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1-③

교회 첨탑 4면에 조명을 밝히는 뮤지컬 시계와 차임이 설치돼 있다. 독일에서 제작한 이 시계는 하루 세 번 오전 9시, 정오, 오후 6시에 25개 카리용으로 곡을 연주하고 십이사도와 가톨릭교회 성인 순례자 미니어처 조각상이 등장한다. 카리용의 연주곡은 ‘Ave Maria’와 ‘National Anthem’ 등 종교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이다. 조각된 돌을 벽돌처럼 쌓아 지은 교회 내부는 천정을 바치는 돌기둥과 스테인드글라스의 환상적인 조화가 매혹적이다. 교회 전면의 장미 문양을 포함한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프랑스 Orléans의 Jacques와 Gerard Degusseau가 제작하고 시공에 참여해 1966년에 완성했으며, 스테인드글라스 화가로서 마지막 작품이 됐다고 한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 기도하러 온 몇 사람밖에 없어 호젓하게 성당 내부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데, 교회 관리인이 낯선 이방인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서 온 가톨릭 신자라고 하자 ‘성체성사 속죄교회’의 내력을 설명해 주고, 2004년 세계 성체대회 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곳을 찾았으며, 기념으로 성당 밖에 방문 기념 조각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중앙 제대 옆 계단 아래로 따라오라고 손짓해 내려가자 지하 묘소를 둘러보게 했고, 그곳에는 이 교회 건축에 참여한 성직자와 건축설계·시공에 참여한 사람들의 무덤이 엄숙하면서도 가지런하게 묻혀 있다. 밖으로 나와 중앙 제대 뒤편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촬영하자 우측 아래쪽 한구석을 가리키며 사진 찍으라고 하여 줌으로 당겨 그에게 보여주자 바로 그 사람이 이 작품을 만든 작가라고 이야기해준다. 오래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바티칸 미술관 스텐차 델라 세나투라에 소장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감상한 적이 있다. 그 작품에서도 오른쪽 하단에 화가인 소도마와 그 옆에 검은 모자를 쓴 라파엘로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런 특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1-②

지도 한 장을 손에 들고 호텔을 나서자 어제 보았던 과달라하라 대성당의 뾰족 종탑의 황금색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인다. 현지인처럼 성당을 향하여 성호를 그으며 눈인사하고,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 거리를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멕시코 제2의 도시답게 일터로 향하는 출근 시간이라 번잡하고, 비좁은 플라자 유니베르시다드 지하철역 입구는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로 분주하다. 멕시코에서 지하철만큼 역사와 혼성(mestizale)을 잘 드러내는 장소는 없는 것 같다. 과달라하라대학을 스쳐 지나 걷다가 제법 규모가 큰 ‘성체성사 속죄교회’를 만나 발걸음을 멈춘다. 입구 한편에는 눈에 익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조각상이 눈길을 빼앗는다. 이 교회는 19세기 초부터 급격하게 퍼진 고딕의 복고풍인 신고딕 양식으로 지은 교회로 멕시코에서 유명하다. 1897년 8월15일에 초석을 놓았으나 종교박해와 자금 부족, 국가가 직면한 경제 위기로 인해 혁명 기간 중단됐다가 75년 후인 1972년에 완공됐다. 교회 출입문은 중앙과 좌·우 3개가 있고, 중앙 출입문이 가장 크며 좌·우 출입문은 크기가 같아 가톨릭교회의 정형적인 삼위일체 형상이다. 출입문 위에는 왕관을 상징하듯 뾰족한 삼각 형상의 외형 구조가 있고 그 위에는 각각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교회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그라나딜라 나무로 헤수스 고메즈 벨라스코가 조각했고, 목재 문 중앙에 베니토 카스타네다가 만든 청동 부조가 장식돼 있어 웅장함을 넘어 미학적 아름다움이 넘친다. 전면에서 바라본 교회 외관은 정형적인 신고딕 양식으로 3개의 출입문과 옆에 높은 첨탑이 세워져 있다. 제대 위는 과달라하라 대성당의 원형 돔과 달리 신고딕 양식의 높은 뾰족 첨탑이 세워졌다. 교회 앞 3개의 고막은 바티칸 박물관 전속 디자이너이자 화가인 프란시스코 벤시벤가가 디자인하고 바티칸의 모자이크 장인들이 만들었다. 중앙 고막은 ‘하느님의 어린 양(파스칼 램)’을 나타내고, 동쪽(좌)은 ‘성 타르시시우스’ 서쪽(우)은 ‘성 비오 10세 교황’을 의미한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1-①

