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법] 누가 ‘3류 바보’인가?

“이 무식한 3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를 해서 나라 경제 망쳐 놓고, 외교 안보 전부 망쳐 놓고...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 여러분 보는 데서 뭐 토론을 해야 되겠습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같잖습니다.” 지난해 12월29일 대구·경북지역 유세에서 이재명 후보의 토론 요구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답이었다. 또 윤석열 후보는 이 발언 약 한 달 전인 11월22일 ‘제20대 대통령 후보 국가 미래 비전 발표회’에서 자신은 “최고 인재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일을 맡기겠다”는 국정 운영 방침을 밝혔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인 올해 5월4일 청와대에서 현 정부 국정과제 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다음 정부는 우리 정부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출범하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정부의 성과·실적·지표와 비교를 받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윤석열 정부의 각 분야 최고 전문가 중심의 6개월 국정 운영 결과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지면 한계로 모두 소개할 수 없지만 나라 경제 및 민생 경제에 대한 평가를 가장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자금시장(돈)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현재 자금시장 상황은 정부가 손을 떼는 순간 붕괴할 수밖에 없다. 시장주의를 표방한 정권에서 역설적으로 자금시장이 사실상 죽은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말하는 최고 인재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임기응변 대응으로 점점 위기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신용위기라는 불을 끌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자금시장이 구조적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금감원이 ‘2022년 업무계획’으로 이미 올해 초 2월14일에 코로나19로 쏟아부은 유동성을 회수하게 되면 부동산 등 자산시장 충격, 자금 조달 여건 악화, 취약차주 부실화 등이 우려되니 대책 준비를 주문했다. 실제로 올 3월부터 연준의 금리 인상 시작과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에 0.5%포인트로 인상 속도 증가, 특히 6월에는 0.75%포인트 인상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한국의 자금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5월까지 안정적 흐름을 보였던 회사채 수익률은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 무려 64bp(1bp=0.01%) 상승했다. 5월26일부터 6월까지 회사채 순발행액이 7천350억원이나 감소한 배경이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그런데 인수위 시절부터 아무 대책도 없었던 윤석열 정부의 금감원은 6월30일이나 돼서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점검’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최고 인재라며 금감원 원장에 앉힌 이복현의 첫 번째 뒷북치기였다. 회사채 시장의 불안정한 모습은 7월 이후에도 지속했지만 기업어음(CP)과 금융채 순발행액은 5월부터 9월27일까지 각각 4조6천억원과 3조4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CP 등 나머지 자금시장은 김진태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9월28일 (테마파크 관련 PF 대출 사업을 추진한, 재무 구조가 멀쩡한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 절차를 밟겠다는) 김진태 폭탄이 투하된 이후 자금시장은 사실상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사채 순발행액은 최근(11월18일)까지 3조8천억원 이상 줄어들었고, 김진태 사태 이전까지 문제가 없었던 CP와 금융채의 순발행액도 각각 6조8천억원과 2조3천억 원 줄어들었다. 문제는 7월부터 PF 대출을 점검한다는 금융감독원이 이를 방치했고, 금융위원장 김주현은 국회에서 태연하게 몰랐다고 답변했다. 최고 인재들의 두 번째 민낯을 보여줬다. 외국인이 국채선물을 대규모로 매도하고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는 둔춘주공 PF 대출 차환이 실패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김진태 폭탄이 투하되고 25일이 지난 10월23일 일요일 오후에야 기재부-한은-금융위-금감원 등이 총출동해 ‘50조원+알파 규모의 유동성 투입’을 발표했다. 최고 인재들의 세 번째 민낯이었다. 게다가 유동성 투입 규모가 188조원+알파로 증가했듯이 50조원은 ‘언 발에 오줌누기’였다. 게다가 정부는 신용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채안펀드 투입이 (자구책을 먼저 요구해야 하는 재벌 건설사 등) 우량 기업들에 대한 사실상의 공적 자금 지원이라는 점이다. 공공사업을 하다 위기에 직면한 것도 아닌데 왜 납세자 부담이 될 수 있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가. 재벌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민생 위기에 내몰린 서민은 대부업체에 떠넘기고 있다. 재벌 친화적 DNA를 갖는 최고 인재들의 네 번째 민낯이다. 그런데도 자금시장 어려움은 지속하고 있다. 신용이 무너진 후에는 유동성을 무제한 투입하지 않는 한 정상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최고 인재들은 자금시장을 사실상 죽여 놓고 대외 환경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면 ‘3류 바보’가 누구인지 판명나지 않았는가.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화폐주권 의식 없는 한 외환위기 공포 반복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1월 2천619억 달러, 올해 1월에는 14년 전보다 2천억 달러가 많은 4천615억 달러, 그리고 9개월 동안 2008년에는 222억 달러 감소했던 반면, 올해는 그 두 배가 넘는 463억 달러 감소하며 4천168억 달러까지 줄어들어 심리적 마지노선인 4천억 달러를 위협하고 있다. 