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혈액 부족에 관심을

현재 국내 혈액 수급이 불안정하다. 특히 코로나19, 인구 고령화, 저출산 풍조 등으로 최근 들어 혈액 부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혈액은 우리 몸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며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고, 노폐물을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보통 의료기관에서는 중증외상 또는 수술 시 출혈로 인한 혈액소실 등의 상황에서 여러 조건을 고려한 후 수혈을 시행한다. 이때 혈액이 보충되지 않으면 환자가 위급해질 수 있어 수혈은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치료방법이다. 2023년 5월15일 기준, 국내 혈액(적혈구제제) 보유 현황은 5.1일로 혈액수급위기 단계 중 관심 단계(5일 미만)에 근접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1, 2년 전보다는 한층 나아졌지만, 경각심을 갖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헌혈의 공급 체계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인공혈액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혈용 혈액은 헌혈을 통해서만 공급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총 헌혈 건수는 약 265만건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인 54%가 16~19세, 20~29세의 인구가 분담하고 있다. 국내 헌혈의 절반은 청년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청년층이 차지했던 65%와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의 변화는 시장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헌혈의 감소는 여러 분야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줄어드는 공급(헌혈)에 맞춰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국내 의료기관에는 수혈관리위원회를 설치해 혈액을 관리하고 있다. 또 의료진도 기준에 따른 적절한 수혈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대한적십자사의 노력으로 2020년 코로나19 이후 꺾인 헌혈 실적이 조금씩 회복 추세에 있으며 등록헌혈 회원 수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심화되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발생하는 역삼각형의 인구피라미드 구조는 혈액관리의 수요와 공급을 조금씩 악화시킬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부터 수혈용 세포 기반 인공혈액 생산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장기적으로는 2037년까지 인공혈액 실용화를 목표로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처 등 다부처 협력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연구가 좋은 성과를 거두면 한시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용화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헌혈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과 혈액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천시론] 문화는 정말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24일부터 29일까지 미국을 국빈방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방미 첫 일정으로 4월 24일 테드 서렌도스 넷플릭스 대표를 만났다. 주지하다시피 넷플릭스는 멀티미디어 OTT 분야를 선도하는 거대 글로벌 기업이다. 제1호 대한민국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향후 4년 간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기업에 25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약 받았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수요건”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반향은 컸다. 문화가 일종의 무기라는 표현으로도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해석은 과연 타당한가. 문화라는 용어의 정의는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의 일상대화 중 ‘○○문화’라는 말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생활문화’, ‘대중문화’, ‘역사(전통)문화’, ‘교육문화’, ‘교통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그만큼 문화라는 말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화의 어원은 ‘Cultura’, 경작 혹은 보호의 뜻을 가진 라틴어다. 성경에도 등장한다. 에덴동산을 꾸민 하느님은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셨다(창세기 2장8~9)는 대목이서다, 하느님은 왜 보기 좋고 먹기 좋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자라게’ 하신 걸까. 누군가 ‘우리의 교통문화는 아직도 멀었어’라고 탄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 때 문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한 대답을 한 이는 이스라엘 히브리대의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가 아닌가 싶다. 그가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Sapience)’에는 문화를 ‘(호모 사피엔스는) 수백만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으며 이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라고 정의했다. 그 말에 등장하는 개별 단어를 추적하면 문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우선 ‘협력’이란 말은 상호 이해와 배려를 기본정신으로 한다. 그를 통해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협력이다. ‘인공’이란 말은 그것이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교육’된 가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협력하고 그것을 교육하며 후대에 물려 주는가. 더 나은 세상, 더 큰 평화,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다. 하느님이 남겨 주신 나무의 열매도 그렇고 우회전 시 일단정지하라는 법규가 또 그렇다. 모두 인간다운 질서를 추구한다. 그것이 문화다. 도시의 핵심 가치는 문화가 돼야 한다. 인간중심의 문화적 가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만족과 자긍심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이주와 투자의 유혹을 전해준다. 그것은 우리를 지키고 유지하고 가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런 문화의 기능에 집중한 듯하다. 석학 새뮤얼 헌팅턴은 ‘문화가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그로는 조금 모자라다. ‘문화는 정말 정말 중요하다’.

[인천시론] ‘증명사진’ 신상공개, 누구냐 넌?

‘증명사진’이란 주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문서나 증서에 실제 인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붙이는 사진을 일컫는다. 특히 인생컷이라 부를 수준의 증명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게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소개팅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용도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애용되곤 한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최첨단 뽀샵기술을 동원해 가히 화보 수준의 증명사진을 창작(?)하는 것이 대세다. 증명사진과 실물 간의 간극이 크다는 건 전 국민이 공유하는 오랜 비밀이 돼버렸다. 하지만 때론 이런 비밀이 예상 밖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바로 6대 강력범죄와 성폭력 범죄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가 그것이다. 지난 2월 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피의자 일당이 체포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됐지만 실제 실물과는 판이하게 다른 증명사진으로 “누구냐 넌?”이라는 논란만 일으켰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부터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살해한 이기영까지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질 때마다 반복돼온 지루한 논란이다. 이는 체포 후 수사 과정에서 촬영한 ‘머그샷’이 아닌 증명사진이 공개된 까닭에 벌어진 촌극이다. 신상정보 공개제도는 2010년께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동종 범죄의 재범 방지와 예방을 위해 전격 도입됐다. 범죄의 잔혹성 및 피해의 중대성, 공익적 목적을 모두 고려하되, 무엇보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 한해 신상정보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여기에 범죄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머그샷 공개를 위해서는 피의자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만약 동의가 없다면 주민등록증 등 공적 증서에 첨부된 증명사진을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또 ‘얼굴 공개 시에는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해선 안 된다’는 규정으로 인해 모자와 후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남편 살해범 고유정이 언론 앞에서 긴 머리를 앞으로 내린 ‘커튼 머리’로 얼굴을 다 가린 것 역시 이런 법의 맹점을 이용한 것이다. 문득 증명사진 속 얼굴들의 공통점이 떠오른다. 살짝 웃음 띤 얼굴로 반달눈을 한 채 정면을 응시한 모습, 보는 이의 호감을 사기에 최적의 표정을 한 그 얼굴이 만약 내 가족과 친구를 해친 흉악범이라면 그 기분은 어떨까? ‘머그샷’ 공개를 원칙으로 한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도 자체를 폐지할 게 아니라면 법 취지에 맞게끔 고쳐 쓰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인천시론] 뇌 건강과 음식

