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칼럼] 문화도시, 문화나눔으로부터

지난 18일 금요일 오후 6시30분, 쉬즈메디병원 2층 로비에선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관객들은 멋진 음악을 감상하며 즐겁고 환환 표정이었다. 배가 불룩한 산모와 남편이 손을 잡고 같이 왔고, 가족과 함께 인근 주민들도 나왔고, 병원 일에서 잠시 손을 놓은 의사와 간호사들도 보였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위치한 쉬즈메디병원에선 매월 셋째주 금요일 저녁이면 이렇게 음악회를 연다. 병원 로비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지만 산모와 그 가족, 시민들로 로비는 꽉 찬다. 분위기도 여느 공연장 못지않고, 관객들의 음악감상 매너도 좋다. 쉬즈메디 음악회는 이번에 120회를 맞았다. 산부인과를 개원하던 2002년부터 시작해 10년이 됐다. 음악회는 10주년 특집공연으로 전자바이올리니스트 박은주와 브라스노리앙상블이 무대에 섰다. 이날도 관객들은 음악에 흠뻑 빠져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음악회는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병원장 부부가 음악을 통해 산모와 가족, 지역 주민들과 작은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바램에서 시작됐다. 공연은 무료다. 쉬즈메디병원 10년째 매월 음악회 하지만 출연하는 음악인들이나 공연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이곳에선 클래식부터 오페라, 가곡, 합창, 국악, 영화음악, 퓨전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선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등 유명 음악가도 다수 출연했다. 10년 동안 관객들 수준도 높아졌고, 입소문이 나면서 고정팬도 생겼다. 2011년 5월엔 100회 특집으로 김대진씨가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초청,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출산 장려를 위한 해피맘콘서트로 열었다. 이기호 원장은 우리 병원에선 연간 2천여명의 새 생명이 탄생한다며 단순히 아기만 낳는 병원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격조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어 음악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쉬즈메디에선 인문학 강좌도 열린다. 2010년 7월부터 1년 반 동안 단국대 임두빈 교수를 초청, 매월 두차례 동서양을 망라하는 미술사 강좌를 마련했다. 지난해부터는 매주 수요일 저녁 한국사 교실을 열고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강좌는 이 원장의 중학교 동창인 한신대 안병우 교수가 총괄을 맡아 기획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사 및 동아시아 속 한국 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안병우이남규권오영 한신대 교수를 비롯해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임기환 서울교육대 교수, 하일식 연세대 교수, 송기호 서울대 교수,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 등 한국 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강사진이다. 쉬즈메디가 매월 개최하는 음악회나 매주 여는 인문학 강좌는 모두 무료다. 병원에서 모든 경비를 댄다. 병원 내원객과 시민을 위한 문화 나눔이다. 문화 나눔은 꼭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재능을 기부하고, 어떤 사람은 북카페를 오픈하고, 어떤 사람은 무료 공연이나 전시를 열어 시민들과 함께 나눈다. 문화도시, 시민이 만들고 가꾼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도시를 꿈꾼다. 저마다 문화도시 창조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다양한 문화예술 정책과 사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문화는 관이나 관료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시민이 만들고 가꾸는 것이다. 막연하게 역사 전통 예술이 살아있는 문화도시를 만들자는 구호를 외치기 보다는, 시민들이 생활 가까이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진정한 문화도시다. 시민들의 생활이 곧 문화가 되는 도시여야 한다. 그럴려면 자치단체나 예술단체, 예술인들만이 문화예술을 선도해선 안된다. 쉬즈메디병원처럼 문화를 나누어야 한다. 수원 행궁동의 대안공간 눈과 지역주민들이 어우러져 예술마을을 만들었듯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에이블아트센터처럼 소외된 계층의 장애인들까지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공동체가 문화공동체로 커 나갈 수 있다. 문화도시는 결국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행복은 어디 있나요?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가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얼마전 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글이다. 글을 읽으며 그래, 난 행복해. 감사하며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해가 가는 이 즈음에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카톡으로 여러 사람들한테 글을 퍼 날랐다. 한국인 행복순위 세계 97위 행복한가 그렇지 못한가는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다(아리스토텔레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링컨),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앤드류 매튜스)라는 명언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행복이란게 내 맘속에 있음을 안다. 그런데 간과하고 잊고 살 때가 많다. 험한 세상, 힘겹게 살면서 과연 내가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성공을 통해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국민들은 별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148개국에서 15세이상 국민 1천명씩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행복 순위는 97위로 나타났다. 갤럽은 조사 대상자들에게 어제 생활에서 잘 쉬었다고 생각하는지, 하루종일 존중받았는지, 많이 웃었는지, 재미있는 일을 했거나 배웠는지, 즐겁다고 많이 느꼈는지 등 5가지 질문을 한 뒤 그렇다고 답한 비율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조사에서 국민이 행복감을 느끼는 순위 공동 1위는 중남미의 파나마와 파라과이였다. 두 나라 국민은 85%가 그렇다고 답해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엘살바도르ㆍ베네수엘라ㆍ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들이 81% 이상의 긍정 반응을 보여 10위권에 들었다. 한국은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63%로 그리스ㆍ몽골ㆍ카자흐스탄ㆍ체코 등과 함께 공동 97위에 머물렀다. 미국과 중국은 공동 33위, 일본은 59위였다. 최하위는 싱가포르였다. 이번 조사 결과는 국민소득이나 수명 등의 객관적 지표와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파나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90위다. 반면 행복감 꼴찌인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5위다. 박근혜 국민행복시대 기대감 한국인은 왜 행복감을 덜 느끼는 걸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하면서 남보다 먼저 출세해야 하는 무한경쟁에 내몰린 까닭은 아닐지. 양극화, 상대적 박탈감, 불평등, 불균형 등을 체감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때마침 제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근혜 당선인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국민 한분 한분이 새로운 꿈을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국민행복은 시의적절한 화두다. 새해, 새 대통령의 분투를 기대한다. 국민 모두 진정 행복하고 싶으니까. 이연섭 논설위원

[경기만평] 연말 국회방송

[이연섭 칼럼] 엄마표, 노인표, 택시표…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가 지난달 19일 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상보육을 확대하는 예산안을 의결했다. 취학전 아동의 어린이집 보육과 가정 양육수당 예산을 정부안보다 1조2천915억원 늘려 3조6천152억원으로 증액한 것이다. 0~2세 무상보육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축소하려던 정부 방침과 달리 전 계층으로 환원했다. 전업주부 자녀들은 반나절만 보육료를 지원하고 맞벌이는 종일 지원하도록 틀을 바꾸려 했지만 이것도 반영하지 않았다. 또 보육시설을 이용않는 0~5세 자녀 가정에는 소득에 상관없이 매달 20만원씩 양육수당을 지급(7천476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까지 지원하되 3~5세는 10만원만 계획이었지만 국회가 모든 계층으로 대상을 넓히고 금액도 일괄 20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0~2세 무상보육 지원 대상을 축소한다는 방침을 정했을 때 대선주자들과 복지위 의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후보 모두 0~5세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법 어기며 기초노령연금 인상 # 보건복지위 예산소위는 지난달 20일엔 기초노령연금을 20% 올리는 안을 통과시켰다.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가입자 3년치 평균소득의 5%(월 9만7천100원)에서 6%(11만6천600원)로 올리는 증액안을 의결한 것이다. 액수로 따지면 20%를 더 주는 내용이다. 이대로 하면 예산이 6천484억원(지방비 1천647억원 포함) 더 필요하고 노령연금 예산도 총 5조원으로 늘어난다. 복지부가 연금제도개선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무시됐다. 예산소위의 증액안 의결은 법률 위반이다. 기초노령연금법은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10%로 단계적으로 올리되 재원 대책, 인상 시기와 방법 등은 국회에 연금제도개선특위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9대 국회에는 연금제도개선특위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기초노령연금을 2017년까지 두배로 인상하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처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 택시에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법적 지위를 주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이 지난달 21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버스와 마찬가지로 준공영제 혜택을 받게 하고, 환승할인 등으로 발생한 적자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버스업계는 즉각 택시의 대중교통수단 포함에 반발, 전면 파업에 돌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국의 택시업계 종사자는 개인택시 16만명을 포함해 30만명이다. 이 택시표를 의식해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택시법을 과속으로 밀어부쳤고, 갈등과 혼란만 부추기다 보류된 상태다. 지금도 택시업계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연간 7천600억원 규모의 유가보조금과 부가가치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이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켜 더 지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현금 퍼주기 복지는 포퓰리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선심성 예산, 퍼주기 입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엄마표를 위한 무상보육 예산 증액, 노인표를 위한 기초노령연금 인상, 택시표를 위한 택시의 대중교통화 입법 등이 모두 그렇다. 부도가 나면 세입자의 임대보증금을 정부가 전액 책임지는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법 개정안, 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 등도 건설업계, 농어민의 표를 겨냥한 것으로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포퓰리즘에 빠진 국회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행동이다. 헌법 제57조에 국회는 정부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채 이상스런 작태를 보이고 있다. 나라 곳간과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책임함과 부도덕함이 놀랍다. 국가 재정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이뤄져 있다.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이 아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민감한 법안들은 사전에 철저하게 심의를 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표를 의식한 현금 퍼주기 무상복지, 안된다. 선거가 끝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장밋빛 공약들로 국민을 우롱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원전이 불안하다는데…