사실, 보유 외환의 90% 이상이 채권이고, 최근 채권 가격의 급락을 고려하면 (매수가격으로 평가된) 외환보유액은 4천억 달러가 무너졌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환율은 화폐의 대외적 가치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환율 안정은 화폐주권의 영역이다. 정치인을 포함해 많은 한국인은 화폐주권을 얘기하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군사주권은 쉽게 납득하면서 경제주권과 화폐주권은 관심조차 없다. 현대 전쟁은 군사 전쟁이 아닌 경제 전쟁, 금융 전쟁이라는 말을 하면 끄덕거리면서 말이다. 금융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그 결과를 우리는 경험하였다. 1997년 말 IMF에게 구제금융을 받으며 시작된 외환위기를 당시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환란’으로 묘사까지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5년 약 1만3천4백 달러에서 98년에 약 8천3백 달러로 약 40%가 줄어들었다. 수많은 실직자와 사업체 도산 등으로 가정이 해체되며 서울 길거리에 노숙자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이 외환위기 충격의 한 단면이다. 채권국들은 IMF를 내세워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간섭하였다. 자신들의 채무를 온전히 회수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을 접수(?)한 것이었다. 다시는 환란을 겪지 않기 위해 한국경제는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해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화가치 하락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진행하며 환율 방어에 보유 달러를 투입하다 보니 올해 외환보유액 감소의 70% 이상(325억 달러)이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되었다. 외환보유액의 감소는 한・미 간 금리차 확대 등과 더불어 원화 가치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당국의 태도이다. 통화와 재정 당국 책임자인 한은 총재와 기재부 장관 모두 가능하지 않던 한미통화스와프(9월 칼럼 참고)에 매달리며 국민을 희망고문(?)하다가 이제 와 통화스와프(효과)에 부정적이라며 발을 뺀다.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세계 8위의 외환보유를 거론하며 2008년 금융위기 상황과 다르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런데 2008년에도 외환보유 규모는 세계 6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2008년 2월 말 원/달러 환율은 940원대에서 그해 말 1,500원을 돌파하고, 2009년 3월 초에는 1,570원까지 돌파하였다. 당시 연준은 미국의 필요에 따라 한국은행에 2008년 10월 30일부터 2009년 4월 30일까지 6개월간 3백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 창구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1,400원대에서 1,238원까지 하락시켰던 스와프 효과는 한 달도 가지 않고 11월 24일에는 1,500원대를 돌파하였다. 이처럼 달러 스와프는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원/달러 환율은 기본적으로 달러 인덱스와 같이 움직였다. 제로금리까지 인하한 공격적 금리 인하와 뒤이은 양적완화 개시 선언에 따라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하며 원/달러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원화 가치 하락폭이 가장 크듯이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2008년 여름 대비 원화 가치는 약 60%가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보다 외환보유가 적은) 싱가포르와 대만 달러의 가치는 각각 15%와 16% 정도밖에 하락하지 않았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 기조의 정착으로 외환보유의 절대 규모는 크게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GDP)에 비해 많이 미흡하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을 각각 90%와 80% 안팎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해 여러 기준이 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새로운 (외화)자금 확보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등을 포함해) 한 나라가 필요로 하는 수입액과 (단기간 내) 상환해야 할 대외채무 등을 방어할 수 있는 규모일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액은 무려 1조 118억 달러나 된다. 외환보유 축적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금융(자본) 논리로 정책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정책 중 가장 핵심 수단이 통화정책이고, 통화정책은 화폐가치의 안정(물가안정)을 전제한다. 여기에 자신의 통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나라의 경우 자기보험 차원에서 충분한 외환보유를 확보해야만 갑작스러운 자본유출 시 외환위기를 방지할 수 있고, 외환보유 축적을 위해 경상수지 흑자 유지와 이를 위한 환율 경쟁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주요 교역국들을 대상으로 무역과 경상수지 흑자 규모, 환율 개입 등을 감시하는 이유도 미국 통화정책의 자율성 확보, 즉 화폐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 설정한 기준을 무시하면서 독일, 싱가포르, 대만, 스위스, 베트남 등이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 경쟁력 확보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반면 위기 때마다 한국에서 부상하는 외환위기 우려는 미국 요구를 잘 따르는 한국이 치르는 비용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환율 폭등’ 국민이 두려워하는 이유