최근 유럽영양저널에 마그네슘이 풍부한 음식을 매일 충분히 섭취하면 치매의 발병 위험을 줄일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연구에서는 마그네슘 성분 함유 식품을 하루 섭취량(350mg)보다 많은 양(550mg)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뇌가 약 1년 덜 늙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마그네슘이 두뇌 핵심 시냅스를 활성화시키는 신호 전달을 강화해 뇌 노화와 관련 있는 뇌 수축 정도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치매는 현재 발병 원인을 알수 없어 예방법과 치료법이 명확하게 없다. 다만 뇌기능 개선을 통해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뇌 기능을 개선하는 성분·음식들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쉽게 나오지만, 필자는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된 음식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잎채소다. 여기서 잎채소는 케일, 쑥갓, 치커리, 시금치 등과 같이 잎을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의미한다. 이 음식은 엽산과 비타민B가 풍부해 우울증을 줄이고 인지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양배추, 브로콜리, 청경채 등의 십자화과 채소도 치매와 관련된 아미노산인 호모시스테인 수치를 낮추는 비타민이 많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블루베리, 라즈베리, 체리 등 베리류 과일이 있다. 베리류 과일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플라보노이드가 함유돼 있는데, 이 성분은 자유라디칼로 유발되는 뇌 손상의 진행을 막아준다. 자유라디칼은 흔히 활성산소로 표현하는 유해물질이다. 이 밖에도 베리류 과일은 비타민이 풍부하고, 항염증반응 및 항산화작용을 하는 등 좋은 음식 중 하나다. 오메가3도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뇌 건강에 유익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오메가3는 올리브오일, 아마씨, 참치, 연어, 고등어 등에 함유돼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뇌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200mg의 DHA 섭취를 권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견과류,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의 음식도 뇌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뇌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도 있다. 첫 번째로 고과당 음식, 즉 단 음식이다. 우리의 뇌는 세포활동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포도당 형태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때 고당식이는 뇌에 과도한 포도당을 유발할 수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뇌의 과도한 포도당은 기억력 손상이나 뇌의 일부인 해마의 가소성 감소를 일으켜 기억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하고 있다. 다음으로 튀긴 음식이다. 기름에 튀긴 음식의 과도한 섭취는 체내 염증을 일으키며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손상시켜 기억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뇌혈관 질환으로 뇌조직이 손상을 입어 치매가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와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을 무조건 먹지 말아야 하고, 잎채소나 베리류 과일 등만 먹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식습관 개선으로 발병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은 일이다.

[인천시론] 시민안전은 스마트 도시의 핵심가치

지난 2016년 글로벌 도시통계 사이트인 넘베오(Numbeo)는 인천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선정했다. 총 118개국 341개 도시를 비교분석한 결과 인천의 안전지수는 90.89로 여타 도시에 비해 높았고, 범죄지수는 9.11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한창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던 인천이 치안 등 시민안전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결과여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뿐, 이후 안전도시 인천의 명성은 하염없이 뒷걸음질쳤다. 행안부가 매년 발표하는 지역안전지수에서 인천시는 2022년까지 4년 연속 하위 등급에 머물렀다. 시민들의 체감안전도도 추락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마계(魔界) 인천’이란 말이 다시금 회자됐다. 악마의 세계, 그만큼 위험한 도시란 말이다. 참 어이없는 노릇이었지만 한 언론사가 이를 주요기사로 다룰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인천은 한순간에 세계 최고의 안전도시에서 가장 그렇지 못한 도시로 전락한 셈이었다. 지난해 7월 출범한 민선 8기 시정부는 안전도시 인천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시민안전을 책임지는 전담부서의 확대 강화, 보행친화 디자인 도입 및 스마트 교통시스템 구축, 싱크홀 등에 대비한 지하안전관리대책 수립 등의 시책을 펼쳤다. 그런 정성의 결과일까. 지난 1월 행안부가 발표한 지역안전지수에 따르면 인천이 범죄, 교통사고, 화재 등에서 각각 2등급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만년 하위권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가히 장족의 발전이다. 시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안전한 교통환경 조성, CCTV 확대 보급 등 시민체감안전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과 정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여전히 하위 등급에 그치고 있는 생활안전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민안전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등의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낮은 범죄율과 높은 검거율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인천경찰청과 협력해 적극적인 대시민 홍보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 도시정부들은 재난 재해의 예방과 회복력 확보에 부심하고 있다. 갈수록 잔혹해지고 지능화돼 가는 범죄의 예방과 대책 마련에도 바짝 신경 쓰고 있다. 그건 모든 시민의 바람이다. 실제로 서울기술연구원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민의 28%가 자연재해와 치안 확보를 서울시의 당면 과제로 인식하며, ‘코로나 이후의 대응방안 마련’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제치고 도시정부가 갖춰야 할 역량 중 2위로 떠올랐다. 그만큼 시민들은 안전한 주거환경을 바란다는 의미다. 시민 안전은 사람 중심 가치의 구현이다. 그리고 그것은 스마트시티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며 인천을 비롯한 각급 도시정부의 명확한 지향점이기도 하다.