멕시코를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가 마리아치(Mariachi)다. 대도시 곳곳에서 멕시코 전통곡을 연주하는 유랑 악사 마리아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멕시코시티 가리발디 광장에서 마리아치 연주단의 길거리 공연을 체험했는데, 그들의 고향은 과달라하라(Guadalajara)라고 한다. 여행자의 눈에 비치는 마리아치 악단의 연주는 단순한 관광 상품처럼 느낄 수 있으나, 멕시코 사람들에게 마리아치는 삶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존재다. 아이의 생일잔치에서부터 연인들에게는 사랑의 세레나데 음악이고, 결혼식 축하 행사에도 마리아치의 연주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비(La Golondrina)’는 장례식 노래로 멕시코 사람들에게 마리아치 음악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며 삶과 함께한다. 이처럼 마리아치 문화는 대가족제도가 뿌리 깊은 멕시코에서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울타리이자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멕시코는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진 나라였으나 에스파냐에 의해 파괴됐고, 그 자리에는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가톨릭교회가 세워졌다. 침략자에 의해 인종적 문화적 혼혈이 이뤄졌고, 태양신을 믿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갈색의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종교적 변화도 맞았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혼혈 문화와 종교적 변화는 새로운 정체성을 세웠고, 지금은 그 속에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낙천적인 삶을 산다. 이런 사회문화적 변화에서 탄생한 멕시코 음악에는 그들이 빚어낸 사랑·낭만·열정의 가치가 마리아치의 음악 속에 녹아있다. 따라서 마리아치 음악은 멕시코 사람들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고,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0-⑥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거리가 멀어 문화적 교류가 부족하지만, 여행하며 무지갯빛처럼 아름다운 광장 문화를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이어 이곳에서도 접한다. 기독교 문화가 뿌리 깊은 멕시코는 신과 소통을 위해 성가를 부르고, 일상에서도 서로 간의 인간관계는 음악으로 소통하는 듯하다. 메소아메리카 광활한 대지에 다양한 모습으로 사는 멕시코는 인디오의 고대문명과 콜로니얼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다. 여행 중에 멕시코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공감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내 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 그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귀에 익은 라틴 음악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거리감이 사라지고 그들의 리듬에 빠져 흥에 취한다. 누군가는 ‘발걸음 옮길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멕시코’라고 했다. 이렇듯 멕시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에스파냐 못지않게 정열적이고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낭만적인 사람이 사는 나라다. 오늘도 컬러풀한 매력을 만끽하며 파노라마 같은 밤을 즐긴다. 세월의 실타래가 뒤얽혀 흘러간 시간은 추억 한 조각이 됐고, 가슴 한구석에 애틋함으로 채워진 그 순간은 이제 뇌리에 맴돌다 언젠가는 영겁의 시간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시간은 인생에서 자유를 갖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므로 지금까지 누리며 살았던 인식·습관·통념의 편안함에서 벗어나 흥미진진한 새로운 경험을 찾는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었을 뿐이다”라고 했다. 여행에서 새로운 문화 예술을 만나고,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일상을 보고 느끼며 공감하는 경험이 얼마나 좋을까. 내일은 마리아치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0-⑤

벤치에 앉아 한 시간 동안 멕시코 음악을 감상한다. 경쾌한 멕시코 민요 라쿠카라차와 시엘리토 린도, 북부 텍스멕스 지역 농장의 노래 칸시온 란체라 등 몇 곡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낯익은 곡이라 따라 흥얼거린다. 멕시코 민요는 인디오와 콜로니얼 문화가 융합됐고, 대부분 매우 빠른 3박자 형식 곡이라 정겹고 흥겨운 리듬의 특성이 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 잔디밭에 앉아 연주를 관람한다. 흥을 참지 못한 관객은 정자 아래서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아르마스 광장은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만큼 규모가 크지 않으나 오랜 역사를 가진 과달라하라 대성당과 함께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주변에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물이 즐비하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경쾌한 연주가 울려 퍼지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광장에 어둠이 드리우자 멕시코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은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린다. 주변에는 마리아치의 고향답게 현란한 전통 복장을 한 그들의 라이브 연주가 공원에 울려 퍼지고,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객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연주를 이어간다. 레스토랑에서 연인들은 이곳 할리스코 출신인 콘수엘로 벨라스케스가 1941년에 작곡한 마리아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세레나데 곡인 베사메 무초(Besame Mucho, Kiss Me Much)를 들으며 연정을 나눈다. 다른 한쪽에는 결혼식을 마친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멕시코 토속주 뿔케와 테킬라를 마시며 결혼식 축가이자 베라크루스 지역 민요 라밤바를 경쾌한 리듬으로 연주하자 모두가 춤추는 광란의 분위기가 연출된다. 광장 곳곳에는 마리아치와 거리 악사들이 서로 다른 곡을 연주하며 목청 높여 노래 부르지만, 소란하거나 불협화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음악은 감정이 서로 다를지라도 음의 장단이나 강약이 반복되는 리듬을 타고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경쾌한 리듬은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음악의 마력에 빠진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0-④