8월 원유 도입 가격이 달러 기준으로 1년 전에 비해 39% 올랐다. 그런데 원화 기준으로는 58% 올랐다. 상승률 차이인 19%포인트가 환율 효과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만4천984달러에서(1달러=1천396원 적용) 6개월 만에 2만9천470달러로 줄었다. 환율 폭등이 금리 인상 및 인플레 지속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 및 실질소득 감소, 자산시장 침체, 그리고 수입 비용 급증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등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문제가 집약된 환율 상승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강달러에 그 원인을 돌리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안전자산군에 속하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도 가치가 크게 하락했는데 한국의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사고는 말 그대로 (20세기 문법에 사로잡힌) 고정관념이다. 유로, 엔, 파운드의 몰락은 일본, 유로존, 영국 등이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통화 프린트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경제 회복을 만들어내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유로존 GDP(달러 기준)는 2020년(13조273억달러)까지 2008년 수준(14조1천583억달러)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영국 GDP도 2020년(2조7천569억달러)까지 2007년 수준(3조1천62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은 최악이다. 2021년 GDP(4조9천374억달러)가 아베노믹스 시행 직전인 2012년(6조2천724억달러) 수준에 크게 미달할 뿐 아니라 ‘잃어버린 30년’이 회자할 정도로 1995년 수준(5조5천456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르핀이 순간 고통을 완화할 뿐 치료제가 될 수 없듯이 값싼 통화 공급만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할 수는 없었다. 정치 실패에 의한 인플레이션과 강요받은 미국의 통화긴축 전환이 유로, 엔, 파운드 몰락의 방아쇠가 됐을 뿐이다. 중심통화 몰락의 근본 배경이다. 원화 가치 폭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G20 나머지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안전자산들이나 한국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6월 이후 9월 중순까지 원화 가치 하락폭(-11.8%)은 유로(-6.2%)나 파운드(-7.8%)는 물론이고 심지어 엔화 하락폭(-11.0%)조차 앞질렀고, 경제위기설 국가들로 분류되는 튀르키예(-11.4%)보다 컸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도만 원화보다 더 하락했을 뿐이다. 이처럼 원화가치 폭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환율은 해당 국가 경제에 대한 신뢰를 반영한다. 원화 폭락의 주요인은 ‘잘못 끼운 첫 단추의 함정’에 빠졌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며) 환율을 방치한 결과 강요된 금리 인상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붕괴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외환시장 협력을 논의할 것이라며 잘못된 기대감을 조장한다. 외환시장 협력이 한미 통화 스와프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이는 사실상의 희망고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의 달러 스와프 라인 개설은 연준 통화정책 필요성 차원에서 고려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재는 (금융 및 실물 위기로 달러를 풀어야만 하는) 2008년이나 2020년 상황과 달리 통화긴축으로 전환하는 상황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연준이 2008년과 2020년 달러 스와프 라인을 개설한 이유는 달러 공급을 하지 않으면 교역국들이 다량 보유한 미국채나 MBS를 매각함으로써 이 증권들을 매입하는 연준의 목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연준 규정에 따르면 달러 스와프 라인 재개설은 한국만 허용할 수 없고, 규정대로 9개국으로 확대할 경우 연준의 양적긴축 효과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둘째, 연준의 통화정책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미국 및 국제 경제에 부정적 확산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준은 2020년 3월 (외국 통화당국이 보유한 미국채를 연준에 맡기고 달러를 빌리는) 레포(Repo)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올해 7개월 동안 외국인의 미국채 수요가 약 2천500억달러나 감소할 정도로 미국채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즉, 연준은 미국채에 대한 매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도입한 피마레포제도를 활성화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스와프 라인을 재개설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의 정상화보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놓고는 외부의 힘에 매달리며 국익만 해치는 형국이다. 현재의 환율 폭등을 국민이 두려워하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예고된 실패, 문제는 상황 악화 가능성

여기저기서 윤석열 정부의 100일에 대해 평가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고된 실패’였다. 혹자는 100일을 보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가를 물을 것이다. 국정 운영의 성공 여부는 철학과 방향 설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전략과 책략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 국가 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터 그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원 확보까지의 전 과정을 꿰뚫고, 이를 기초로 국정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 국가역량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삼는 비전과 전략, 책략 등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100일의 난맥상은 기본적으로 국가 과제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와 그에 따른 잘못된 방향 설정에서 비롯한다. 