[인천시론] ‘EAAFP의 아이러니’ 환경부가 풀어야 할 문제

인천 송도에 둥지를 튼 국제기구 가운데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이 있다. 지난 2002년 지속가능발전세계정상회의(WSSD) 발의안 목록에 의거해 채택된 자발적이고 비형식적인 환경 관련 국제기구다. 이 조직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상의 철새와 그 서식지 보호를 위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소통, 협력 증진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라 함은 러시아, 알래스카,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지나 호주, 뉴질랜드 등 22개국을 지나는 경로로 전 세계 9개의 철새이동경로 중 하나다. EAAFP는 한국을 포함해 18개 국, 6개의 정부 간 국제기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국제NGO 11개, 기업 1개 등 모두 39개의 주체들로 이뤄져 있다. EAAFP 사무국은 파트너십 정보관리 및 교육·홍보, 관련 연구 및 협력사업 지원 등을 담당한다. 2009년 인천에 자리 잡을 당시 인천으로의 국제적 접근성, 황해갯벌과 철새이동경로로서의 적절성을 높이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런데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쉽게 수긍되지 않는 면이 있다. 국제적 위상과 정책기구로서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기이한 예산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인천시 인력 파견까지 헤아리면 10여명의 인력으로 구성, 적잖은 예산을 들여 사무국이 운영된다. 예산은 인천시와 환경부가 분담하며 환경부 당초 약속은 많지도 않은 연 2억원이었다. 하지만 환경부가 실제로 부담한 예산은 매년 7000만원에 불과했다. 증액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환경부는 한 번도 약속한 금액을 이행한 적이 없다. 인천시가 5억원이 넘게 부담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사무국 소재지 인천시가 인적·물적 토대의 전반을 책임지는 형국이다. 그렇게 2009~2023년까지 10년간 환경부와 인천시의 EAAFP 지원액은 동결 상태다. 타 국가 및 국제단체들은 그간 지원예산을 두 배 이상 확대했다. 매우 민망한 노릇이다. 뜬금없이 별 상관도 없는 국제기구의 예산타령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보기 드물게 EAAFP는 국내 생태자원의 보호와 국제 홍보에 큰 기여를 하는 기구다. 다양한 지역 내 조직 및 시민사회단체들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여타 폭넓은 국내외 협력네트워크 활동은 기본이다. 실제로 갯벌습지 보호와 두루미, 저어새 등 한국의 멸종위기종 조사·보전사업, 황해 습지보호를 위한 한국·중국·북한 협력 확대, 남북한 공동사업, 아세안 철새네트워크 지원, 아세안 생물다양성 연구 및 인식제고 사업 등 EAAFP를 필요로 하는 과제가 수두룩하다. 재정구조의 아이러니를 해소하려면 환경부의 각성과 인천시의 대정부 압박이 절실하다. 이는 국제기구를 품은 세계 일류 도시 인천의 면모에 직결된 사안이다.

[인천시론] 정당 현수막, 프리패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보이는 게 있다. 바로 각 정당이 내건 현수막들이다. 현수막의 내용은 단순명료하다. 상대 정당이나 인물을 비하하거나, 특정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루하루 생계에 쫓겨사는 국민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끌어보고자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기본이다. 여기에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얼굴과 이름까지 붙여 홍보에 열을 올리는 건 덤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게 있다. 보통의 현수막은 지정게시대에 부착되는데, 정당 현수막은 사람이나 차량이 자주 오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난 2022년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전만 해도 정당 현수막은 지자체장의 허가하에 정해진 기간 동안 오직 지정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게시 기간이 지나거나, 지정게시대가 아닌 곳에 내건 정당현수막은 지자체에서 일괄수거해 폐기처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국회는 정당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반발했고, 급기야 지자체장 허가 없이 어디든 정당 현수막을 내걸수 있도록 법 자체를 바꿔 버렸다. 국회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이토록 가혹하다. 뒤늦게 행안부에서 시행령을 통해 게시 기간을 15일로 제한하긴 했지만 정치권은 15일마다 새로운 현수막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사실상 무제한 권리를 행사 중이다. 문득 정치권의 현수막만큼이나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게 떠오른다. 유흥가 길바닥에 흩뿌려진 각종 불법업소 홍보전단이 그것이다. 굳이 둘의 차이를 찾자면 전자는 합법이고 후자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을 상대로 일방적 주장이나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강요하고, 거리의 미관을 해치며, 때론 행인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인다. 소상공인들은 식당 오픈을 홍보하기 위한 현수막 하나 내거는 것도 쉽지 않다. 각종 규제에 치이면서도 그래도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이를 감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소위 나랏일 한다는 정치인들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현수막 프리패스’의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생계와 정치인들의 표현의 자유, 굳이 이 둘을 비교형량한다면 무엇이 더 중요할까? 민초들의 생계를 돌보는 건 정치인들의 가장 큰 덕목임에도 왠지 그들의 정치에는 국민은 없고 오로지 정쟁(政爭)만 있는 듯하다. 환영받지 못하는 그들의 현수막, 과연 그 운명은 어찌 될지,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인천시론] 머리 아픈데, 다른 검사를 하는 이유