대성당을 둘러보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한다. 주변은 잘 가꾼 잔디밭과 관목이 있어 도심에서 평온함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광장은 콜로니얼시대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구시가지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블록만 지나면 레스토랑과 전통시장이 있어 현지인이나 여행자가 즐겨 찾는 곳이다. 저녁노을이 드리우자 광장 맞은편에 있는 대성당 첨탑과 돔이 붉게 물들고, 때마침 저녁 삼종이 울리자 길 가던 사람들이 성당을 향해 저녁기도를 한다. 밀레의 만종 풍경처럼 들판은 아니어도 목가적인 신앙심의 표상을 먼발치에서 본다. 아르마스 광장은 역사 지구 중심지로 19세기 후반 지역민들의 회합 장소로 조성했다. 그리고 멕시코를 30년이나 철권 통치한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00ED〉az) 대통령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910년에 연철로 지은 프랑스식 작은 공연 무대가 있다. 이 무대의 각 기둥에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상이 장식돼 있고, 광장 주변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아늑한 저녁 시간을 즐기려는 시민과 여행객이 벤치에 앉아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광장으로 모여들고, 무대 주변을 전등불로 밝히자 연주자들이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20명 남짓한 작은 오케스트라다. 제1 바이올린 연주자가 튜닝하고 있을 때, 중후한 중년의 지휘자가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르자 곧바로 경쾌한 리듬의 라틴곡 연주가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 과달라하라 음악 단체별로 돌아가며 무료 공연이 열린다. 오늘은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날이다. 첫 곡 연주를 마치고 지휘자는 오늘 이 공연을 위해 지원한 단체의 이름을 알리고 고맙다는 오프닝멘트를 한다. 이웃 나라 회사 이름이 귀에 들려 귀를 쫑긋 세웠으나 우리나라 기업은 없다. 기업은 후원하며 간접 홍보 효과를 기대하는 듯하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0-③

대성당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오랜 세월이 응축된 중세 건축물로서의 변함없는 기풍을 갖추고 있고, 오랜 시간의 흔적과 함께 예술적 가치도 간직하고 있으며, 여전히 과달라하라 역사 지구 최고의 유물로서 현지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콜로니얼 시대 에스파냐 가톨릭 대성당에는 성물(聖物)을 보관하는 별도의 성막인 예배당을 봉헌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과달라하라 대교구도 1808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별당을 건축했고 성막에는 성물이 보관돼 있다. 성막 공사는 건축가 호세 구티에레즈(José Gutiérrez)가 1808년에 시작해 몇 차례 중단되다가 1843년에야 완성됐다. 성막 전면 중앙에는 믿음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고, 양쪽에 희망과 자선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볼 수 있으며, 도리스양식으로 지은 현관은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적 가치가 돋보인다. 성막에는 성가정 성모, 과달루페 성모, 슬픔의 성모와 과달라하라의 수호성인인 자포판(Zapopan) 성모상이 있고, 이 외에도 성 도미니크, 성 니콜라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크리스토퍼의 성물이 제단 아래 보관돼 있다. 특히 자포판 성모는 높이 30㎝ 정도의 작은 성모상이지만 멕시코 사람들에게 자포판 성모는 과달루페 성모와 함께 가톨릭 신앙의 표징으로 숭배된다. 과달라하라에서는 도시의 수호성인을 받드는 연례행사로 매년 10월12일 자포판 성모상 행렬이 축제 행사로 이어지는데, 새천년 들어 처음 열린 2004년 세계 성체대회 때는 멕시코와 주변 라틴 아메리카지역 순례객 350여만 명이 참가하여 ‘성체성사의 신비’를 받드는 행렬 길이가 7km가량 이어지며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0-②