성남환경운동연합의 김현정 교육팀장은 요즘 핵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성남환경운동연합은 올해 탈핵운동의 목표로 수명을 연장해 가동중인 고리원전 1호기 폐쇄와, 오는 20일 30년의 설계수명이 끝나는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 반대로 잡았다. 그녀는 이를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원전의 위험성 등을 알리고 있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300년 땅 속에 묻어야 하고, 고준위는 최소 1만년 땅 속에 묻어야 자연상태로 돌아간다. 전기 만드는데 사용하는 핵연료 사용기간은 4년6개월이다. 4년6개월 사용하고 1만년이상 핵쓰레기를 관리해야 한다. 인간의 시간 개념에서는 거의 영원한 시간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있는 것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처럼 그녀는 핵 폐기물을 걱정하고,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고민한다. 아이들에게 만큼은 핵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안으로 성남환경운동연합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라는 모토로 작은 공동체 절전소를 제안하고 있다. 또 하나,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해 소비하는 에너지 자립도시 계획을 제안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민 햇빛발전소다. 성남환경운동연합은 얼마전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통해 성남시민 햇빛발전소를 공식 제안하고 시민주주 모집에 나섰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원전의 위험성이 커지자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줄이기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 2월엔 성남시 등 전국 지자체 44곳이 탈핵선언을 하고 에너지 정책의 변화와 신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를 촉구했다.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햇빛발전소를 건립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류 최악의 환경위기다. 일본은 대지진 이후 54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전면 중지시켰다. 올해 들어 전력난과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으로 오이원전을 포함해 2기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조치에 일본 국민들은 대규모 원전 반대시위에 나섰다. 일본은 전력공급의 30%를 차지하던 원전의 가동없이 올 여름 폭염을 버텨냈다. 물론 화력발전소를 풀가동했고,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등 연료수입이 크게 늘었다. 국민들은 강도 높은 절전을 실천해야 했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 올해 일본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는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원전 반대는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다. 독일에선 폐쇄원전의 재가동문제로 2010년 원전폐쇄 인간띠 잇기 행사가 열렸고, 2011년엔 25만명의 대규모 시위에서 원전의 조기폐쇄를 요구했다. 이에 독일 민주당은 2022년까지 자국내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23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현재 발전량의 34%를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다. 제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4년까지 원전 14기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원자력 비중은 48.5%에 달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원전관리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국내 원전은 올해 들어 최근까지 1기당 평균 2.5일 꼴로 가동이 중단됐다. 올해 고장으로 가동을 멈춘 횟수는 모두 9차례이며, 이로 인한 가동 중단 일수를 합치면 총 58일에 달한다. 곧 설계수명이 끝나는 월성1호기는 올해 모두 4차례 고장이 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0년간 수명 연장을 추진중이나 주민과 환경단체에선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를 제기하며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안전관리 직원의 마약 복용, 사고 은폐, 불량 부품, 납품 비리 등 불미스런 사건사고가 줄을 이어 원전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및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원전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원전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원전 확대가 녹색성장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이란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가 담보돼야 한다. 어느 나라나 안전성 확보와 국민 설득 없이 원전 확대는 불가능하다. 위험한 원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시골학교’ 두창초교의 기적

용인시 원삼면 두창리에 소재한 두창초등학교는 주위가 온통 논 밭인 전형적인 시골 학교다. 원삼초등학교 두창분교로 불려오다 지난 9월 1일 두창초등학교로 승격됐다. 15년만에 다시 본교가 된 두창초교는 25일 개교식도 가졌다. 폐교 위기까지 갔던 학교가 오히려 승격돼 살아난 것을 두고, 주변에선 시골학교의 반란이라고 떠들썩하다. 시골 학교가 분교에서 본교가 된 것은 경기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원래 이 학교는 1971년 두창초등학교로 개교했다. 하지만 두창리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여느 시골 초등학교처럼 학생 수가 급감했다. 1997년에는 30명 이하로 내려가 분교가 됐고, 해를 거듭하며 학생 수는 점점 더 줄었다. 본교에서 분교로, 분교에서 폐교 위기에까지 처했다. 이 학교가 다시 100명이 넘는 번듯한 학교가 된 것은 2006년 부임한 방기정 전 분교장(현 교무부장)의 자연을 벗삼은 특성화 교육과, 이를 지지해온 교사와 학부모의 노력 때문이었다. 31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방 부장은 모두가 기피하던 이 학교에 지원했다. 초등학교부터 성적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싫었던 그는 시골 학교에서 자연 친화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었다. 폐교 위기서 15년만에 본교 승격 방 부장은 먼저 40분 공부 후 10분 휴식이라는 수업 시간을 바꿔 블록 수업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80분 수업하고 30분 휴식 시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수업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학생들도 80분 동안 수업을 계속하니 집중력을 키울 수 있었다. 시골 학교라는 장점을 살려 학교 밖 수업도 늘렸다.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 주변을 산책한다. 걷기 운동도 하고 대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동네 텃밭을 활용해 체험 활동을 늘렸고, 논두렁 달리기외발 자전거 타기 등 체육 활동도 늘렸다. 두창리 아이들이라는 학교 문집도 만들었고, 두창 밴드를 만들어 학예발표회도 가졌다. 아이들 교육은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학부모와 동네 주민의 참여 프로그램도 늘렸다. 이들은 두창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 학생이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자원봉사, 돌봄 교사로 수업에 참여했다. 어떤 학부모는 자녀와 함께 등교해 아침 시간 저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고, 어떤 학부모는 학습이 부진한 학생의 수업을 도와줬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아이들의 교육을 토론하기도 했다. 이렇게 본교로 승급되기까지 교사들은 휴가를 반납하며 헌신했고 학부모들은 학교일에 발벗고 나섰다. 학생들 입에선 학교가 즐겁다 학교에 놀러 오는 것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자연 벗삼은 교육, 학교가 즐거워 방 부장과 학부모의 노력은 3년이 되는 시점부터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20여명까지 줄었던 학생 수가 2011년 100명까지 늘어난 것이다. 이들 중 80% 이상이 타지에서 온 학생이다. 서울 강남구나 성남 분당구 등 우수 학군 지역부터 충청도 지역 학생들까지 몰렸다. 두창초의 학생 수가 증가하면서 마을 역시 살아났다. 20가구 이상이 새로 집을 지어 이사 와 마을 규모도 커졌다. 아이들 덕분에 마을주민간 유대도 깊어졌다. 두창초의 학생수가 늘어난 배경에는 입시교육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하는 교육과정이 있었다. 수업은 철저히 교과서 안에서만 이뤄지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들과 밭에서 뛰어놀며 시간을 보냈다. 사교육 중심의 도시 초등학생과 달리 두창초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익숙했고, 때문에 얼굴은 그을려 있었지만 늘 밝았다. 두창초의 이런 특별한 교육활동은 몇몇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학교학생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교육공동체를 보고 두창스럽다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두창초교의 본교 승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기도내 학생이 매년 3만명씩 줄고있는 추세에, 시골 분교 학생이 3~4년새 수십명 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행복하고 창의적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어린이를 키우려는 지역공동체의 노력이 이뤄낸 작은 학교의 기적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두창초교는 대한민국 교육의 바람직한 모델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農政이 안 보인다