뇌졸중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외래진료를 보거나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환자 또는 보호자가 가끔 하는 질문이 있다. ‘머리가 아픈데 피검사와 가슴검사(흉부 엑스레이, 심전도)는 왜 하나요’다. 다르게 생각하면 교통사고로 차량을 수리할 때 카센터에서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궁금할 법한 질문이다. 보통 뇌졸중 증상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면 병원에서 하는 기본검사가 있다.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흉부 엑스레이가 바로 그것이다. 신속함을 요하는 뇌졸중 치료에서 갑자기 머리가 아닌 다른 부위의 검사를 하게 되면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애가 타거나 필요 없는 검사를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검사는 뇌졸중 치료에 있어 기초가 되는 검사다. 뇌졸중은 여러 증상이 있으나 가장 대표적으로 △심한 두통 △한쪽 방향의 팔·다리 마비 또는 감각이상 △구토 △어지럼증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은 뇌졸중 외에도 다양한 질환의 증상 중 하나다. 따라서 혈액검사를 통해 정말 뇌졸중으로 인한 증상인지, 혹은 저혈당과 같은 다른 질환으로 인한 증상은 아닌지 먼저 감별하는 것이다. 또 여러 검사로 뇌경색임이 밝혀졌다면 뇌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피떡)을 녹이는 용해제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 개인의 혈액 특성에 따라 혈전용해제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혈액검사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어 심장의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 심전도와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하게 된다. 심장을 확인하는 이유는 혈전을 유발하는 심방세동(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이 뇌졸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후 증상이 다른 질환의 결과로 보기 어려워 뇌졸중이 의심된다면 CT나 MRI 검사를 하고 경우에 따라 바로 시술을 하게 된다. 이처럼 머리가 아픈데도 머리 외의 다른 검사를 하는 이유는 정확한 진단을 통해 신속히 처치를 하기 위함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약 복용도 있다. 일반적으로 약물치료를 위해 많이 사용하는 소염진통제는 위장장애라는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병원에서 소염진통제를 처방할 때는 위장약을 같이 넣어준다. 하지만 일부 약에 민감한 사람들은 위장약을 임의로 제외하고 약을 복용해 속이 쓰리다며 다시 병원을 찾기도 한다. 질병의 치료는 의사의 역량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가 신뢰관계 속에서 서로의 말을 잘 들어주고 한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인천시론] 인천해양국립공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덕적도엘 다녀왔다. 세계 여느 유명 휴양지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하는 인천의 섬이다. 이번엔 2018년 개통된 다리로 소야도까지 둘러봤다. 바로 이웃한 섬이지만 둘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소야도는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이런 아름다운 대자연을 목전에 두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든다. 하나는 몰래 숨겨두고 나 혼자만 알고 싶다는 욕심, 다른 하나는 모두와 함께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른바 보전과 개발, 역사가 꽤 깊은 인류의 딜레마다. 원론적으론 전자에 한 표 던지지만 주민들을 생각하면 후자에도 슬그머니 눈길이 간다. 이럴 때 그 둘을 절묘하게 묶는 대안이 있다. ‘국립공원 제도’다. 우리는 1967년 1호 지리산 이후 지금까지 22개의 국립공원을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서울 등 전국 곳곳에 산재하는데 유독 인천엔 아직 없다. 인천 앞바다를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목소리는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현 유정복 인천시장이 민선 6기 시정부 시절 인천가치재창조사업의 일환으로 인천해상국립공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적도 있긴 했다. 백령-대청권역 270㎢를 국립공원으로, 강화 남단과 장봉도 등을 갯벌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와 시정부 교체 등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사이 2019년 백령-대청권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2021년 유네스코는 충남과 전남북 일대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면서 2025년까지 강화 등 인천 갯벌을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지금까지 오롯이 남은 곳은 덕적, 자월 등이다. 50여개의 유·무인도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그곳 섬들은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다.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릴 만큼 태초의 자연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선갑도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천국이자 국내 최대의 무인도다. 자월도는 섬 전체에 평화와 상서로운 기운이 넘친다. 모두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가꿔야 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은 사유재산권침해를 우려하겠지만 국립공원이라해서 무조건 안 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골프장, 스키장처럼 자연훼손이 심한 시설이 아니라면 웬만한 건 다 된다. 운영의 묘를 살린 상생의 방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해상국립공원을 논의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이 일대에 풍력발전시설이 몰려들고 있다. 벌써 11기의 풍황계측기가 설치됐고 허가를 기다리는 사업자들이 줄을 서 있다. 이대로라면 그 아름다운 바다가 거대한 인공날개의 숲으로 변해 버릴지도 모른다. 바다난개발 우려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국립공원이 되면 그런 걱정은 일단 던다. 한 해 200억원 가까운 국고를 지원 받고, 탐방객이 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차고 넘친다. 인천해양국립공원, 이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인천시론] 홍콩에서 배울 점, 드러날 뉴홍콩시티의 모습