대성당 외형은 전면과 좌우에 각각 큰 문이 있고, 중앙 파사드 아래 주 출입문이 있으며, 정면에는 동정 마리아의 승천을 기리는 부조가 있다. 조명을 밝힌 성당 내부는 거대한 돔과 아치의 조화로 더욱 미려해 포근함을 느끼고, 현관 앞 분수대에서 내뿜는 물줄기는 저물녘 노을까지 깃들어 정취에 취한다. 대성당에는 소수의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보물급 성물이 있는데, 일반인은 관람할 수 없어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과달라하라 대교구의 추기경과 대주교의 유해가 안치된 지하 묘소에는 일반인도 들어갈 수 있어 조용히 둘러보며 자료 속 그들의 삶을 살펴본다. 대성당은 멕시코시티 카테드랄에 비견될 만큼 규모가 크고, 성당 좌우 첨탑과 돔은 주변 스카이라인을 압도하듯 웅장하며, 도리스 양식의 현관과 천장을 바치는 기둥은 미려하게 아름답다. 내부에는 상아로 만든 그리스도 십자가 조각상, 카를 5세 황제의 선물인 장미의 성모상(Virgen de la Rosa), 멕시코 예술가들의 성화 등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즐비하다. 대성당은 화재와 지진으로 여러 차례 피해를 본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에스파냐 침략 지배 초기에 성당을 세웠으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574년 억새 불씨가 지붕에 옮겨 붙어 시작된 화재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오랜 기간 복구를 거쳐 1618년에 복원을 마쳤으나, 200년 후인 1818년 지진으로 첨탑과 건물 중심 돔이 무너져 다시 한번 대규모 복원 공사를 했다. 그 후 1849년 지진으로 보수한 부분이 또 무너져 내려 복구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지진으로 여러 차례 피해와 복구를 반복했으나, 북쪽 첨탑은 현재도 약간 기울어졌지만, 여전히 중후하면서도 파격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0-①

멕시코시티 여행을 마치고 국내선을 타고 멕시코 중서부에 있는 할리스코(Jalisco)주의 주도이자 차레리아(Charreria)와 마리아치(Mariachi)의 고향 과달라하라(Guadalajara)로 간다. 이곳은 아열대 습윤 기후지대지만, 해발 1천567m의 고원 지대라 쾌적하고, 해가 지면 선선해 여행하기 좋다. 멕시코 제2의 도시이자 과달라하라를 품고 있는 할리스코주는 ‘멕시코가 할리스코(Jallisco is Mexico)’라고 할 정도로 멕시코 다운 도시이고, 멕시코 로데오인 차레리아와 함께 마리아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용설란 수액으로 만든 풀케(Pulque)와 테킬라(tequila)의 깊은 주향(酒香)을 맛볼 수 있는 본고장이다. 과달라하라는 침략자 에스파냐가 1531년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해 콜로니얼 시대 중요한 거점지역으로 발전했다. 1810년에 일어난 멕시코 독립 전쟁 때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였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공업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지금은 멕시코의 실리콘밸리로 정보통신산업 분야 중심지다. 과달라하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역사 지구(Centro Histórico) 중심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간다. 19세기에 지은 콜로니얼 건물을 개조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서둘러 광장으로 향한다. 원래 무기를 의미하는 ‘아르마스’였으나 현지인은 ‘마요르’라고도 부른다. 광장 맞은편에 우뚝 서 있는 과달라하라 대성당(Catedral de Guadalajara)이 먼저 시야를 사로잡는다. 대성당은 도시의 대표적인 고건축물로 1560년 공사가 시작됐고, 여러 차례 복원공사를 했다. 건물의 건축 양식은 겪었던 변화만큼, 복원한 시대의 다양한 형태가 혼재돼 있다. 신고딕 양식의 상징적인 첨탑, 아름다운 프랑스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다양한 유물과 예술 작품은 대성당의 보물이다. 제대는 대리석과 은으로 만들었고, 파이프 오르간은 멕시코에서 가장 크다. 내부에 작은 예배당 3곳이 있어 조용히 기도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⑦