식량 자급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전년보다 5%포인트나 떨어진 22.6%다. 이는 해당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1970년 80.5%에서 1980년 56.0%, 1990년 43.1%, 2000년 29.7%로 계속 낮아졌다. 지난해 품목별 자급률은 쌀 83.0%, 보리쌀 22.5%, 밀 1.1%, 옥수수 0.8%, 두류 6.4% 등이다. 태풍 피해가 큰 올해는 식량 자급률이 지난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초 농림수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가장 최근 자료다. 농림수산식품부의 2020년 식량 자급률 목표가 32%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식량안보에 적신호가 이미 10여년 전에 켜진 셈이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 몰아닥친 극심한 기상재해는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식량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상상만해도 섬뜩하다. 그런 상황은 이미 지난 2008년 3월 현실로 드러났었다. 국제 쌀값의 기준이 되는 태국산 쌀값이 t당 760달러로 두달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뛰었고, 곧 1,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당시 세계 2위 쌀 수출국이던 인도는 쌀 수출 하한가를 t당 650달러에서 1,000달러로 올린 후 며칠 뒤 아예 중단립종 쌀의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나라는 영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대륙봉쇄령으로 식량난을 겪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어 농업 자립에 심혈을 기울여 곡물을 수출할 만큼의 생산력과 경쟁력을 갖추었다. 특히 영국은 최근 국제 유가 폭등과 함께 곡물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2010년 1월 발빠르게 식품 2030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영국의 농업과 식품산업은 영국 제조업 중 가장 큰 산업에 속한다. 산업 규모가 800억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36조원에 이르고, 종사자만 해도 360만명에 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들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국가는 위기에 처했다. 때로는 정권이 무너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2007~2008년 카메룬멕시코인도네시아 등 30여개국에서 발생한 시위나, 2011년 초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을 휩쓴 재스민혁명 등은 모두 식량 부족 문제가 직간접적인 원인이었다. 해마다 식량 자급률이 낮아지는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남아 돈다던 쌀마저 지난해 자급률이 83%까지 떨어졌고,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하면 미국캐나다브라질호주 등 곡물 수출국은 언제든 인도처럼 수출 금지를 취해 국내 식량 확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농업개발,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성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의 경우 의욕만 앞섰을 뿐 미국에 수출 엘리베이터를 확보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해외 농업개발사업도 지난 4년간 946억원을 쏟아부어 곡물을 확보했다지만 국내로 반입된 곡물은 0.4%에 불과하다. 대부분 곡물이 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서 판매해 이윤을 챙기고 있어 국내 곡물가격 안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해외에서 곡물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내 생산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데 생산기반 확충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농지가 절대 부족하다. 정부가 목표로 정한 2020년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175만㏊의 농지가 필요하지만 각종 개발사업으로 농지가 갈수록 줄어 2020년엔 160만㏊도 못미칠 공산이 크다. 이렇게 우리나라 농정 상태가 문제투성인데 제18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인사들이 농업 정책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쿤둥하게 여긴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참 큰일 나게 생겼다. 임병호 社史편찬실장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하선’ 같은 왕, 어디 없을까

영화 광해를 봤다. 이병헌이 사극에 첫 출연을 하는데, 재밌다는 얘기도 들리기에 별 기대없이 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괜찮았다. 잘 만들었다. 유쾌했고, 메시지도 있었다. 대선 정국 속에서 정치판이 시끄러운 요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마치 후보 검증을 위해 충무로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제왕의 자격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과연 누구인가?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에 내지말라 이르라는 한 줄의 글귀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광해군 재위시절 승정원일기에서 사라진 15일간의 기록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팩션(faction) 사극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또 한 명의 광해의 얘기다. 폭군 광해 vs 성군 광해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해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이에 허균은 기방의 취객들 사이에 걸쭉한 만담으로 인기를 끌던 광대 하선을 발견한다. 왕과 똑같은 외모는 물론 타고난 재주와 말솜씨로 왕의 흉내도 완벽하게 내는 하선은 영문도 모른 채 궁에 끌려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하룻밤 가슴 조이며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군이 독에 중독돼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허균은 광해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하선에게 왕의 대역을 할 것을 명한다. 저잣거리의 한낱 만담꾼에서 하루 아침에 조선의 왕이 된 천민 하선. 허균의 지시 하에 말투부터 걸음걸이, 국정을 다스리는 법까지, 함부로 입을 놀려서도 들켜서도 안되는 위험천만한 왕 노릇을 시작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달라진 왕의 모습에 궁궐이 조금씩 술렁이고, 점점 왕의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하선의 모습에 허균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비록 은 20냥에 수락한 왕 노릇이지만 상식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그 어떤 왕보다 위엄있고 명분있는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위와 왕권만을 염려하던 광해와 달리, 정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백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행하는 하선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선은 왕 노릇을 하면서 궁궐 내 가장 아랫사람들의 안위까지 두루 살피고 백성 스스로 노비가 되고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 왕위를 지키기보다 민생을 염려하고, 몰지각한 대신들에 굴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자기를 죽이려던 도 부장을 용서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린 나이에 궁녀가 된 사월을 배려하고, 모함으로 역적 누명을 쓴 중전의 오라버니를 살려준다.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혈안이 돼 퍼주려고만 하는 신하들에겐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꾸짖고는, 난 내나라 내 백성이 백 곱절 천 곱절은 더 소중하오라고 외친다.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 그립다 가짜 왕 노릇을 하게 된 광대가 진짜 왕보다도 정치를 잘하게 된다는 스토리의 영화는, 권력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천민의 모습을 빌어 조선이 필요로 했던 왕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하선은 백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백성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배려의 정치를 펼친다. 사욕이 없기 때문이다. 더 가지려는 순간 백성은 눈에 들어오지 않으나 하선은 욕심이 없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400여년 전 조선의 이야기지만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권력 다툼에 매몰된 정치와 그로 인해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백성의 삶은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현시대 정치인들과 비교하면서 광해 시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선이 진정한 왕이 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백성은 아랑곳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당파 싸움만 일삼는 그 시대 정치인들의 모습이 현시대 정치인들의 모습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누구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나는 중산층이 아니무니다

우리 사회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일까? 한 연봉 정보 사이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 급여 500만원 이상, 2천CC 이상의 중형차, 잔고 1억원 이상의 예금액, 1년에 1회 이상의 해외여행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인터넷에 소개된 중산층의 기준이란 글에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도 소개되고 있다. 영국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이라고, 옥스포드대에서 제시한 기준이 소개돼 있다. 프랑스는 외국어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스포츠 하나는 즐길 수 있을 것,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을 것, 남의 집과 다른 요리솜씨 하나를 지닐 것, 공분(公憤)에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할 것 등이 제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중산층의 기준을 돈으로 봤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생각과 행동에 두고 있다. 영국은 중산층의 정신적 조건을, 프랑스는 생활의 질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민 50.1% 나는 저소득층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전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8월 현재 46.4%에 불과하다. 2011년 소득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분류한 중산층 비중은 64%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관적인 중산층 비중은 이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이에 반해 나는 저소득층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50.1%를 차지했다. 통계청의 소득 기준 저소득층 비율 15.2%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스스로 고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도 1.9% 뿐이다. 이 역시 통계청의 고소득층 비율(20.8%)에는 한참 못 미쳤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 정도에 대한 인식도 심각했다. 중산층의 78%, 고소득층의 75%, 저소득층의 77%가 우리 사회의 소득재산 분포가 불평등한 상태라고 응답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1인당 GDP는 6천달러에서 2만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으나, 중산층의 비중은 1990년대 75% 수준에서 2011년 현재 64%까지 내려왔다. 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 중산층의 상당수가 자신을 심리적으로 저소득층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중산층 복원 대안 내놔야 자신이 저소득층으로 내려갔다는 응답자들은 소득 감소와 부채 증가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들의 98.1%는 아예 계층 상승 기대감을 접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체념했다. 세대별로 보면 20대는 불안정한 일자리, 30대는 대출 이자와 부채 증가, 40대는 과도한 자녀교육비, 50대는 퇴직과 소득감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사회의 총체적 실패가 중산층의 심리적 패배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산층은 우리 경제의 중심축이자 버팀목이요, 빈부이념 등 각종 갈등을 완충하는 사회 안전판이다. 사회 통합과 안정적 성장에 중요 역할을 하기에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다. 중산층의 안정 없이는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산층이 희망을 잃으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그러기에 중산층의 심리 위축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 의식이 희미해지면 중산층 붕괴는 시간 문제다. 외환위기카드사태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얇아졌다. 앞으로 88만원 비정규직 세대가 신(新)빈곤층으로 고착되고, 은퇴하는 베이비부머의 자영업 창업이 대거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머지않아 중산층 붕괴가 눈앞의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중산층의 붕괴를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다. 붕괴돼 가는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희박해진 중산층 의식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중산층과 중산층 의식을 튼튼히 하는 정책으로, 중산층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앞서 어떻게 중산층 붕괴를 막을지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공정여행 갈까요?