인천에서 펼쳐질 ‘뉴홍콩시티’는 어떤 모습일까? 민선 8기 유정복 인천시장의 핵심사업인 ‘뉴홍콩시티’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궁금증이 만발하는 상황이다. 일단 유 시장은 ‘기업 하기 좋은 인천’을 기치로 홍콩을 모델로 삼았다. 인천이 포스트 홍콩의 최적지로 판단,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금융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며 국제자본과 해외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에 나서고 있다. 보통의 경우 홍콩은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가 풍부한 ‘최애’ 관광지 중 하나다. 홍콩이라고 하면 해야 할 말, 하고픈 말이 많은 것이다. 한데 우리가 홍콩을 말할 때, 또 좀 안다고 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지, 대표적인 고밀도 개발도시 홍콩은 면적의 40% 정도를 공원이나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 어디로 가든 30분 이내에 산 또는 해변을 접할 수 있는 곳이 홍콩이다. 사이쿵이라는 곳에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해안 주상절리가 있다. 사이쿵은 아름다운 풍경, 하이킹 코스, 조용한 해변과 청정한 섬 등으로 ‘홍콩의 뒷마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이포습지는 도심지와 맞붙은 생태습지공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생태학습과 교류를 위해 연중 방문하는 필수 코스다. 그곳에서 수많은 철새들은 물론, 수백종의 생물다양성을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은 개발을 병행하면서 고유 생태자원과 전체적인 도시공간에 대한 깊은 고려가 돋보이는 사례다. 국제적인 생태도시, 친환경도시의 전형을 홍콩에서 발견하게 된다. 홍콩의 이러한 노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홍콩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가 홍콩을 치밀한 도시개발에 집중한 전형, 혹은 국제적 비즈니스와 금융산업의 허브로만 규정한다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는 홍콩을 통해 어떻게 개발과 보존, 경제와 환경적 측면이 조화하고 공존하는지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갯벌이나 철새, 숲, 습지 등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개발 자체를 배제하거나 낙후, 불이익으로 직결된다는 식의 주장에 대한 근거, 실체를 다시금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유 시장의 뉴홍콩시티 프로젝트에서 홍콩의 전체적인 특성 가운데 어떤 우수성들을 인천에 접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유정복 시장의 공약으로 인천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 소래습지 국가도시공원 지정 등의 대표적인 환경공약이 있다. 핵심 환경정책과 고유한 생태자원, 홍콩이 한데 어우러진 인천의 미래 모습을 조만간 가늠해볼 수 있을까? 부디 홍콩의 다양한 이면, 선진적 사례를 통해 환경과 경제를 아우른 지속가능한 인천이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그래서 ‘북산고’가 어느 팀한테 진거야?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만화 슬램덩크 속 주인공 강백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뱉는 외마디다. 당대 최강 산왕공고와의 일전 중 큰 부상을 당해, 벤치에 머물던 강백호가 출전을 강행하며 남긴 레전드 명대사로, 작품 서사를 가장 잘 표현한 대목이다. 감히 감독님을 영감님이라 호칭하는 패기도 기특하지만, 무엇보다 강백호라는 캐릭터에게 부여된 성장 스토리의 마무리를 이토록 훌륭하게 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표할 뿐이다. ‘슬램덩크’는 첫눈에 반한 짝사랑 소녀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마법같은 한마디에, 농구를 시작한 풋내기 강백호와 오직 농구를 위해 죽고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농구라곤 관심도 없던 강백호가, 결국에는 농구에 진심인 바스켓맨이 된다는 이야기다. 비겁한 반칙이나 요행수로 승리를 가져오는 클리셰는 없다. 연애를 다루느라 괜한 시간낭비도 하지 않는다. 오직 10대 고등학생들의 농구에 대한 열정만 존재할 뿐이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일자리조차 사라져 버린 암울한 현실, 그럼에도 부모찬스라는 미명하에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슬램덩크’, 이 네 글자가 주는 감동은 묵직하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돼버린 지금,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26년 만에 돌아온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매섭다. 지난 1월 초 개봉했음에도, 아직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누적관객수 35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30, 40 아재들의 추억팔이가 아닌 10, 20대 MZ세대들조차 “엄마아빠가 내 나이 때는 이렇게 재밌는걸 봤구나”면서 극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문득, 만화 슬램덩크의 엔딩이 떠오른다. 북산고는 전국대회 2차전에서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희대의 명대사와 함께 강백호의 마지막 슛으로, 산왕공고를 간신히 꺾고 3차전에 오른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는 단 2쪽 분량으로 북산고의 전국 제패 여정은 급히 마무리된다. 어떤 팀한테 왜 졌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하지만 이토록 불친절한 엔딩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기에, 여기까지 온 그들에게 열광할 뿐, 그깟 패배따위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렇게 헤어진 그들을 26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사실뿐, 더는 바랄 게 없다.

[인천시론] 둘레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

근로현장에서 안전보건관리(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다. 동시에 사업장별 근로자들의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 또는 예방 등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근골격계질환은 물리적인 원인으로 근육·뼈·관절·신경 등의 조직이 손상돼 신체에 나타나는 건강장해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리적 요인과 함께 ‘사회심리적 요인’도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질환의 범위가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실제로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은 다요인적(multi-factorial)이다.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은 △개인적 요인(연령, 키, 몸무게) △인간공학적 요인(고정적 작업 자세, 중량물 취급, 반복작업) △정신사회적 요인(직무 스트레스, 노동강도, 고용불안)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이 적용된 근골격계 질환자 및 잠재적 질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국민 3명 중 1명이 근골격계 질환 혹은 질환 의심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정신사회적 요인,특히 ‘스트레스’는 근긴장을 높여 근골격계 증상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질환의 예방적 차원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의학·사회과학 분야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명상, 호흡, 휴식, 근육이완 등의 방법으로 유형화하고 있다. 이 중 필자는 주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스트레스 관리 방안으로 둘레길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넓게 말하면 일종의 산림치유요법이다. 사실 산림치유요법은 의학적인 치료법은 아니지만 자연요법 혹은 대체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필자는 최근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새로 설계해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효과와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연구한 적이 있다. 그동안 산림치유요법이 단순 스트레스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고는 있었으나, 근골격계 질환과 스트레스를 요인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자는 장시간 컴퓨터로 작업하는 스트레스가 많은 근로자였다. 이들은 일정 기간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필자는 참여 전후 대상자의 스트레스 척도와 잠재적 근골격계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신체화 증상 점수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대상자의 스트레스와 신체적 스트레스를 각각 약 30%, 25%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물론 둘레길 걷기는 전문적인 산림치유 프로그램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아닐까 싶다. 특히 최근에는 지자체별로 둘레길 마련에 힘쓰고 있어 접근성은 더욱 강화됐다. 강추위와 코로나19가 주춤하고 있다. 완연한 봄이 오면 밖으로 나가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둘레길 걷기 또는 등산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인천시론] 인천이 이산의 도시? 이의 있습니다

