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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용인 한국미술관
정치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용인 한국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 격이던 ‘한국미술관’ 험난한 홀로서기
예술의전당 인근 빌딩 지하서 서초동 거쳐 1994년 용인에 둥지
故 김윤순의 열정으로 ‘마북동 시대’ 활짝… 굵직굵직한 기획전
안준섭 개인전 ‘김량장동에서’ ‘박민정 초대전-Scenery’ 열려

미술관은 1층과 2층 전시실로 이뤄져 다양한 규모의 전시가 이뤄진다. 2층 전시실에서 그림 작품을 감상하는 시민들. 윤원규기자

한국미술관(관장 안연민)에서는 5일 현재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용인시와 용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제13회 안준섭 개인전 ‘김량장동에서’와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는 ‘박민정 초대전-Scenery(풍경)’은 2021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육성사업이다.

‘김량장동에서’가 열리는 신관부터 둘러본다. 1층에 전시실 초입에서 마주한 한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다 쓰고 버린 연두색 형광등 전구가 세워진 길모퉁이 낡은 건물 앞에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국 사람들처럼 작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몸짓이 제각각이지만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람들 앞에서 팔을 번쩍 치켜들고 선동하는 투사도 있고, 사람을 때리는 장면도 보인다. 문득 궁금해진다. 마을 이름치고는 매우 독특한 김량장동은 언제 생겼을까?

 

2층에 올라서자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밝은 기운이 가득하다. 저 많은 색과 부드러운 선들은 어떤 기억, 작가의 어떤 내면을 보여주는 것일까? 160x180㎝의 ‘김량장동에서’란 대형 작품 앞에 선다. 전체가 밝고 따뜻하다. 어두운 빛깔조차 둥글고 굵은 붓 터치로 인해 부드럽게 다가오니 편안하다. 한가운데 흰 기둥이 서 있는 그림 앞에 다가간다. 어디서 보았을까?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진다. 마침 미술관을 찾은 안 작가가 알려준 페이스북에 올린 작가의 말을 통해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란 사실을 확인한다.

“나는 옛 그림을 좋아한다. 서재에 붙여진 그림도 겸재의 그림이다. 겸재는 맑고 담백하다. 그의 그림은 격이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박민정 초대전이 열리는 본관은 규모가 작다. 작은 것도 때로는 힘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사립미술관이 당면한 고통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다. 문득 설립자 김윤순 초대 관장의 말이 떠오른다. “한국미술관의 규모가 작은 까닭에 IMF라는 고난을 건널 수 있었다.”

김윤경 학예사의 안내로 박민정 작가의 작품을 둘러본다. 통나무를 켠 넓은 나무판 위에 파란 이끼가 얹혀 있고 염소가 한 마리 외롭게 서 있다. 나무의 다듬어지지 않은 껍질 부분은 땅을, 이끼는 풀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작품마다 왜 염소가 등장할까?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기차여행 중 차창 밖으로 들판에 노니는 염소를 자주 보았다고 해요. 혼자 있지만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 마치 그곳이 본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다고 해요. 자신은 그렇지 못했는데 …염소는 작가의 자화상 같은 존재입니다. 자신을 염소에 투영한 작가는 그 들판 위의 염소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는 여정에 나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연과 함께 하는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됩니다.” 푸른 나무, 단풍이 물든 나무 아래에도 염소가 서 있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으려면 얼마나 외로운 밤과 긴 시간을 견뎌야 할까?

1983년 서울 가회동에서 개관 후 1994년 용인시 기흥구 현 위치로 이전한 한국미술관은 지금까지 300여 회의 국내외 기획전을 개최하며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을 위한 미술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다. 용인 한국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 한국미술관을 설립한 미술계의 대모 김윤순

서울 종로구도 아니고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소재한 작은 사립미술관인데 ‘한국’미술관이라니, 너무 거창한 이름이 아닌가? 미술관에 들어서며 피어오르던 의문을 풀기 위해 책을 펴든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한국미술관 설립자 고 김윤순 관장의 회고록 ‘비화(秘花) 그대 아직 꿈속인가’(글마당, 2010)에 실린 ‘논어’의 한 구절이다.

