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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6. 양주 안상철미술관
정치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6. 양주 안상철미술관

조주현기자
안상철미술관의 특별기획 ‘한국화, 시대를 걷다’를 찾은 관람객이 소은영 작가의 ‘숲속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양주시 백석읍 권율로 905번지에 자리 잡은 안상철미술관(관장 김철효)은 1950년대 후반 국전에 5회 연속 입상하고, 전통 산수화에 서구적 조형원리를 접목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생산한 작가 안상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6년에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안상철의 작품은 지금 보아도 시선을 끌만큼 파격적이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1993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고 작가로 선정되어 두 달 동안 작고작가전을 열었고, 이듬해에는 유족과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초기부터 말년 작품까지 망라한 유작전을 예술의 전당에서 열었다. 작고 10주년이 되던 200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안상철, 수묵과 오브제’를 열어 초기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한자리에 펼쳐보였다. 안상철미술관 역시 ‘안상철·나희균 입체작품전-오브제의 재발견’(2017)과 안상철의 채색문인화를 다룬 ‘모란이 피기까지는’(2020) 같은 작품전을 통해 작가의 폭넓은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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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균 10년의 시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조주현기자

안상철미술관은 건축물부터 작품이다. 작가의 아들인 건축가 안우성이 설계한 미술관은 작가가 생전에 추구했던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담아낸 건축물로 유명하다. 건물 동편엔 입체작품에 사용되는 목재를, 남쪽엔 수묵화와 호수를 의미하는 반사유리를, 서편엔 채색화 배경이 된 크라프트지를 의미하는 황토벽을, 북쪽엔 모든 재료를 통합하는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다. 자연지형을 살려 높낮이로 전시실을 구분시켜 언뜻 보면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도록 설계한 건물 디자인도 재미있다. ‘ㄷ’ 자형 건물의 중앙은 소나무와 꽃이 있는 작은 정원이다. 호수가 마주 보이는 카페를 지나 1층 전시실로 내려가면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채색한 안상철의 오브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작품명 ‘영(靈)’이 암시하듯 고목(古木)에 깃든 신령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듯하다. ‘기록하고 기억하다, 나희균 10년의 시간(1959~1970)’은 안상철 작가의 아내 나희균 작가의 작품 활동을 소개한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곁들인 작품전이다. 파이프를 잘라 만든 설치작품과 네온관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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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철 작가의 사진이 미술관 복도에 걸려 있다. 조주현기자

■ 부부 작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예술의 지평을 넓히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안상철은 부산 피난시절에 미국인 프랭크(Frank) 교수를 통해 전통 산수화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의 추상적 근원을 이루는 점, 선, 면 등의 서구적 조형성의 기초를 배운다. 이상범, 노수현, 장우성, 배렴의 지도를 받으며 전통 산수화 기법을 익힌 그는 동양의 전통과 서구의 조형원리를 접목한 화풍을 선보였다. 국전에 출품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 화단의 주류를 이루어왔던 산수화 풍에서 벗어나 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53년에 제2회 국전에 ‘만추’(晩秋)를 출품하여 입선하고, 1955년에는 ‘구’(丘)를 출품하여 입선한다. 1956년과 1957년에는 ‘전(田)’과 ‘정(靜)’을 출품하여 문교부장관상을 받았고, 1958년에는 ‘잔설(殘雪)’로 부통령상을, 1959년에는 ‘청일(晴日)’로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국전에 출품하여 수상한 4점 모두가 반복된 선율, 점묘에 의거한 공간창출이 드러나 보인다. 특히 ‘청일(晴日)’은 그의 관심이 추상적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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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저수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안상철미술관. 조주현기자