인천경제청이 새 슬로건을 내놨다. ‘미래가 찾아오는 눈부신 도시(Brilliant Future, Luminous IFEZ)’다. 다소 길고 일면 진부하게 들리지만 전반적으로 역동적이고 희망적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자부심도 엿보인다. 이처럼 구호와 상징물, 디자인 따위를 특정 장소나 도시의 홍보에 활용하는 것은 도시브랜딩 전략의 일환이다. 도시브랜딩의 가장 큰 목적은 정체성(Identity) 구축이다. 그 도시만의 고유한 실체, 존재론적 본질을 의미한다. 그것은 축적된 역사와 경험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것이지만 기존의 것을 대체할 필요가 생기거나 아예 그런 존재감이 없는 도시라면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분야의 효시이자 하나의 전형이 된 ‘I ♥ NY’는 당시 뉴욕이 처한 최악의 실업률과 범죄율의 타개책이었다. 네오 나치와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베를린이 ‘Be-Berlin(베를린이 되자)’이라는 일체감과 화합을 강조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도시 정체성은 일관성, 독특함, 차별성 등을 포괄하며, 이를 통해 시민들은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고 관광객이나 투자자 등의 외부 고객들에게는 도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도시 브랜드가 밝고 긍정적이며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유다. 드디어 인천에도 시립미술관이 생긴다고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다. 시 정부에 의하면 이 미술관의 특화 콘셉트를 유대인들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로 잠정 결정했다고 한다. 인천이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어우러지는 문화적 혼종성의 도시라는 점에 착안한 결과라고 한다. 이곳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선이 떠났고, 전쟁 통의 실향민과 산업화 시절 상경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사실 인천과 디아스포라를 접목하려는 역사는 꽤 길다. 올해로 11회째 맞는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시립미술관의 정체성도 그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다.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의 산물이니만큼 그 가치는 인정한다. 다만 일부 마니아들이 즐기는 영화제까지는 몰라도 미술관의 주인이 누구냐는 문제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시립미술관이니 그 주인은 의당 인천시민이 아닐까. 집도 거기에 살 주인의 철학과 이상을 담아 지어야지, 건축가가 살 집을 짓는 건 아니다. ‘이산’은 인천 역사의 일부일지언정 전부는 아니다. 배 떠난 연안부두가 인천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인천은 초일류 미래도시를 지향한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현재를 옥죄고 그래서 미래의 걸림돌이 돼서도 안 된다. 다시 인천을 이야기하자.

[인천시론] 제도와 실행, 정책∙현장 이을 협치의 중요성

지속가능발전과 관련해 지난해와 올해, 여러 면에서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광역 차원에서 보면 지속가능발전기본조례의 제정과 함께 인천시 환경부서에 속했던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정책기획부서로 업무 이관된다. 기초지자체도 관련한 이러저러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지속가능발전, 그리고 협치(거버넌스)의 높아진 중요성만큼 실체화가 관건이겠다. 지난해 7월 ‘지속가능발전기본법’ 시행 이후 환경·사회·경제를 통합한 지속가능발전이 정부정책을 넘어 지역으로까지 확산하는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기대가 컸다. 각 지역에서 조례를 만들고 관련조직 신설·정비, 계획수립 등의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천시는 2022년 말 ‘인천광역시지속가능발전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지속가능발전 업무부서 재편도 추진했다. 이는 오늘날, 지속가능발전이 세계적 주류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를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내재화하고 정책과 제도, 그리고 조직과 활동으로 환류하는 과정은 필수가 됐다. 더욱이 시민참여, 민·관협치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제도화됐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컸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극명한 이해의 차이와 더불어 실행력 차이마저 큰 경우를 지역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기본 예산마저 확보하지 못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지역 협치기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두도록 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두고 기존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무용론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무척 우려스럽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에 의한 행정 내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실천조직이면서 시민참여체계인 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차별되고 보완관계로 판단해야 더 적절하다. 기능중복, 대체수단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원칙적으로 각각 다른 방식과 기능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추동한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지역 차원에서 탄탄한 조직화와 사업·활동의 전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을 표방한 기관이나 기구의 역할 제고라든가 행정과의 파트너십, 시민사회와의 접점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환경·사회·경제가 균형을 이룬 지속가능발전, 행정을 포함한 지역사회 주체들의 협치를 지켜가려는 노력이 견지되어야 한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민·관이 손을 맞잡아야 할 충분한 이유다.