지난해 여름, 중국 윈난(雲南)으로 공정여행을 다녀왔다. 계획되지 않은 여행이라 조금 갑작스러웠으나 친한 지인의 소개로 프로그램이 괜찮아 따라 나섰다. 25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윈난은, 각 민족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이 잘 보존돼 있어 평소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다. 여행을 가면서, 그 여행이 공정여행이란걸 알았다. 국제민주연대가 운영하는 윈난 공정여행은 차마고도- 구름이 머무는 소수민족의 나라, 제목부터 설레이게 했다. 8박9일의 일정은 이제까지와의 여행과는 좀 달랐다. 현지인들 삶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즐겼다. 만족스런 여행이었다. 그래서 올 여름 또 공정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번엔 중국 구이저우(貴州)다. 당신의 영혼을 깨우는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자연, 귀주. 지난 여행에서 만났던 여러명이 동행한다. 그들도 공정여행이 좋았던거다. 어떤 친구는 3년째 이 단체의 공정여행을 간다. 여행 수익이 현지주민에게 공정여행(Fair Travel)은 새롭게 떠오른 여행 트렌드다. 착한여행, 책임여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정여행?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않은 여행을 생각하면 된다. 성매매 관광, 곰 쓸개사슴 피 등을 찾는 보신관광, 코끼리물개 등 동물쇼 관람, 원주민의 야만성을 부각시키는 문화체험, 카지노 도박여행, 야생동물로 만든 기념품 구입 등등. 이런 여행에 대한 반대말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공정여행은 우리가 그동안 편안하게 해온 여행의 반성에서 시작된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여행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대단히 많다. 모든 여행 산업에는 막대한 비용과 이윤이 흐른다. 하지만 여행 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그 여행의 즐거움과 가치를 위해 노동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지 주민들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대다수의 여행은 항공사, 다국적 호텔체인, 여행사, 외지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형식당들이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실제 그 여행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들의 삶터와 주변 환경을 가꿔온 현지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1~2%로 극히 미미하다. 세계 각지의 관광개발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숲은 파괴됐고, 바다와 땅을 잃은 현지인들은 호텔의 일용직 청소부, 짐꾼, 웨이터가 됐다. 관광산업의 그늘이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늘면서, 왜곡된 이윤의 흐름을 바꾸고 현지 주민들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도록 하는 공정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행자주민 함께 웃는 여행 공정여행은 한국식 용어다. 공정무역(공정한 가격에 거래해 적정한 수익을 농가에 돌려주는 착한 소비)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이 개념을 만들어낸 영미권에서는 도덕적 여행, 책임여행 등의 용어를 쓴다. 공정여행 운동은 1988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대규모 관광지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와 원주민 공동체 파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초기엔 서구인들의 몰지각한 관광으로 파괴된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참상을 고발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공정여행은 현지인을 배려하고, 그곳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비행기는 최대한 자제하고 버스를 타거나 트레킹을 한다. 호텔보다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고, 음식은 현지인들의 식당에서 먹는다. 쇼핑도 대형 쇼핑몰보다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시장 등을 이용한다. 공정여행에선 물이나 전기 아껴쓰기, 1회용품 사용 자제하기,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로 만든 기념품 사지않기, 동물을 학대하는 쇼나 투어 참여않기 등을 권장한다. 또 현지의 인사말과 노래춤 배워보기, 여행지 생활방식 및 종교 존중하기, 물건 값 지나치게 깎지않기, 군것질 자주하기 등도 권장한다. 그래서 공정여행은 착한여행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사람, 문화, 자연을 만나는 것이다. 그 만남이 즐겁기 위해서는 현지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열고 웃으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 열린 마음으로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할 때 여행의 참다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여행자와 현지인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 여행하는 이뿐 아니라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여행, 그것이 공정여행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슬로건 전쟁이 시작됐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12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 레이스의 막차를 탔다. 김 지사는 이날 경선 참여를 선언하며 자신의 슬로건으로 마음껏!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학생들은 마음껏 공부하고, 청년들은 마음껏 일하고, 노인들은 마음껏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캠프측은 설명했다.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주자들의 슬로건 경쟁이 뜨겁다. 저마다 내건 슬로건은 대선 후보가 지향하는 정치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누리당 유력 주자인 박근혜 의원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국민행복이 우선임을 강조하며,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걱정없는 나라로 정하고 국민의 3대 걱정인 교육직장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안상수 전 안산시장은 빚 걱정없는 우리 가족, 변방에 희망있는 나라를, 김태호 의원은 낡은 정치의 세대교체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대선 슬로건 국가에서 개인으로 민주통합당 후보들도 자기 색깔의 슬로건을 치켜들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손학규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이다. 퇴근 시간이 넘어도 일에서 손을 놓지못하며 개인과 가정 생활을 희생당하는 중산층서민을 위로하는 구호로, 개인들의 현실적 욕구를 문학적 표현에 담아 호평을 받고 있다. 문재인 고문은 사람이 먼저다로 정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홍익인간(弘益人間)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는 성장의 과실을 서민과 중산층에게 적극적으로 나누는 권력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또 의사 출신인 김영환 의원은 울화통 터지는 나라, 국민 화병을 고치겠다를, 정세균 의원은 빚 없는 세상, 편안한 나라를, 조경태 의원은 민생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했다. 이번 대선 슬로건은 개인을 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들이 국가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에 무게중심을 두고있음을 보여준다. 15대 대선의 준비된 대통령(김대중 후보), 16대 대선의 새로운 대한민국(노무현 후보) 등 과거의 슬로건과 비교해보면 뚜렷한 변화다. 말의 성찬보다 소통, 정책이 중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슬로건은 선거전의 백미다. 정치현장에선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100분의 연설이나 1천명의 선거운동원보다 낫다고 말한다. 슬로건은 기본적으로 쉬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를 들고 나왔다. 짤막하면서 인상 깊은 구호는 미국인들의 표심을 자극, 조지 부시를 누르고 클린턴을 백악관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됐다. 11월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슬로건은 앞으로(Forward!)다. 자신의 업적을 기반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담았다. 4년전 그는 그래, 우린 할 수 있어(Yes, We Can!)로 승리한 바 있다. 대한민국도 12월 대선을 앞두고 슬로건 경쟁이 치열하다. 후보들마다 그럴듯한 슬로건을 들고 나와 목청을 높인다. 말의 성찬이다.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유권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어떻게가 빠져있다. 추상적 이미지가 강하다. 자칫 홍보전쟁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무조건 잘살게 해주겠다고 말만 번지르르 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뒷받침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시대 정신과 미래 비전이 담겨 있어야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아름다운 사람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7년 동안 젓갈장사를 하고 있는 유양선씨(79)는 젓갈 할머니, 기부 할머니로 불린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23억9천여만원어치의 부동산과 현금, 서적 등을 전국 초중고대학교와 양로원, 보육원 등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 각급 학교에 기증한 도서만 3억원이 넘는다. 19억4천만원의 대학발전기금을 기부받은 한서대는 유양선 장학회를 설립했다. 그의 첫 기부는 중학교에 입학할 학비가 없던 소년에게 준 장학금이다. 그 소년은 이제 학업을 마치고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 또 다른 여학생은 간호대를 마치고 서울대병원에 취직했다. 유씨는 3년 전 위암수술과 무릎수술을 받았지만 오늘도 충남상회에서 새벽 4시부터 불편한 몸을 움직인다. 유씨는 가난 탓에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며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국민추천포상 대상자로 선정돼 7월초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 행정안전부는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선행을 실천해온 평범한 이들에게 국민의 추천을 받아 훈포장을 해주는 국민추천포상 대상자 24명을 발표했다. 국민훈장(2명), 국민포장(8명), 대통령표창(8명), 국무총리표창(6명) 등이다. 국민추천포상 제도는 올해가 두 번째다. 나눔의 삶 실천하는 작은 영웅들 28년간 홀로 염소를 키워 모은 1억원을 함양 안의고교에 기부한 염소 할머니 정갑연씨(79)는 국민포장을 받는다. 정씨는 작업복 서너벌이 가진 옷의 전부일 만큼 자신에겐 인색했다. 염소 먹이 나뭇잎을 뜯으러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팔이 부러졌을 때도 병원비를 아끼려고 나뭇가지로 부목을 했다. 134㎝의 작은 거인 김해영씨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는다. 척추 장애인인 김씨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로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면서 대입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공장에서 배운 편물기술을 갈고 닦아 1985년 세계 장애인기능경기대회 기계편물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1990년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건너가 14년간 주민들에게 편물기술을 전수했다. 4년 전부터 구두를 닦아 매년 430만원씩 가난한 이웃을 도와 대통령 표창을 받는 김정하 목사는 2010년 루게릭병에 걸렸다. 그는 2년 전부터 교회 2층 입구에 쌀통을 놓고 항상 쌀을 채워 누구나 퍼갈 수 있게 했다.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씨도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그는 한 번 등짐을 운반할 때마다 1만원을 번다. 그렇게 모은 돈을 1994년부터 사회복지시설과 특수학교에 기부해 왔다. 지금까지 기부한 돈이 모두 2천여만원이다. 사회의 등불, 우리도 이들처럼 전셋집에 살면서 장애 아동 5명을 포함해 8명을 입양해 기른 여덟아이 엄마 강수숙씨, 태평양을 오가며 한국 미혼모를 도운 미혼모 대부 리처드 보아스씨(안과의사),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숨진 고(故) 민평기 상사의 유족보상금 중 1억원을 방위성금으로 기탁한 윤청자씨, 13년간 실직자와 노숙인 500명에게 보일러 기술을 전수해온 보일러 대부 이영수씨, 검정고시 합격자 1천800여명을 배출한 인천 최초 야학 설립자 김형중씨, 부산 해운대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익사한 고(故) 신상봉씨 등도 국민들이 훈장을 달아준다. 국민의 훈장을 받는 이들은 모두 사회를 비추는 등불같은 인물이다. 높은 자리에 있거나 돈이 많거나 유명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나눔의 삶을 실천한 우리 이웃들이다.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거나 대가를 바라지않고 묵묵히 사랑을 나눠 온 보통사람들이다. 수상자들은 형편이 좋아 남을 돕는 게 아니었다. 눈물로 번 돈을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것을 상당부분 희생했다. 역경 속에서도 선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아름답고 더 감동적이다. 유양선씨 말대로 자다가도 죽는게 사람이다. 쌓아두면 뭐할거고, 몸을 아껴 뭐할거며, 재능을 묵혀 뭐할건가. 나누는 삶, 의미있는 일, 나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자.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중년 캥거루족, 당신의 미래는