1960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국전의 추천작가로 참여하면서 동양회화의 현대화를 시도한다. 국전 추천작가로서 출품한 ‘만연몽’은 형태를 부정한 묵선과 점만으로 그려진 최초의 추상화이다. 이듬해에 출품한 ‘몽몽춘’도 파격적이다. 종이에 수묵의 추상적 필선과 작은 돌이 평면 위에 등장한 것이다. 이어진 ‘靈-62’에서는 화면에 바위를 붙이고 구멍을 내어 평면에 깊이를 만들어낸다. 부채꼴로 변신하고 괴목을 등장시켜 입체화의 변신을 거듭 실험한다. 1974년에는 벽에 걸던 작품을 입체로 바꿔서 대 위에 괴목과 바위를 나열한다.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동양화를 입체화한 것이다. 1960년대부터 분재에 심취한 그는 나무의 생명력과 형상의 자연성에 주목한다. 전통 동양화는 현실을 외면한 신선경이나 대상 그대로를 모사한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시작한 작업이 ‘영(靈)’ 시리즈였다. 고목을 자르거나 새롭게 조합해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색을 칠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안상철은 ‘한국 현역화가 100인전’(1973), ‘한국화 100인전’(1986), ‘한국근대미술명품전’(1992)에 참여했다.

조주현기자
나희균 작가와 그의 작품. 조주현기자

운 좋게 미술관에서 나희균 작가를 뵙게 되었다. “미술관까지 전철과 버스로 와요.” 1932년생이니 선생의 연세가 올해 90세인데도 얼굴이 곱고 허리가 반듯하다. 아직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55년에 형부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날아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한다. 유학시절에 가깝게 지낸 김환기(1913~1974), 김향안(1916~2004) 부부는 그의 작품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희균이한테는 좋은 것이 있어. 성격은 참한 것 같은데 그림은 거칠거든.…” 김환기가 그에게 준 편지의 한 구절이다. 1957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귀국한 그는 대학 동창 안상철과 결혼하고 자녀 넷을 키우면서 작품 활동을 벌였다. 1960년대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조형기호로 구성한 작품을 제작하고, 1970년대엔 한국 최초로 네온관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일 정도로 앞서 나갔다. 김환기의 눈이 정확했던 것이다.

평면에서 벗어나 입체 작품을 만들고픈 작가적 욕구는 부부가 닮아 있다. 그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8)의 조카라는 사실도 놀랍다. 나희균은 ‘시대를 앞서간 여인, 나혜석’이란 글을 잡지에 기고하여 여성의 의식을 깨우려 애쓴 고모의 안타까운 생애를 추모하기도 했다. 얼마 전 환기미술관에서 ‘수화가 만난 사람들- 나희균, 고요의 빛’ 전시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역사는 기록해야 합니다.” 동행한 사진 기자의 요청에 따라 파이프를 잘라 표현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작품을 설명해준다. “이 작품은 거리의 건축자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되었지요.”

조주현기자
기산저수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안상철미술관. 조주현기자

■ 내일을 여는 작가의 실험정신-한국화, 시대를 걷다.

안상철미술관은 다양한 주제와 시각으로 한국화 분야를 조명하고 연구하는 전시를 진행해왔다. 작가 안상철이 1950년대에 우리 미술의 뿌리로부터 현대화를 부르짖으며 낯선 오브제 작품으로 화단에 충격을 던진 이래 우리 화단에서는 ‘전통의 혁신’이라는 가치를 공유한 수많은 작가들이 쉼 없이 달려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 선상에서 안상철미술관은 8월 25일부터 2021 특별기획전 ‘한국화, 시대를 걷다’를 전시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작가 10인-김성희, 김춘옥, 박민희, 소은영, 송근영, 양정무, 이미연, 이승은, 하정민, 하철경이 출품한 작품들은 예상대로 전통적인 한국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960년대부터 입체와 모빌, 추상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벌인 안상철의 정신이 느껴지는 10인의 작품에서도 지향과 개성이 뚜렷하다. 김철효 관장이 설명을 들어본다. “10인은 작가들은 선배 화가들이 고심했던 ‘전통의 혁신’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에서 자유스럽게 자양분을 얻어 즐거운 놀이의 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전통이란 지필묵으로 대변되는 산수나 문인화일 수도 있고 사군자 상징의 차용일 수도 있으며 조각보나 민화의 단순화 또는 색채의 감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어둡거나 무겁지 않으며 침잠하는 분위기도 없다. 한국화의 전통성과 다양한 표현양식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사의(寫意)’와 ‘유희’의 개념을 통해 되짚어보는 전시이다.” 이종은 큐레이터의 보충설명에 따르면, 참여한 작가들은 60년대 추상운동을 했던 작가들이나 수묵화 운동으로 한국적인 가치를 추구했던 1980년대에 수학하여 전통의 현대화가 중요시되던 시기에 작가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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