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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7. 화성 '엄미술관'
정치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7. 화성 '엄미술관'

주민의 사랑방 같은 미술관… 행복 오아시스
세계문화유산 융릉·건릉 이어지는 산자락에 위치
깊어가는 가을, 울긋불긋 물들어 한층 운치 더해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조각가 엄태정의 열정공간
작업실 개조해 5년 전 ‘사립미술관’으로 문 활짝
현재 독일출신 작가 카타리나 힌스베르크 작품전

1. 미술관의 야외전시장에는 엄태정 조각가의 작품과 화성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받은 최혜란 화성출신 작가 등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2.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엄미술관은 엄태정 조각가의 작업공간으로 활용되다 2016년 개관됐다. 엄미술관 전경./3. 독일출신 드로잉작가 카타리나 힌스베르크./4. 아이들이 마스크에 친환경, 재활용 등 마크를 붙이며 환경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는 ‘지구를 지키는 사람들 환경맨’ 활동./5. 독일 출신 작가 카타리나 힌스베르크(Katharina Hinsberg) 작가의 <드로잉의 선율, 맑은 공간> 전시. 윤원규기자
1. 미술관의 야외전시장에는 엄태정 조각가의 작품과 화성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받은 최혜란 화성출신 작가 등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2.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엄미술관은 엄태정 조각가의 작업공간으로 활용되다 2016년 개관됐다. 엄미술관 전경./3. 독일출신 드로잉작가 카타리나 힌스베르크./4. 아이들이 마스크에 친환경, 재활용 등 마크를 붙이며 환경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는 ‘지구를 지키는 사람들 환경맨’ 활동./5. 독일 출신 작가 카타리나 힌스베르크(Katharina Hinsberg) 작가의 <드로잉의 선율, 맑은 공간> 전시. 윤원규기자

세계문화유산 융릉과 건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자리 잡은 엄미술관도 가을에 물들어 있다. 화성 봉담 수원대 옆에 자리한 엄미술관(관장 진희숙)은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조각가 엄태정 서울대 명예교수의 작업실을 개조해 5년 전에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설립자 엄태정 작가는 제16회 국전에서 조각으로 국무총리상(1967),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1971), 1971년부터 국전 추천작가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한 한국 조각계의 거성이다.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2년 연속 초청되었으며,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김세중 조각상(1989), 제7회 이미륵상(2012), 프리즈 런던 스컬프처 2019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인 그는 2013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조각은 내 안의 ‘낯선 자’를 만나 치유하는 과정

엄태정 작가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에 매료돼 조각을 전공하게 된다. ‘추상조각의 선구자’로도 불리는 브랑쿠시는 ‘뮤즈’와 ‘입맞춤’, ‘무한의 기둥’으로 유명한 작가다. 엄 작가의 예술관을 들어보자. “추상 조각은 사물의 형태를 모방하는 게 아니다. 사물을 사유하고 사물의 본질을 수행을 통해 찾아내는 일이다.” 그는 조각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한다. “하나님, 치유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가 말한 ‘격물치지’도 엄 작가의 조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세상의 무수히 많은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으니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자기 지식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재간만 부리는 조각은 예술이 아니다. 조각하는 사람은 조각을 하지 않아야 제대로 조각한다.” 엄 작가의 예술관은 이처럼 철저하다.

생존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작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은 작가가 돌아간 후 만들면 의미가 없다. 오랫동안 작가가 작품을 위해 애쓴 공간으로 창작의 예술적 삶이 생생하게 스며 있어 미술관의 가치가 있다” 진희숙 관장이 어떤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다. 물론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작가 엄태정의 조각 작품을 나라 안팎에서 만날 수 있다. 대법원 앞에 ‘법과 정의’가, 서울 잠실운동장 앞에 ‘웅비’가, 서울대에 ‘쌍학’이 설치되어 있고, 독일 총리 공관에 영구 설치하게 된 ‘청동-기-시대-97-9’는 통일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 한국 조각계의 원로 엄태정 작가의 작업실이 미술관으로 거듭나다