소설가 천명관씨의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중년 캥거루족의 이야기다.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20여 년만에 다시 엄마 품으로 모인 평균 나이 49세 삼남매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담아냈다. 큰아들은 강간 등 전과 5범에 120㎏에 육박하는 거구다. 유일하게 대학을 나와 나름대로 기대주였던 둘째아들은 첫 영화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영화판과 아내에게 버림받아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예쁘장한 막내딸은 물장사를 거쳐 이 남자 저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 딸 하나 딸린 이혼녀가 됐다. 고령화 가족은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가난한 엄마에게 얹혀살 수밖에 없는 삼남매와 그들을 거두는 엄마의 이야기다. 소설에선 삶의 낙오자로 전락한 중년 캥거루족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캥거루족이란 말이 유행이다. 캥거루족은 대학을 졸업한 후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직업을 가져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 층을 일컫는다. 용어만 다를 뿐, 캥거루족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직장없이 부모에게 의탁해 살아가는 젊은 층을 이도 저도 아닌, 중간(사이)에 낀 세대라 해서 트윅스터(Twixter)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금을 축내는 키퍼스(Kippers), 독일에서는 집에 눌러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네스트호커(Nesthocker), 캐나다에서는 직장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로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독립할 나이가 된 아들을 집에서 내보내려는 부모와 아들 사이의 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탕기(Tanguy)의 제목을 그대로 따서 탕기로 부른다. 노부모에 얹혀사는 30~40대 급증 이런 신조어를 보면 나이 든 부모에게 얹혀 사는 성인 자녀는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성인 남성 5명 중 1명이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2011년 25~34세 남성 가운데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19%로, 2005년보다 5%p나 높아졌다. 일본도 3040대 캥거루족이 300만명에 달한다는 조사다. 인구의 16% 수준이다. 35~45세 연령층 6명 가운데 1명 꼴이라 하니 중년 캥거루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영국에서는 불황 여파로 실직한 중년 자녀들이 다시 노부모와 합쳐 살기를 원하면서 노인들 사이에 집 증축 붐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모에 얹혀사는 3040대가 급증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10년 새 무려 두배로 증가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직업조차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고달픈 삶을 반영하는 듯하다. 부모는 늙어가는데 미래는 불투명 서울시에 따르면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9세 자녀가 2000년 25만3천명에서 2010년 48만4천명으로 91%나 늘었다. 이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자녀가 경제적 이유로 독립생활이 불가능(29.0%)하거나 손자녀 양육 등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10.5%)라는 답변이 전체의 39.5%를 차지했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모가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3040대 캥거루족의 증가는 청년실업과 무관치 않다. 노동시장에 진입할 시기를 놓치면 갈수록 노동시장에서 배제된다. 학교 졸업 후 제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급기야 결혼까지 포기하며 3040대 캥거루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청년실업의 현주소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경제적 독립이 힘든 사회는 절망의 사회다. 자립하지 못한 미혼자가 증가하면 저출산이 가중되고 노동인구는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갈수록 노동의 양과 질은 떨어져 국가의 성장동력이 위협받게 된다. 빈곤 계층의 확대는 사회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다. 캥거루족의 증가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중년 캥거루족의 증가는 일자리 감소와 경제 위기라는 그늘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중년 캥거루족이 의존하는 부모는 노후준비조차 부실해 삶이 버거운 세대다.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들에게 의지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부모세대의 미래는 불안한 대한민국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지역을 위해 뛰어라