[인천시론] 개정 교육과정의 고갱이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리터러시)’ 수준은 어떨까? 가장 최근 조사인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보고서에 따르면, ‘IT 강국 키즈’들의 디지털 문해력 수준은 OECD 최하위권이다. 회원국들의 만 15세(중3, 고1) 학생의 순위를 공개했는데 한국은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헝가리 등과 함께 최하위 집단에 포함됐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실과 의견 식별률’도 최하위(25.6%)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학생의 평균 식별률은 47%. 튀르키예는 63.3%, 미국은 69%를 기록했다.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 교육 경험’도 모든 영역에서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성인의 경우도 디지털 미디어 활용 능력이 임금격차를 발생한다는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활용 능력을 0에서 3단계로 설정할 때, 0단계는 1단계보다 18% 임금을 적게 받고 2, 3단계는 1단계보다 26%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2015년). 한국의 미디어교육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요구해왔다. 청소년들의 디지털 기기 이용능력은 높아지고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므로 초등학생 때부터 정보 검색 및 진위 판별, 콘텐츠 제작과 소통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런 점에서 무척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초소양의 모든 영역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총론에서 ‘언어 소양’ ‘수리 소양’ ‘디지털 소양’을 기초소양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수리 소양’에서조차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개념을 포함하고 있어 ‘미래 핵심 역량’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3,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지금까지의 미디어교육은 학교 밖 전문기관과 학교 내 일부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금씩 확장돼 왔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고, 학교 안과 학교 밖의 협업을 통한 실천만이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인천 지역의 미디어교육과 관련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 조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유아, 청장년, 노인들에 대한 교육도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 있도록 모든 자원을 모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칭 ‘인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협의체’ 같은 기구를 통해 지역 내 우수한 자원을 활용할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론] 소년법 개정 논란, ‘야드 바쉠’의 한 남자

1942년 8월 폴란드 유대인 거주지역의 한 고아원에 독일 나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60대의 원장은 병사들에게 잠시 시간을 줄 것을 부탁한 후, 192명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히고는, 맨 앞줄에 서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바르샤바 기차역을 향해 소풍 가듯 행진을 했다. 하지만 기차의 종착지는 가스실이 있는 수용소, 한 독일군 장교가 “원장님은 풀어주라는 사령관의 명령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장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고, 차디찬 가스실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나치의 광기 어린 폭력 속에서도 유대인 전쟁고아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소아과 의사인 야누슈 코르작의 이야기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 큰 구덩이에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넣고는 ‘약 1천명’, ‘약 500명’ 이런 식으로 팻말을 세웠던 야만의 시대, 코르작은 ‘모든 어린이는 사랑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숭고한 사명을 실천하고자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이에 1989년 코르작의 조국 폴란드가 발의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어린이와 함께한 코르작의 일생이 세계를 감동시킨 결과다. 이렇게 탄생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형법 위반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는 최저연령을 설정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했고, 2019년 아동권리위원회는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14세’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소년법 역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촉법소년으로 분류해,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도록 규정한 것 역시 그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정부가 발의한 ‘촉법소년 기준 나이를 만 13세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지켜보는 여론은 복잡하다. 나날이 흉포해지는 소년들의 범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지지 의견도 있지만, 다른 한편 단순 엄벌보다는 교화가 우선이라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하지만 소년범죄의 상당수가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한 가정환경과 열악한 사회안전망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한 채 미성숙한 인격체인 소년에게 그 책임을 온전히 부담토록 했다는 비판은 뼈를 때린다. 이스라엘에는 죽어간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관 ‘야드 바쉠’이 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촛불이 켜져 있는 그곳을 벗어나면, 슬픈 표정의 아이들을 가득 안고 있는 야누슈 코르작의 청동 조형물이 나온다. 작금의 소년법 개정 논란이 숭고한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게 아닌지 문득 서글프다.

[인천시론] 건강한 명절을 보내려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날이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명절증후군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관성 탓인지 의외로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줄어든 것 같다. 그럼에도 명절증후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명절증후군은 ‘증후군’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정확한 질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정신적·신체적 ‘증상’이다. 이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 고된 가사노동, 장거리 이동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의학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명절증후군 증상에는 △비만 △근골격계 증상 △정서장애 △소화불량 등이 있다. 비만의 경우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지만 평소 건강하다면 이러한 증상들은 명절 전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중에는 질병과 연관돼 의학적으로 연구된 증상도 있다. 바로 휴일심장증후군(Holyday Heart Syndrome·HHS)이다. 이 증후군은 ‘음주(술)’와 연관된 것으로 필립 에팅거 박사에 의해 1978년 미국심장학회저널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주말이나 공휴일 이후 병원에 부정맥으로 입원하는 환자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건강한 사람도 단기간에 폭음을 하게 되면 부정맥이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특히 평소 과음을 했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명절 기간에 갑자기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오랜만에 보는 가족, 친지라도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다. 명절증후군은 긴 연휴 탓에 평소와는 다른 생활·행동양식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고된 노동, 식습관 또는 수면 패턴의 변화 등에 우리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휴 기간에는 나만의 생체리듬을 유지하거나 행복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과음을 하거나 잠을 몰아서 자거나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받는 등의 행동은 지양하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또 건강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는 설날을 보내는 지역의 응급실, 약국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좋다. 그러면 안 되지만 만에 하나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설날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설’이라고 한다. 그동안 명절 분위기가 다소 간소화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명절증후군 없는 명절이 되기를 바라며, 아울러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인천시론] 마스터 플랜부터 마스터하자

