 그는 삼촌 집에서 자란다. 유명 화가를 꿈꾸며 서울미대에 원서를 썼으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결국춘천교대에 진학한다. 인천교대를 거쳐 미술교사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여 마침내 대학 강단에 설 정도로 강단과 집념이 대단하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10년, 경원대학교 미대교수로 34년, 총 44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남궁 작가는 한 번도 자신의 창작활동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남궁원 관장은 44년 긴 세월을 교육자로서 우직하게 걸어 온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수상한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 김순미씨는 작품 활동과 미술관 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든든한 동지다. 남궁미술관에서 펴낸 ‘1968~2007 남궁 원 회화 40년’은 작가 남궁원의 작품 세계와 남송미술관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읽을 수 있는 화집이다.

남궁 관장은 대학에서 은퇴하던 2014년에 예술의전당에서 ‘남궁원2막1장’ 전시회와 미술세계 갤러리에서 앵콜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허수아비다. 작가 남궁 관장에게 허수아비는 옛 시절의 아련한 향수이자,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예술관이다. 놀랍게도 그는 허수아비를 통해 삶의 철학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까지 결정한다. “허(虛)는 비움과 나눔, 수(守)는 지킴, 아(我)는 키움, 비(非)는 세움이라는 의미입니다. 허수아비 철학은 내 안의 좋은 것은 나눔으로써 비우고, 나쁜 것은 버림으로써 비우자. 더불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시켜주는 소중한 가치를 찾아 지키고, 마침내 참사람으로 바로 서자는 것이지요.” 허수아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5회 한국미술작가상, 제1회 통일미술대전 국무총리상, 2002년 코리아 아트 페스티벌 대상, 제5회 한국미술공로대상 등을 수상했다.

허수아비마을은 잔디밭과 다양한 전시물 가운데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다.

■ 허수아비에서 비움과 세움과 나눔의 미덕을 발견하다

남궁 관장의 이력도 화려하다. 서양화가로 대학교에서 34년간 미술과 교수로 재임했고 예총 경기도연합회장과 경기문화재단 이사, 경기도 문화예술위원,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를 지냈다. 미술 인터넷방송-아트원 TV를 운영하며 미술계의 숨겨진 작가를 발굴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남송미술관은 지역의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허수아비 축제를 만들어 매년 전국아동미술제, 송이피아노콩쿨대회, 글짓기 대회 등 다양한 예술 행사를 열어 가평을 문화예술도시로 가꾸었다. 지역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전시실을 제공하는 등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 작가 소개는 물론 작품을 판매하는 일에도 적극 나선다. 남송미술관은 전통 회화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허수아비마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조각을 비롯하여 미디어아트, 설치미술로 확장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남송미술관의 지향점은 허수아비 철학에 닿아 있다. 거꾸로 놓아진 사다리 그림 앞에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들려주는 남궁 관장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가 아니라 오르면 오를수록 넓혀져 가며 확장되는 사다리에 내일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요.”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