# 동두천시는 지난 60여년간 기지촌이라는 오명 속에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해 왔다. 시 전체면적의 42.4%가 미군공여지다. 2005년 기준 지역총생산 7천465억원 중 미군관련 분야가 32.6%를 차지할 정도로 주한미군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주한미군 재배치로 미군 숫자가 줄면서 대규모 실업과 자영업 붕괴 등 지역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08년 1만5천여명이던 주한미군 관련 업종 종사자는 2010년 3천600여명으로 줄었다. 미군용품 매매시장으로, 이른바 양키시장으로 알려진 생연동 애신시장과 보산동 관광특구는 흥망의 갈림길에 놓였다. 미군기지 이전 지연과 요원한 반환미군기지 개발 전망은 지역경제를 더욱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재정자립도 24.2%, 한해 예산이 2천600억원에 불과한 동두천시는 정부의 재정 뒷받침 없이 살림살이가 어렵다. 이에 주한미군 공여구역 반환에 따른 동두천시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으나 무산됐다. 동두천시 자립 기반조성을 위한 특별재원을 국가가 공급하고, 중첩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18대 김성수 의원(새양주 동두천)이 2008년 12월 법안을 대표 발의, 국회의원 299명 중 208명이 서명했으나 18대 국회 마감과 함께 휴지조각이 됐다. # 경기도 최북단의 접경지 연천군은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등 중첩 규제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 유치나 대학 신설 등 필요한 시설을 갖추기 어렵고, 지역이 낙후되다 보니 인구가 계속 줄고있다. 동두천연천도 수도권이라고? 공들여 추진했던 대학 유치가 수정법 규제로 무산됐다. 군과 서울산업대는 2004년 전곡읍 일대에 8천명 규모의 제2캠퍼스 건립 협약을 했으나, 도로 등 최소한의 기반시설도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백지화됐다. 서울시 면적의 1.4배인 연천군은 98%가 군사보호구역이다. 공장은 물론 창고 하나 지으려해도 군부대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백학산업단지는 준공된지 오래지만 유치 목표 63곳 가운데 공장 3곳이 가동중이고 5곳이 신축중이다. 당초 23개 업체가 입주의사를 보였으나, 도시가스 공급도 안되고 인력확보도 어려워 입주를 포기했다. 연천 인구는 2010년 말 기준 4만5천명이다. 이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를 차지한다. 도로포장률과 도시가스 보급률은 각각 54%, 23%로 전국 최하위다. 재정자립도도 27%로 전국 평균(52.2%)의 절반 수준이다. 올해 예산은 3천113억9천만원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강화옹진군과 함께 수도권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는 지역마다 현안문제가 많다. 동두천연천 이외에도 수정법 등 이중삼중의 규제로 경기도 전체가 꽁꽁 묶여있다. 총선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후보마다 수정법 개정 내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지만 당선되고 나면 나몰라라다. 지역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듯 굽신대던 후보들은, 정쟁만 되풀이하며 공약은 뒷전이다. 경기지역의 시급한 현안법안들이 18대 국회 마감과 함께 자동폐기 됐다. 공공기관 이전지역 등을 대상으로 한 정비발전지구 도입, 낙후지역 수도권 범위 제외, 군사시설 주변지역 지원, 관할구역밖 설치 주민기피시설 주변지역 지원 등의 법률 제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이 큰 원인이다. 18대는 여야 당 대표(안상수손학규)가 모두 경기 출신이고, 상임위원장도 3~4명이 도내 의원이 맡는 등 황금기를 맞기도 했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현안법안은 별로 없다. 19대 국회, 道현안 힘 모아야 19대 국회가 지난 30일 출범했다. 경기 의원만 52명이다. 3선 이상 중진이 19명(새누리 8, 민주 11)이다. 이들이 힘을 합치면 지역발전을 위해 못할 일이 없다. 새로 지은 국회의원 회관이 호화롭다고 비판이 거세다. 일반인이 매월 30만원씩 30년간 내야 받을 수 있는 의원 평생연금(월 120만원)도 반감이 크다. 밥값 제대로 하려면, 당리당략에 눈 먼 싸움은 그만하고 지역문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 민심을 챙기고, 지역을 챙기는 것이 의원도 살고 지역도 사는 길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칼럼] 산부인과가 위기다

얼마전 오사카의 한 산모가 출산이 임박해 구급차를 불러 분만 병원을 찾았으나, 10개 이상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거절당해 출산 난민이 사회 문제가 됐다. 분만 병원과 의료진 부족으로 일본 여성들은 임신하면 분만 병원부터 예약한다. 1년 후까지 예약이 차있기도 해 대학 입시처럼 1지망, 2지망 병원을 결정해 놓기도 한다. 이에 일본 정부는 무너져가는 산부인과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가 산모에게 30만여엔의 출산 지원금을 주면, 산모는 그 돈의 일부를 떼어 분만사고 보상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출산 과정에서 신생아에게 뇌성마비가 발생한 경우에도 3천만엔의 보상금을 공적기금에서 지급한다. 산부인과 병원들이 분만에 따른 의료분쟁에 휘둘리지 말고 분만실을 계속 운영토록 하기 위한 조처다. 미숙아 출산도 정부가 치료비를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산부인과 지망 의대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들은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나서 의무적으로 일정기간 해당지역 분만 병원에 종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산부인과 지원자가 많지 않자, 외국에서 전문의를 수입하는 지자체들도 생겼다. 수년 전부터 출산 인프라 붕괴 위기를 맞은 일본의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산부인과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의 급감에 분만실 폐쇄, 야간 응급수술 포기 등이 이어지면서, 산부인과에 아기 울음소리 대신 의사들의 한숨 소리가 커졌다. 전문의병원 줄어 출산 인프라 위기 무엇보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크게 줄었다. 2004년 263명이던 신규 배출 산부인과 전문의는 올해 90명으로 줄었다. 남자는 10명뿐이다. 젊은 여성들이 여의사를 선호하는데다, 산부인과에 미래가 사라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남자 전문의가 급감하면서 야간 분만을 담당할 의사가 태부족이다. 여의사들은 육아 등의 부담으로 분만이나 야간 진료를 꺼린다. 어느 병원에선 남자 원장이 진료는 접고 일주일 내내 야간 당직만 전담한다. 우리도 일본처럼 동남아 등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수입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도 줄었다.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2004년 1천311곳에서 2010년엔 808곳으로 떨어졌다. 산부인과가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더라도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전국 230개 시군구 가운데 48곳이나 된다. 경기지역은 과천시와 연천군, 인천은 강화군과 옹진군이 없다. 고위험의 산모를 돌볼 종합병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임신중독증, 태반 위치 이상, 쌍둥이 임신, 노령 임신 등 고위험 산모들이 갈곳이 없다. 제때 입원 치료와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응급수술을 해야할 상황이 잦고, 고난도 처치가 필요해 동네 산부인과에선 다루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무과실 의료사고도 30%보상 불합리 분만 포기 병원이 늘어난 데는 의료분쟁 탓도 크다. 통상적으로 출산 1만건당 1건 정도에서 뜻하지 않는 분만 사고가 난다. 양수가 산모 핏속으로 흘러들어가 폐색전증이 생기거나, 출산후 갑자기 자궁근육 무력증이 생겨 산후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경우 등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억울한 심정의 유족들은 병원에 거친 항의를 한다. 분만의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를 사고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고, 한번 의료분쟁을 겪으면 스트레스로 대개 분만실을 닫는다. 최근 의료분쟁조정법을 도입하면서, 무(無)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 산부인과 병원에 보상금의 30%를 분담토록 한 것도 병원들이 문을 닫는 이유다. 열악한 환경에서 분만실을 운영해온 의사들은 폭발 직전이다. 365일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최소 의사 2명(교대), 간호사 8명(3교대), 야간 원무직원, 조리요원 등의 인력이 필요하다. 신생아실도 운영해야 한다. 산부인과는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동시에 다룬다. 현행 자연분만 수가 로는 병원 운영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야간이나 공휴일 근무, 응급진료에 대한 보상도 없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지난해 1.24명으로 세계 꼴찌 수준이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 위기다. 더불어 산부인과의 몰락 또한 심각한 문제다. 전문의도 다시 돌아오게 하고, 분만 산부인과도 늘리는 출산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어머니, 꽃구경 가요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고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이란 시다. 우리에겐 장사익의 꽃구경이란 노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장사익의 애절하고 호소력 짙은 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눈물나게 한다. 노랫말 또한 절절하다. 세상이 온통 꽃으로 뒤덮인 봄날, 아들은 꽃구경을 시켜 드리겠다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길을 나선다. 좋아라 하시던 어머니는 산골로 산골로 접어들어 가자, 그제서야 당신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솔잎을 한 움큼씩 따서 그 길 위에 뿌린다. 깊은 산골서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돌아갈 길을 걱정하면서. 장사익의 꽃구경 눈물이 난다 자신을 버리러 산으로 가고 있음에도 그 자식이 돌아갈 길을 걱정하며 솔잎을 뜯어 흩뿌리는 어머니.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며 누구나 내 어머니를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구나, 사랑이구나를 절감하며. 언제부턴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가끔은 눈물이 난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자식이 모시려 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런 구절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게 되는 진실,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도 바로 그런 자식들의 때늦은 후회를 담아내고 있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후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그에 반해 어머니의 사랑은 얼마나 컸는지 그들은 깨닫는다. 또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자였다는 사실도 절감한다. 장사익의 노래를 들으며, 그 옛날 부모님을 산속에 내다 버렸다는 고려장(高麗葬)을 생각해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고려장은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11년 4월 14일 오전10시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의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은 김모 할머니는 보건소와 시립병원을 오가다 8시간만에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승강장에 주저앉았다. 119 구급대가 10분만에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이 멎었다. 사인은 영양실조와 폐결핵. 3형제를 키워내고 지난해부터 6㎡ 남짓한 낡은 여관방에서 쓸쓸히 지내던 김 할머니는 78살의 나이로 고달픈 생을 마감했다. 자살소외 방치는 현대판 고려장 신문기사에서 종종 보게되는 노인들의 우울한 죽음이다. 자신은 못먹고 못입으며 어렵사리 자식들을 키워내고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부지기수다. 우리의 부모세대 자살율은 세계 1위로, 2010년에만 만 65세이상 노인 4천378명이 자살했다. 이는 한달 평균 365명이, 하루 평균 12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모를 산중에 갔다 버리는 일과, 자살로부터 지키지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자살이 아니라도, 늙고 병든 부모를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내맡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 부양이 화두로 떠올랐고, 많은 부모들이 시설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자식들은 돈만 대줄뿐 양로원 등에 맡기고 아예 찾지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향에 홀로 계신 늙은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잘해야 명절에나 잠깐 보는 정도다. 효(孝)는 많고 큰 것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부모님의 말벗이 되어주고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 그리고 가끔은 손발도 주물러 주는 작은 마음이라는데. 봄꽃이 화려한 요즘, 꽃구경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본다. 고려장은 우리의 그냥 옛 설화인지, 아니면 지금도 우리 곁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닌지. 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칼럼] 수원천이 돌아왔다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는 화성을 축성할 당시 수원천변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화성이 성곽만이 아니라 수원천에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통행하는, 그래서 성곽과 도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도록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수원천은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을 가로 지른다. 화성의 북수문(화홍문)남수문방화수류정과 같은 수려한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 수원천 자체가 또 하나의 자연환경문화재다. 정조가 말했던 그 수원천이 돌아왔다. 오염된 하수구에서 맑은 냇물로 돌아왔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더러워지고, 일부 구간이 복개돼 주차장과 도로로 쓰이다가 우여곡절 끝에 생태하천으로 거듭나 수원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수원천은 광교산(582m)에서 발원해 광교저수지를 거쳐 시의 남쪽을 가로질러 황구지천으로 흘러든다. 수원의 도심을 흐르는 대표적인 도시형 하천이다. 길이가 16.0km, 유역면적이 25.37㎢이다. 수원사람들의 생활 속 깊이 자리했던 수원천은 1970~1980년대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자연생태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상실, 도심 속 흉물로 전락했다. 수원시는 1990년부터 더러워진 하천에 콘크리트 덮개를 씌우는 복개(覆蓋)공사를 진행했다. 교통난을 해소하고 주변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하에 1994년 지동교에서 매교까지 780m 구간이 복개됐고, 1995년 3월부터 상류 구간의 2단계 복개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일부 구간 복개로 수질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복개 중지를 위한 시민운동이 전개됐다. 복개구조물에 의해 수원천의 생태축 단절과 하천의 물길이 막히고, 수질오염으로 악취가 발생해 수원천의 자연문화재적 가치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생명역사문화의 복원그 중심에 염태영 수원시장이 있었다. 염 시장은 잘 다니던 삼성을 그만두고, 1994년 수원환경운동센터를 창립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수원천 복개공사 반대운동을 벌였다. 15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수원천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를 만들었고, 사무국장을 맡았다. 1996년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의 해, 그는 치열한 쟁논 끝에 복개중단과 복원사업 결정을 이끌어냈다. 또 한사람, 지금은 고인이 된 심재덕 전 시장의 결단도 한몫했다. 당시 수원천 복개는 팔달산 터널과 함께 노태우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추진되던 국책사업이었다. 시장이라고 해도 쉽게 중단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1996년 첫 민선시장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심 전 시장은 수원천을 이대로 죽게 할 수 없다며, 복개공사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수원시는 2009년 수원천 복개구간 복원사업에 착공, 최근 지동교매교 구간의 콘크리트 덮개를 걷어내는 공사를 마무리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 복원 구간에는 보행용과 차량 교량 9개가 신설됐고, 하천엔 분수와 징검다리도 만들었다. 하천변과 교각에는 이벤트 광장과 생태습지가, 광교저수지에서 세류동 경부철교에 이르는 5.8㎞ 구간에는 산책로가 마련됐다. 수원천 복원은 경제적 효과가 연간 918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원천은 청계천과 다르다복원된 수원천은 제2의 청계천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한때 콘크리트로 복개됐던 하천의 덮개를 걷어내고 물길을 복원한 도심형 하천이란 측면에서 그렇게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수원천과 청계천은 다르다. 청계천은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큰 성과로 손꼽히지만, 생태적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길게 누운 분수대, 긴 어항은 복원된 청계천의 또다른 이름이다. 일부에선 대규모 조경사업, 토목사업으로 불린다. 반면 수원천은 행정주도형이 아닌 시민참여형으로, 생태복원을 위한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이 추진됐다. 수원천의 물은 한강에서 끌어온 펌핑수가 아닌 광교산에서 흘러내린다. 수원천 복원은 단순히 물길을 되살려낸 것이 아니다. 수원의 생명과 역사, 문화를 복원시킨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시민의 힘으로 일궈냈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의 승리이기도 하다.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칼럼] “허리띠를 졸라매라”