무세오 소우마야(Museo Soumaya)를 둘러보고 이곳을 미술관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박물관이라 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곳의 에스파냐어 고유 명칭에 따라 박물관이라 칭한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처럼 전문가가 아니면 두 단어의 의미를 경계 짓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이면 어떻고 미술관이면 어떤가. 단지 그곳에 전시하고 있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면 되지 않겠는가. 여행지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관람할 때 느끼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감성의 벽을 넘어서는 데 어려울 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보고 느낀 감정이나 영감을 또 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예술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프로방스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작품 속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를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고흐 그림에서 느낀 감정을 자기 작품 속에 또 다른 문학적 시각으로 형상화해 교술함으로써 독자를 작품 속으로 인도했다. 이처럼 여행지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고 아름다운 예술의 가치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면, 이것 또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이렇듯 글을 쓰는 문학과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서로의 사상과 사유를 함께 교유(交遊)할 수 있는 다정한 친구이자 연인이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⑥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6층 전시실은 조각 예술품의 전용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은 로댕의 열렬한 애호가로 알려진 슬림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곳이라 보안 요원들의 감시도 한층 엄격하다. 그는 로댕의 작품 380여 점을 소유하고 있어 개인으로는 단연 세계 최대의 로댕 작품 소장자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한다. 6층 전시실은 로댕의 작품 외에도 여러 조각가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어 조각 예술의 극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3차원의 현실 공간에서 시각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조형 작업을 통하여 2차원적인 화면을 재구성하는 미술 작품과 달리 입체적 형상 속에 현실과 내면 세계를 함께 표출시킨 조각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이곳에 있는 많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모두 진품일까 하며 순간적으로 한 번쯤 의심해 본다. 하지만 진품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미술 작품과 달리 조각 작품은 하나의 형틀에서 찍어낸 조형물에 제작 순서대로 에디션 번호를 붙이는 작품이 다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여러 곳의 로댕 전문 갤러리에서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실 때문이다. 삼성문화재단이 한때 운영했던 갤러리 플라토(Plateau)에도 로댕의 ‘지옥의 문’ 7번째 에디션 작품과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12번째 에디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 현재 이 작품은 호암미술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어 관람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⑤

2층에는 단아하면서도 예쁜 생활 집기와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펜던트 초상화 작품이 있고, 회중시계와 여러 시대의 옛 동전이 전시돼 있다. 또한 멕시코에서 사용됐던 과거 지폐도 전시돼 있으나 발행 지역명이 다른 것이 이색적이다. 아마도 당시 연방마다 서로 다른 지폐를 발행한 듯하다. 3층에는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소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중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공예품이 있다. 특히 상아를 정교하게 세공해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고, 이것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나 보인다. 4층과 5층에는 수많은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엘 그레코, 틴토레토, 고흐, 마티스, 모네, 르누아르, 미로, 달리, 피카소의 작품을 비롯해 작품 하나하나가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황홀감에 빠진다. 이처럼 당대 세계 최고 화가들의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렬한 색감과 더불어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멕시코 작가의 작품은 색다른 미술 세계로 인도하고, 낯설지만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방대한 컬렉션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과 그녀의 남편이자 남미 벽화 운동의 선구자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Man at the Crossroads)’에서는 더욱 강렬함을 느낀다. 당시 이들의 작품은 내용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의 호소력이 뛰어나고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정부 박해로부터 해방됐다는 후문이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④

로댕은 ‘지옥의 문’을 만들 때 피렌체 출신의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산 조반니 광장에 남긴 ‘세례당의 청동문’이라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로댕은 1880년부터 1917년에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을 위해 기나긴 시간을 바쳤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로댕 박물관 수석학예관이 ‘지옥의 문’을 짜 맞춰 완성한 것은 로댕의 사후 9년이 지난 1926년에서야 이뤄졌다. 단테의 ‘신곡 - 지옥’ 편 33번째에 나오는 ‘우골리노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지옥의 문’에는 여러 인물상이 등장한다.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해 ‘세 망령’, ‘웅크린 여인’, ‘아담’과 ‘이브’ 등은 독립된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지옥의 문’에 등장한 인물들은 로댕의 인생 말년까지 그에게 풍부한 예술적 영감을 줬다. 비선형 원형 공간에 전시된 걸작을 뒤로 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층의 전시 공간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치 커다란 소라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층고가 높아 계단 수가 많아도 지루하지 않게 벽면에 다양한 작품을 사진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어 느릿느릿 감상하다 보면 위층에 다다른다. 올라가는 계단 중간 한가운데서 미켈란젤로의 대작 ‘피에타(The Pieta)’를 만난다. 피에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기독교 예술의 상징적인 대표작이다. 피에타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서 원작을 볼 수 있고, 수많은 예술가가 이 작품을 만들었기에 유럽 대성당에서는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조각이나 유화, 목각 작품 등으로 만날 수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③