여행을 떠나 보자. 길에 나서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머니 사정을 따져보는 것이다. 욕심이야 하와이를 마다할까만 자칫 분수를 넘으면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어서다. 예산에 맞춰 목적지와 일정을 정하고 이동수단, 숙박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예약한다. 이럴 땐 정보가 힘이다. 책자와 인터넷 지인들과의 통화 등을 총동원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여행계획표가 완성된다. 세부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큰 틀은 그렇게 미리 만들어 둔 기본 계획서대로 움직인다. 그게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이다. 기업경영에 있어서의 마스터 플랜은 충분히 예상되는 난관을 극복하고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계획을 말한다. 도시개발에도 마스터 플랜은 필수요소다. 지구 전체에 대한 토지이용계획과 각종 시설물의 도입을 구상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작업이다. 마스터 플랜의 첫 단계는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왜 하는가, 달성해야 할 근본의 가치는 무엇인가 등이다. 그 다음은 환경분석이다. 해당 사업을 둘러싼 내부의 강점과 약점, 외부의 기회와 위협요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전략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결국 마스터 플랜은 시행하고자 하는 사업을 둘러싼 모든 정보의 총합이다. 사업 성공을 위한 우선순위이며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의 다른 이름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 중 한곳인 부평에 경사가 있었다. 80여년간 시민들의 접근을 막아 왔던 미군부대 캠프 마켓 부지가 시민 품으로 돌아온 거다. 그 면적이 물경 60만4천938㎡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금싸리기 땅이다. 여길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역 내에선 호수공원이나 역사문화공원 등 저마다의 희망사항이 쏟아지고 있다. 시는 지난해 4월 이와 관련한 마스터 플랜 수립용역을 발주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22개월의 시한을 줬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터다. 그런데 그와는 전혀 무관하게 조병창(일제강점기 당시 무기제조공장) 건물을 뜯네 마네, 제2시립병원을 들이네 아니네 연일 시끄럽다. 조금만 더 진득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선물인 만큼 함부로 무엇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 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와 꿈을 담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향유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그걸 오롯이 담은 결과물이 마스터 플랜이다. 무엇보다 그 마스터 플랜부터 마스터하고 볼 일이다.

[인천시론]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어른 책임과 청소년 역할

‘지금 아니면 답이 없다’는 것이 청소년들의 외침이다. 관교여자중학교 1, 3학년생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으로 지속가능발전목표와 관련해 성평등과 환경보전, 기후변화대응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그들은 해양오염과 생물자원의 고갈을 염려했다. 육상생태계를 포함해 해양생태계 보전과 더불어 생물다양성의 확보를 요구했다. 철저한 쓰레기 분리배출과 함께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강조했다. 기후변화 완화와 탄소중립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2022년 세밑, 청소년원탁토론을 위해 관교여중 강당을 메운 그들을 보니 이국의 한 소녀가 떠올랐다. 당시 15세의 고등학생이던 툰베리는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스톡홀름의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훔쳐 가고 있다.”며 당찬 목소리로 정치 지도자들과 기성세대를 질타했던 툰베리. 툰베리는 이듬해인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에서 깊은 통찰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우리 미래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깃발을 들고 나섰다. 작은 모임에서 시작했던 ‘청소년기후행동’은 2020년 3월에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대응이 청소년의 생존권, 환경권, 인간답게 살 권리,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요지의 기후 헌법소원을 청구,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를 요구했다. 심지어 지난해 6월, 5세 이하의 아기들이 주된 청구인이 된 기후소송도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성인이 된 후면 너무 늦는다. 이러다 다 죽는다”고 일갈했다. 지금 세대가 누려왔던 생활의 편리를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포기할 수밖에 없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다. 청소년들은 말한다.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청소년들이 더욱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야 한다.” 2023년 새해, 지금에 대해 결정할 수 있고 힘을 발휘해야 할 이들의 무거운 책임이다.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사용종료, 영흥화력발전소 조기폐쇄, 갯벌보존과 도시숲 확충 등 탄소흡수원 강화 그리고 ‘탄소중립 미래도시’를 내건 인천시의 비전에 쏠린 청소년들의 시선이 매서운 이유다.

[인천시론] 용서할 수 있는 권리

“이제 그 소녀를 백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딸이, 당신의 부인이, 당신의 어머니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주십시오.” 존 그리셤 원작의 영화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속 대사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한 소도시, 술과 마약에 찌든 백인 남성 두 명이 식료품을 사들고 가던 한 흑인 소녀를 무참히 성폭행해 강에 던져버린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곧바로 범인들이 체포되지만, 백인 우월주의가 극심한 미시시피에서 이 극악무도한 인간들에게 중형이 내려지기는커녕 당장 석방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조금의 반성의 기미도 없이 형식적인 재판에 들어서는 순간, 피해자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총을 쏴 범인들을 현장에서 즉사시킨다. 영화는 현장에서 체포된 아버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제이크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사법제도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할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영화는 진지하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개정 공탁법이 시행되면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형사공탁금을 걸 수 있도록 개선(?)됐다. 피해자의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특정해야 가능했던 기존 공탁 방식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유리한 형량을 받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형사합의를 하거나 적어도 피해금원을 공탁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웠기에 일부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고자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거나 아예 합의를 종용하며 2차 가해 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에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피해 회복을 위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모르는 경우에도 공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형사공탁제도가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개정 취지와는 별개로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해자의 형량 줄이기를 위한 방편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 역시 유효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엄벌을 탄원할 경우 내지 가해자에게 진지한 반성이 없는 경우에 있어서도, 단지 형사공탁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선처하는 것이 과연 정의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용서는 국회도 법원도 아닌 오직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국회의 손을 떠난 개정 공탁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이제 법원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 속 소녀의 아버지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들이 눈을 감고 피해자를 백인이라 상상했던 결과다. 법원 역시 부디 자신이 심판받고 싶은 그대로, 다른 이를 심판해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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