이재명 성남시장이 경기일보 4월 월례회의에서 특강을 했다. 재정위기 극복사례를 주제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던 성남시가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 지를 설명했다. 이 시장은 민선 5기 1년9개월간 빚갚는 일에 전념했다고 했다. 남은 임기동안에도 빚갚는 일에 전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주재원 마련, 즉 돈벌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2010년 7월, 성남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재명 시장은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5천400억원을 일시에 상환하기 어렵다며 손을 들었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선심성 사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방재정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당시 1년 예산이 2조원, 연간 가용재원이 2천500억원에 이르는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에 대한 논란은 컸다. 그러나 전임시장으로부터 물려받은 5천4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단기간에 갚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기에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1천365억원의 빚이 더 추가됐다. 이 시장은 모라토리엄 선언이후 부채상환을 위한 긴축예산 체제에 돌입, 예산 절감에 사활을 걸었다. 시민들에게 재정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신규 사업은 일단 접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1천339억원의 빚을 갚았다. 올해는 1천500억원을 갚을 계획이다. 2014년에는 모라토리엄을 완전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의 임기가 끝나는 해다. 성남시용인시 빚 갚느라 허덕성남시처럼 무리한 사회기반시설 건설이나 대규모 택지개발을 위해 지방채를 과도하게 발행한 지자체들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있다. 의욕적으로 경전철을 도입한 용인시도 그렇다. 경전철 운행 한번 못하고 용인시는 빚더미에 앉았다. 민자사업자와 오랜 갈등 끝에 올해부터 공사비 5천159억원을 연차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에 따라 4천420억원 규모의 지방채 발행을 정부에 승인 신청한 상태다. 지방채를 나눠 발행하더라도 부채 비율의 급격한 상승은 불가피하다. 3월부터는 5급이상 공무원 120여명의 급여 인상분 반납 등 자구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연 2억여원에 불과하다. 인천광역시는 요즘 재정파탄 직전이다. 돈이 없어 공무원 임금을 제때 못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2일 직원 6천여명에게 지급할 급식비직책수당 등 복리후생비 20억여원을 마련치 못해 하루 뒤인 3일에야 지급했다. 인천시의 임금체불 조짐은 지난달부터 감지됐다. 시가 이달부터 공무원들의 시간외수당과 산하기관 파견수당 일부를 삭감하고, 송영길 시장의 연간 직급보조비 1억1천400만원과 간부 공무원들의 성과연봉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인천시의 빚은 올해 말 3조1천84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예산 7조9천983억원의 39.8%에 해당한다. 올해 말 7조3천202억원까지 늘어날 인천도시공사 등 공기업 부채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넘는다. 지자체 부채가 예산대비 40%를 넘으면 재정위기 단체로 지정돼 예산자율권을 잃고 정부 감독을 받게 된다. 인천 10조 빚, 뼈 깎는 자구책 있어야인천시의 재정난은 이미 예견됐다. 시가 2009년 1천400억원을 들여 개최한 세계도시축전은 장부상으로만 150억원의 적자를 냈다. 특히 축전 행사에 맞춰 개통하려고 2008년 6월 853억원을 들여 착공한 은하레일은 부실시공으로 개통조차 못하고 있고, 철거비용만 수백억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예산낭비 뿐만이 아니다. 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위한 주경기장을 5천억원을 들여 새로 짓겠다고 나섰다. 2002년 월드컵경기가 열렸던 문학경기장을 542억원을 들여 고쳐 쓰기로 한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또 2조1천억원이 드는 도시철도 2호선도 2018년 완공하려다가 아시안게임 개막에 맞춰 완공시기를 4년 앞당기기로 하면서 돈을 빌려 쓰고있다. 이 때문에 올해 6천481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한다. 인천시는 지금 벌이고 있는 각종 사업들을 전면 재검토, 정리할 것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또 현재의 재정상황을 시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당장 뼈를 깎는 자구 노력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자체 재정파탄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다. 주민들은 복지혜택은 고사하고 지자체의 빚을 떠안아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가학광산서 관광 금맥 캔다