찬란했던 멕시코의 다양한 고대 문명 시대 석조 유물은 다수 전시돼 있으나 국립인류사박물관에 비할 바 못 되고, 콜로니얼 시대 종교 예술품은 가톨릭 성화와 성물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콜로니얼 시대 작성된 역사적인 기록 문서, 주화와 지폐도 소장하고 있는데, 식민 지배를 받던 시대 동전은 세계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며, 그 외에도 메소아메리카 지역 예술 작품도 다수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 중 한 부분으로 만들어졌는데, 지옥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기 전 자기 삶과 운명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인간 내면 세계의 팽팽한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일명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라고도 한다. 로댕의 전기를 쓴 릴케는 이 작품에 대해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를 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뇌가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거친 질감과 인물의 본질적 묘사에 탁월했던 로댕의 대표작을 만나는 행운을 이곳에서 찾았다. 로댕의 원작은 파리에 있는 로댕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니, 이곳의 작품은 후순위 에디션 작품처럼 느껴진다. 같은 공간에서 ‘지옥의 문’을 감상한다. 밝은 갈색의 청동 작품으로 단단하고 차가운 질감이 뒤틀린 인체를 거칠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표현해 생동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면과 굴곡이 있어 박물관의 조명 불빛의 반사로 다양함을 느낀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②

박물관 앞에 다다르자 입장하기 전부터 건물 형상이 신비로움을 자아내어 멕시코가 가진 혼성의 예술 문화 사조가 설계에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장품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도 커진다. 박물관은 세계 10대 거부이자 멕시코 최대 기업군 카르소 그룹과 텔멕스 텔레콤의 회장인 카를로스 슬림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소우마야를 위해 세웠고, 일명 플라자 까르소(Plaza Carso)라고도 한다. 카를로스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의 그룹 명칭에서 알 수 있다. ‘Carlos’와 ‘Soumaya’의 첫 글자를 조합해 ‘Grupo Carso’라고 지었을 정도였으니, 아내를 위해 세운 ‘무세오 소우마야’에 소장된 예술품의 가치도 짐작할 수 있다. 카를로스는 26세 때 17세인 레바논 이민자인 소우마야를 만나 결혼했다. 소우마야는 서른 살에 신부전으로 어머니 콩팥 한쪽을 이식 받았으나 1991년 51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카를로스는 예술 애호가였던 아내를 위해 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그 후 카를로스는 멕시코시티 옛 공업지대 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무세오 소우마야’를 건립했다. 박물관은 1만6천여 개의 육각형 알루미늄 모듈을 사용해 지었다. 건물 외장과 전면 파사드에 불투명한 마감재를 사용해 노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건물의 수명을 최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건축적 특징이 돋보인다. 검색대를 거친 후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층고와 전시된 대작의 예술품이 관람자를 압도한다. 이곳에는 대규모 전시실 6곳과 강당, 도서관, 수장고를 포함한 여러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다. 박물관은 기원전 400년대 고대 유물을 포함해 수십 세기에 걸친 6만6천여 점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럽 작가들의 다양한 회화와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기간도 있다. 그리고 멕시코를 포함한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근·현대 예술가 작품과 가구 및 금·은 세공품을 비롯한 장신구 등 많은 공예품도 전시돼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①