회고록은 ‘운명-내 인생의 모노드라마’ ‘인연-내가 만난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회상-내가 만난 김윤순 관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날개에 실린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1931년 함경북도 흥남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월남. 거제도 피난 시 교편생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문학 전공. 1978년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국립미술관 내)에서 본격적인 미술인생 시작. 1981년 ‘현대미술아카데미’를 개설. 1983년 종로구 가회동에 한국미술관을 개관 ‘한국미술아카데미’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대중의 미술교육과 현대미술 발전에 힘쓰고 있다.” 김 관장이 4년 전(2017)에 작고했으니 출판할 당시 현재형이던 문장은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현대무용의 전설로 남은 최승희,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의 특별한 인연 등 흥미로운 이야기와 진귀한 사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설립자 김윤순 관장이 용인에 ’백남준아트센터‘를 유치하는 일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10대 시절에 무용계의 전설 최승희에게 무용을 배운 적이 있는 끼 많은 문학소녀였던 김윤순은 1970년대에 인사동 화랑가를 자주 드나든다. 새로운 작품을 입수하는 날이면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작품을 감상하며 새로운 정보를 공유한다. 그의 활동은 차츰 화가들과 화랑가로 알려졌으며, 국립현대미술관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8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현대미술관회를 발족한다. 이때 김윤순은 미술관계자들의 추천을 받아 상임이사를 맡게 된다. 상임이사가 된 김윤순은 타고난 친화력과 추진력으로 현대미술관회 회원을 크게 늘려나갔고 미술관아카데미를 활성화시킨다. 미술관에서 열었던 미술아카데미 강의는 평생교육시설이 미흡했던 당시에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카데미를 거쳐 간 다섯 사람이 사립미술관을 열었을 정도니 그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1983년 어떤 독지가가 내 놓은 가회동 건물이 계기가 되고, 현대미술관회 회원들이 운영기금을 내면서 한국미술관의 역사가 시작된다. 미술관으로 활용된 가회동 건물이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이다.

작가의 고향이자 추억이 담긴 용인의 모습을 담은 안준섭 개인전 ‘김량장동에서’ 전시에서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한국과 지역 미술을 꽃 피우는 대지, 한국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 격이던 한국미술관의 운영 책임을 김윤순이 맡게 되었는데, 여러 사정이 겹쳐 민간기구화가 되고 가회동 건물을 비워야 했다. 이후 한국미술관은 예술의 전당과 근처 빌딩 지하에 세를 들고, 1989년에는 다시 서초동으로 자리를 옮겨 가까스로 미술관을 유지하다가 1994년, 마침내 용인시 마북리에 터를 잡아 오늘에 이르게 된다. 미술관의 자랑을 들려주라는 주문에 안 관장이 미소를 짓는다.

“우리 미술관의 자랑은 개관 때부터 30여 년간 ‘문화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하여 미술계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기획전도 꾸준히 열었지요.” 1983년 3월 미술관 개관기념으로 연 ‘한국인상전’은 김흥수?김인승·김환기·이종우·박상옥·박수근·이인성·이중섭·황술조·조병덕·최영림·장리석·장욱진 같은 한국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선보인 특별한 자리였다. 이러한 기획은 1992년 ‘한국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전’, 1999년 ‘한국화 어제와 오늘전’으로 이어진다.

나무로 만들어진 Scenery(풍경)을 거닐고 있는 염소조각. 윤원규기자

1985년부터 ‘임팩트 NOW’란 이름의 한·일교류전을 비롯해 국제교류전을 꾸준하게 열었던 점도 돋보인다.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갓 소개되던 1994년에 ‘여성, 그 다름과 힘 전’을 기획해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설립자가 타계한 2017년 이후 미술관의 운영을 책임지는 안연민 관장은 경기도박물관협회장을 지냈으며,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도에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한국미술계의 중진이다. “우리 미술관은 1990년대에 ‘여성, 그 다름과 힘 전’을 비롯해 페미니즘을 열심히 소개하기도 했었죠. 그동안 250여 회에 이르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1990년대에 평균 10회 이상의 전시회를 열었지요.” 그 기획력과 부지런함이 놀랍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미술관도 지금 위기를 맞았다. 수준 높은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들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 왔던 한국미술관도 코로나 정국으로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립’이지만 ‘공립미술관’을 대신해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온 한국미술관을 비롯한 사립미술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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