“아내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곁에서 도와 드려야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진희숙 관장은 2016년 미술관을 등록하면서 화성시에 시립미술관도 하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일의 순서를 바꾼다. 바로 지역민들과 ‘어떻게 하면 소통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집중한 것이다. “처음에 관장이 거만해 보이더라는 말도 들었어요.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다면 내가 달라져야지 다짐했죠. 이웃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에 들어와서 행복함을 느끼도록 마음을 쏟았습니다. 미술관 행사가 열리면 지역민들에게 먼저 연락해서 모이게 합니다. 전시에 대해 소개하고 느낌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지요. 이제 사람들이 “‘엄미술관은 가 볼만한 미술관이다’, ‘우리 동네에 이런 미술관이 있어 행복해요’라는 말을 한다고 해요.” 프로그램도 훌륭하고 미술관 풍경도 멋지다고 소감을 밝히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곳은 4계절이 모두 좋아요. 여름은 여름대로,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겨울도 좋아요. 눈 내릴 때는 풍경이 아주 좋습니다. 봄과 여름은 생명력이 엄청 느껴지는 곳이에요.” 미술관을 운영하는 진 관장의 신념도 분명하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특별히 나는 농사일을 하는 분들을 좋아하는데 그분들을 따로 초대합니다. 옛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분들에게 최고로 대접해 줍니다. 길가의 노숙자들도 찾아오기를 바라죠.” 진 관장이 직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는 말이 있다며 소개한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히 잘해라.”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엄미술관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한해 전에 환경전과 죽음을 맞이하는 교육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놀랐어요. 불치에 병이 걸렸을 때는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우리 삶에 밀착된 프로그램이었죠.” ‘몸으로 떠나는 여행’ ‘핸드팬 소리로 마음을 치유하다’ ‘마음으로 듣는 클래식 바흐를 만나다’ ‘바른 먹거리의 다음, 바른 바를거리’ ‘환경과 피부 그리고 우리의 초상 문화’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문턱을 낮추었다 해도 미술관은 여전히 접근하기 두렵다. 이웃을 미술관으로 이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 미술관은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미술관이 아니기 때문에 오시기만 하면 완벽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일방의 전달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 관람객의 생각을 끌어내지요. 우리는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진 관장의 말대로 엄미술관은 전문 인력이 풍부하다. 학예사와 예비학예사를 비롯해 미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직원이 다섯 명이나 상근하고 있다.

■미술관은 창조적 생각의 문을 여는 공간

“지난 5월에 2021 올해의 박물관미술관 출판상을 수상했습니다.” 학예사가 챙겨주는 도록을 펼쳐보니 품격이 묻어난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독일 작가 카타리나 힌스베르크의 작품전은 12월27일까지 진행하는데, 전시 주제는 ‘드로잉의 선율, 맑은 공간’이다. 종이 위에 그어진 선이 평면에서 입체로 3차원의 전시 공간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윤곽선을 오려내 종이 위를 벗어나 평면과 공간을 넘나드는 드로잉의 선을 구현해낸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작가는 드로잉의 본질과 확장 가능성을 탐구해 온 작가로, 독일 자르브뤼켄 미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십 개의 붉은 줄이 치렁치렁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신비롭다. “작가는 50대 후반인데 평생 드로잉 작업만 하는 작가에요.” 벽에 붙어 있는 평면 드로잉 작품에 액자가 없다. “작가는 액자를 끼우지도 않고 작가가 바로 작업한 현장의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10년 전 독일 쾰른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평소에 보지 못한 작품이라 신선함과 깊은 인상을 받았지요.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번에 초대한 것입니다.” 색실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가늘게 자른 종이다. 이어지는 해설이 재미있다. “관람하던 아이들이 만지다가 끊어지면 풀로 다시 잇습니다. 이런 방식이 참 좋아요.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장점입니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좋은 것만 느끼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뭐든 상상하고 생각해봐라, 관람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수십 개의 종이 줄이 미풍에 가볍게 몸을 뒤척인다. 벽에는 색종이를 사각으로 오려낸 색종이가 붙어 있다. 떨어져 보면 평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입체적이다. 계단을 따라 2층 전시실에 올라서자 커다란 화면의 모니터에서 색종이가 춤을 추며 떨어져 내린다.

조각이 전시된 야외 풍경도 멋있다. 작품을 안내하던 진 관장이 허리를 숙여 꽃잎을 잡고 말을 건넨다. “단풍이 이렇게 드네요. 참, 예쁘죠?” 미술관 옆 재개발을 앞둔 낡은 건물이 보인다. “디자인은 우리의 전문 영역이잖아요.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 규정에 얽매여 의견을 묻지도, 건의를 받아들이지도 않아요.” 엄미술관을 찾는 국내외의 유명 예술인들이 적잖다. 그럼에도 관에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니 안타깝다. 엄미술관은 이미 역사적 공간이다. 미술관을 찾아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융·건릉과 아름다운 사찰 용주사를 함께 둘러보면 충만한 여행이 될 것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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