여행지에서 찾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 나라 예술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특히 멕시코는 고대와 중세문명의 반복된 폐허 위에 콜로니얼 시대를 거치면서 고대와 근대의 다양한 혼합 문화를 형성했고 멕시코혁명 이후에는 새로운 융합 예술을 꽃피우며 세계적인 예술가를 분야별로 배출했다. 그들 중에는 멕시코 전통과 혁명적 정신에 공명(共鳴)하며 뿌리 내린 민중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오가며 멕시코 전통문화와 결합해 화려한 화풍으로 발전시킨 화가이자 리베라의 아내 프리다 칼로가 있다. 멕시코의 융합 예술의 영향으로 1920년대에는 세계 미술가들이 대거 멕시코를 찾으며 전위예술의 메카가 됐고 20세기 중반에는 과거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예술은 이 세상 어느 곳의 어떤 사람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는 표현 방법이다”라고 외치며 멕시코 전통미술을 파블로 피카소 및 앙리 마티스 양식과 결합해 단순함과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화풍을 만든 루피노 타마요라는 현대미술의 대가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오늘은 멕시코시티 마지막 여정으로 많은 예술 애호가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박물관 중 하나라고 일컫는 무세오 소우마야에서 드라마틱한 멕시코 문화와 예술 세계를 감상하러 발길을 재촉한다. 멕시코시티에 찬란했던 멕시코의 고대와 중세문명의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인류사박물관이 있다면 예술 분야에선 외관부터 정형적인 건축물의 형상과 달리 비대칭이고 파격적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의 곡선이 마치 스트레이트 실루엣 드레스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처럼 날씬한 무세오 소우마야가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⑨

‘올멕’은 나우아틀어로 ‘고무 사람(rubber people)’이란 뜻의 올메카틀(olmecatl)이 변형된 데에서 유래했다. 박물관과 치첸이트사를 비롯한 고대 유적지에 있는 고무공 놀이 석조 원형 틀도 올멕 시대에 처음 시작했다고 하니, 이 놀이 역시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와 연관된 해와 달은 빛과 어둠·삶과 죽음·기쁨과 고독이 공존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고대 벽화와 현대 미술에도 희화돼 있다. 아스텍의 해골과 얼굴 가면은 죽음과 삶의 공존을 나타내는 정체성으로, 현대 문학과 미술에 두드러지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는 멕시코 문화가 갖는 이원성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 정체성은 콜로니얼 시대 기독교 문화와 혼합된 ‘죽은 자의 날’ 전통으로 계승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 이렇듯 멕시코 문화에서 ‘죽음’은 마음에 꺼리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 존재하는 또 다른 단면이고,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 인생관에서 멕시코 문화의 이중적인 면을 본다. 박물관만큼 그 나라 문화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통로도 드물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웅장하고 고색 찬란한 박물관 외관에 익숙한 경험에 비춰 입장할 때는 다소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박물관을 둘러보고 유물의 가치·종류·수량 뿐만 아니라 독특한 건축 설계와 전시 방식은 손색이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후 신축하는 나라에서는 이 박물관을 많이 참고한다고 한다. 여행이란 계획하고 정해진 길에서 많은 것을 만날 수 있지만, 벗어난 길에서도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박물관 여행은 처음부터 찾는 일정이었지만, 현장에서 예상과 달리 멕시코의 다양한 고대 문명을 만났고, 문헌과 사료 조사과정에서 고대 사회의 변천과 흥망 과정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도 보았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⑧

치아파스고원 원주민들을 뒤로 하고 제21실에 도착했다. 멕시코 서북부 시에라 사막과 계곡에 거주했던 세리(Seri)와 파파고(Papago) 등 여러 부족의 농경 생활과 의식·바구니 세공 기술·사슴 춤을 포함한 다양한 의식에 중점을 둔 문화관이다. 제22실은 박물관의 마지막 전시실로 멕시코 13개 주에 퍼져있는 나우아족과 같은 언어적 공통성과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공유했던 부족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멕시코 자긍심의 상징인 국립 인류사박물관은 1964년에 개관해 아프리카에서 발현한 원시인이 메소아메리카 지역으로 이주한 과정과 원주민 문화의 형성 시기 별로 구분, 다양한 유물 8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은 올멕(BC 12세기∼AD 2세기)과 마야(BC 9세기∼AD 16세기), 사포텍(BC 5세기∼AD 8세기), 테오티우아칸(BC 2세기∼AD 7세기), 톨텍(AD 7세기∼AD 12세기), 아스텍(AD 13세기∼AD 16세기) 문명으로 이어지고, 박물관은 선사 문화와 고대 문명을 국가의 상징인 정체성과 이념적·과학적·정치적 위업의 총합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주요 고대 문명 별 사료를 살펴보면, 올멕인은 종교적 제의로 인신공희를 처음 했고, 그들이 썼던 문자와 달력은 그 후 마야 문자·숫자·달력에 영향을 줬다. 올멕인의 예술성은 ‘돌에서부터 샘솟는 생각으로 거대한 석조 두상을 창조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돌을 사용한 역동적인 이미지 창조에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박물관 안팎 곳곳에 있는 올멕의 얼굴 석조 유물과 회화 작품은 메소아메리카에 있었던 다른 문명과 달리 동양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듯하다. 일부 고고학자의 마야 문명의 중국 기원설을 주장하는 가설을 떠올리니 궁금증이 더해진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⑦