광명시에 위치한 가학광산이 요즘 뜨고있다. 지금은 광업을 중단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가학 폐(廢)광산이다. 가학폐광산은 광명시가 동굴테마파크인 케이번월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 광명시는 40년 전 문을 닫은 폐광산을 지역 랜드마크로 탈바꿈 시킨다는 계획이다.가학폐광산은 1912년 일본인들이 처음 개발한 뒤 1972년 7월까지 60년간 금과 은동아연 등을 채굴하던 곳이다. 전체 면적은 34만2천797㎡로 8개 층에 걸쳐 갱도가 형성됐고, 총연장은 7.8㎞에 이른다. 깊이는 최대 275m에 달한다. 광산은 1972년 여름에 발생한 홍수로 쌓아놓은 광석 더미가 인근 마을을 덮치면서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이후 20여년간 방치되다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는 인근 소래포구에서 생산한 새우젓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돼 왔다. 광명시는 1999년부터 가학폐광산의 탐사를 시작해 2000년 생태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했으나 경제성 문제 등으로 개발이 미뤄져 왔다. 그러다 지난해 1월말 42억원의 예산을 들여 매입하면서 동굴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동굴 내부에 차있던 물을 빼내고, 수로를 설치하는 등 갱도 정리 및 안전 보강시설 공사를 진행했다. 9월부터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기 시작했다. 안전공사를 위해 잠시 문을 닫았던 11월까지 3개월간 무려 1만4천여명이 찾을 정도로 관람객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시는 광석을 캐내던 거대한 공간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그리고 두번의 동굴음악회를 열었다. 환상적이란 호평을 얻었다. 안전공사가 일단락 된 가학광산은 지난 17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요즘은 오전 10시부터 11시,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광산에 들어가 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가 갱도 현황을 설명해주고, 직접 답사도 시켜주니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체험 장소다. 전체 7.8km중 약 1.3km의 갱도를 관람할 수 있다. 100년 역사 폐광산, 테마파크로지난 3월 20일, 경기도는 이곳 가학광산 동굴에서 찾아가는 실국장회의를 개최했다. 작은 콘서트가 함께 열린 이색적인 회의였다. 이날 경기도와 광명시, 경기관광공사는 가학광산을 세계적인 동굴 테마파크로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합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가학폐광산 개발을 위한 행재정적 지원을, 경기관광공사는 컨설팅과 마케팅 지원을 하기로 업무협약을 한 것이다. 도와 광명시는 최대 1천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20년까지 친환경 관광명소로 개발할 계획이다. KTX 광명역과 5분, 서울 여의도와 30분, 인천 국제공항과 30분의 거리에 있는 가학광산은 관광지로 개발하기에 최적의 교통 조건을 가졌다. 광명역을 거점으로 전국의 관광지로 떠나는 중국일본동남아 관광객은 물론 서해안고속도로와 제23경인고속도로, 강남순환고속도로, 광명~수원간 고속도로, 신안산선 등과도 연결돼 국내 관광객 유치에도 경쟁력이 있다.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광산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있어 그 자체가 훌륭한 문화유산인데다 석회규산염암 및 편암 등 견고한 재질로 형성돼 안전상 유리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실제로 채굴을 했던 60년 동안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 道광명시, 세계적 관광명소 개발광명시는 광산내에 레일바이크를 설치하고, 50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동굴을 갤러리와 공연장, 4D 영화관 등으로 꾸며 동굴이 거대한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하 갱도는 와인, 발효식품 등의 저장판매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광산 밖에는 자전거도로, 암벽등반장, 짚 와이어, 조각공원 등을 설치하고, 동굴 과학캠프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호주의 블루마운틴은 폐광을 활용해 관광지로 만든 대표적인 예다. 특히 이곳에 있는 궤도열차는 세상에서 가장 가파른 관광열차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이 궤도열차는 1880년대 석탄과 탄광 광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동굴 테마파크 광명 케이번월드는 내년 말 일부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가학광산이 한국의 블루마운틴이 될 수 있을지, 내일이 기대된다.이연섭 논설위원

[이연섭 칼럼] 미친 기름값, 어디까지 뛸건가

# 회사원 N씨는 요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안산에서부터 서울 영등포까지 함께 출근할 카풀 동승자를 구하고 있다. 출퇴근에 매주 15만원씩 도로에 뿌려지는 기름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카풀이 다소 불편함도 있지만 실제 이용자들이 매월 20~30만원의 기름값을 줄이는 것을 보고 동승자를 구하기로 맘 먹은 것이다. N씨처럼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기름값 절약을 위해 인터넷사이트나 SNS 등을 통해 직장 위치가 비슷한 동승자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예전에 동호회원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카풀 상대를 찾던 것과는 달라진 풍경이다. 이 때문에 거주지 주변의 상대방을 검색해 동승자를 찾아주는 카풀 중개 전문 사이트가 등장했고, 운전자와 탑승자의 애매한 차량 이용분담금까지 계산해 줘 직장인 사이에 인기다. 스마트폰 이용자수가 2천만명을 넘어서면서 카풀 전용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맞는 카풀 상대를 찾을 수도 있다. # 직장인 S씨의 출퇴근은 무조건 지하철이다. 자동차는 출장갈 때 등 일주일에 3번 정도 사용한다. 주유소에 들르기 전 가격비교 사이트에 접속해 가장 저렴한 주유소를 확인하고 할인카드를 챙겨가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셀프주유소를 이용한다. 최근에는 한 번 주유할 때 가득 채우는 습관이 생겼다. 연비를 생각하면 한 눈금 남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 한 번에 많이 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기름값이 뛰어도 너무 뛰었다. 휘발유의 전국 평균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미 2천원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 버렸다. 조만간 2천100원 돌파도 예상된다. 그래서 미친 기름값이라고 한다.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고통 또한 커지고 있다. 카풀 늘고 버스지하철은 만원소비자들은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값싼 주유소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엔 접속자가 폭주해 사이트가 다운되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알뜰주유소엔 기름을 넣으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웬만하면 걷자는 뚜벅이 직장인이 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들로 버스나 지하철이 만원이다. 90년대 유행하던 카풀이 다시 뜨고, 보험사의 비상주유 서비스를 상습적으로 이용하는 얌체 운전자도 나왔다.기름값 고공행진에 못살겠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시민단체들에선 고유가 해결책으로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유류세 인하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분노한 민심이 밀물같이 몰려들어 동참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에선 유류세에 붙는 탄력세율을 현행 11.37%에서 -11.37%로 변경하는 등 유류세를 낮춰 주유소 판매가를 낮추라고 한다. 유류세 인하가 해법이다유류세는 정유사의 세전(稅前) 공급가격에 붙는 교통에너지 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을 말한다. 2월 5주차에 정유사에 공급하는 세전 보통휘발유 가격(L당 1010.3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유류세는 928.1원이다. 기름값의 절반을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간다는 말이 틀린 얘기가 아니다. 2010년 정부가 거둬들인 유류세는 18조4천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엔 2010년에 비해 9천779억을 더 걷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유류세 인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유류세를 조금 내린다해도 국제유가에 따라 움직이는 기름값을 잡을 수 없고, 세수만 줄어든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알뜰 주유소를 더 늘리겠다는 대책이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5일 이상 웃돌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것도 일괄적 인하보다는 취약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는 무조건 100원 내리라는 정유업계 손목 비틀기나, 알뜰주유소 증설만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못된다. 이제 유류세 인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정부는 빠른 시일내에 유류세 인하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더이상 서민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된다.이연섭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