제14실은 히스패닉 시대 이전부터 미초아칸(Michoacan) 지역에 거주하였던 퓨레체리오(Pureecherio) 부족의 낚시와 축제 행사 그리고 조상 공경 의식을 전시하고 있다. 제15실은 멕시코 중부 광활한 지역에 거주하였던 오토파메(Otopame) 부족의 세계관·농경 의식·수호신과 파메(Pame)와 마틀라친카(Matlatzinca) 등 여러 부족의 조상 공경 의식을 보여준다. 제16실은 시에라 데 뿌에블라 지역에 거주하였던 나우아(Nahua) 부족을 포함한 여러 집단의 섬세하고 다양한 바구니·깃털·보석 세공과 직물·종이 생산에 대한 그들의 예술적 전문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전시실로 이 분야 관심 있는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제17실은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 지역의 믹스텍과 사포텍족을 포함한 16개의 토착 부족이 거주했던 광범위한 지역의 화려한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제16실과 함께 멕시코 고대 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제18실은 걸프 연안 안티구아(Antigua)강변에서 중앙 베라크루즈(Central Veracruz) 지역과 타마우리파스(Tamaulipas)의 파누코(Panuco) 지역에 거주했던 우아스텍(Huasteca)과 토토나카판(Totonacapan) 부족의 토토낙(Totonac) 직물과 우아스텍의 다양한 악기가 전시돼 있다. 제19실은 유카탄반도의 저지대 정글 속 마야 부족이 어업과 농업을 통한 풍요로운 삶의 흔적과 정글에서 가장 고립되고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종족 중의 하나인 라칸돈(Lacandon) 마야족의 조상 공경 의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곳이다. 제20실은 치아파스고원 원주민의 종교의식 관련 물건과 음악·직물과 호박 세공 기술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⑥

전시실 지하에는 팔렝케(Palenque)의 궁전 지하에 있는 ‘키니치 하나브 파칼’(K'inich Janaab Pakal) 왕의 석관묘를 완벽하게 재현해 놓아 관람자의 눈길을 끌고, 300개의 옥 조각으로 된 마스크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이처럼 마야는 높은 수준의 예술·건축·수학·달력·천문학 기술을 가진 문명국이었고, 그 흔적은 후고전기 대유적지 치첸이트사에서 볼 수 있다. 제10실은 멕시코 서부 지역 유물 전시실로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이 형성한 사회의 유물로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 담긴 토기와 인체 개념 및 금속 가공 기술이 두드러진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제11실은 멕시코 북부 치와와(Chihuahua)주 파키메 고대 유적지(Archaeological Zone of Paquime, Casas Grandes)에서 발굴한 다채색 토기·인물·동물 모양 항아리와 알타 비스타 찰치우이테스(Alta Vista Chalchihuites) 유적지 발굴에서 출토한 유물이 있고, 호호캄(Hohokam) 및 아나사지(Anasazi) 고대 정착촌에서 출토한 유물을 볼 수 있다. 1층 전시실 탐방을 마치고 2층으로 발길을 옮긴다. 2층도 11개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층과 달리 멕시코 초기 토착 원주민과 지역별로 분화한 부족들의 오랜 삶의 흔적들이 정리돼 있고, 제16실 시에라 데 푸에블라(Sierra de Puebla)·제17실 오악사카(Oaxaca)·제21실 시에라스 사막과 계곡(Sierras, Deserts and Valleys)이 타 전시실보다 규모가 크며, 전시하고 있는 유물도 다채롭다. 제12실은 멕시코 고대 토착 부족의 독특한 세계관·종교·경제·의식·춤·의례·조상 숭배·사회 조직과 일상생활을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제13실은 그란 나야르(Gran Nayar) 지역에 거주하였던 코라(Cora)·후이촐(Huichol)·테페우아노(Tepehuano)·나우아 부족의 구슬 세공·실 염색·파워 오브제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 두드러진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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