문제는 잘못된 방향 설정을 수정하지 않으면 실패의 악순환, 이른바 ‘잘못 낀 첫 단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방향 설정의 핵심은 자신이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시대에 대한 이해이다. 윤석열 정부의 시대는 과거 정부와 공통점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와의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과거의 지식체계나 지혜, 경험 등으로 예측이나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처음’형 위기의 시대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문재인 정부 때의 코로나 팬데믹 위기 등이 그것들이다. ‘새로운 처음’형 위기는 전지구적 규모를 띈다는 점에서 어느 국가도 위기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량에 따라 충격의 결과는 차이가 존재하고, (21세기형 팬데믹에 대한 새로운 방역 문법을 제시한 K-방역이 보여주었듯이) 위기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때 21세기 선도국으로 부상할 기회를 갖는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한국 사회의 ‘암’이 된 자산 불평등의 구조화 문제이다. 한국 사회는 사실상 부와 신분이 세습되고, 부가 부를 낳는 ‘고인물 사회’가 되어버렸다. 팬데믹 이후 2년간 국민순소득은 103조 원이 증가한 반면, 국내순자산은 소득증가분의 31배인 3천239조 원이 증가하였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땀 흘려 노동하고 싶은가? 불완전한 일자리로 생계안정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빚투를 어떻게 비난하거나 막을 수 있는가? 순자산 증가분의 87%인 2천825조 원이 부동산자산에서의 증가였고, 부동산자산 증가분의 68%인 1천918조 원이 토지자산에서의 증가였다. 그리고 (2020년 기준) 개인 소유 토지 중 약 58%를 상위 10%가 소유하고, 법인 소유 토지 중 약 91%를 상위 10% 법인이 소유하였다. 조선 시대 말보다 토지 집중이 훨씬 심한 상태다. 저량(貯量) 개념인 자산은 세습의 속성을 갖는다. 소득보다 자산 증가 속도가 30배 이상이라는 사실은 부가 부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0년 기준) 부동산자산 상위 2%의 평균 대출금은 약 3억7천만 원이었던 반면, 하위 30%의 평균 대출금은 2천300만 원에 불과했다. 자산이 많을수록 돈을 값싸게 이용할 기회가 많다 보니 부를 축적하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난 2년간 통화량 증가분이 700조가 넘었지만, 이중 실물경제로 유입된 돈은 약 21%인 147조 원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통화시스템이 부와 신분의 세습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1원1표 원칙의) 시장<경제권력>과 (1인1표 원칙의) 민주주의<정치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만 지속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의 세습에 따른 성장과 혁신의 둔화, 출산 파업, 불안의 일상화 등은 민주주의 실종의 결과물이다. 민간부문에서 돈의 배분은 실물 영역과 금융 영역으로 구분되고, 실물 영역에서 돈의 배분은 가치 창출에 있어서 자본과 노동의 역할 차이 및 자본과 노동의 협상력 차이 등에 의해 결정되고, 금융 영역에서 돈의 배분은 돈의 지배력 및 금융에 대한 공동체의 통제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영역이고, 그 결과가 정권 재창출의 실패였다. 역대 정권과 윤석열 정권의 차이라면 기존의 ‘새로운 처음’형 위기들에 본격적인 패권 충돌의 리스크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취임사부터 바이든의 가치 동맹에 적극 동참을 선언한) 윤석열 정권은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전환함으로써 ‘패권 충돌 리스크’를 자초하였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한 문재인 정권에서의 ‘포괄적 파트너십’과 달리 한국 경제를 미국 안보의 하위개념으로 스스로 편입시킨 것이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게다가 세제 개편으로 재벌 대기업과 부자를 지원하고,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 적자를 (특혜를 낳는) 국유자산 매각으로 메꾸고, (무역적자로 전환에 따라 환율 안정성이 취약해지는 상황에서) 외환법 개정으로 부유층 재산의 해외 유출을 지원하는 등 부의 세습화 해체라는 시대 과제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방향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임시방편식으로 대응을 하며 상황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외환위기보다 우려되는 22년 위기

미디어들이 ‘97년 외환위기’를 소환하고 있다. 국민은 불안하다.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가진 우리 국민이 최근의 경제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최근 무역적자의 지속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 가파른 환율 상승, 외환보유액의 축소, (국채 부도 위험에 대한 보험료에 해당하는) 국채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의 급증 등 부정적인 뉴스가 하루가 멀다고 미디어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나 정부 당국자 등은 약 4천4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기 때문에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전문가와 정부 당국자 등은 진실을 외면하거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어떠한 위기도 같은 방식과 내용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의 출발점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다. 그런데 97년 외환위기 당시 인플레이션은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 폭등의 결과물이었을 뿐 아니라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는 대일 무역적자가 주도한 무역적자의 증가 속에 자본시장 개방 및 외환거래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원화가 과대평가됐고, 그 결과 무역수지를 악화시킨 결과였다. 외환위기는 대규모 실업 양산, 가계소득 후퇴, 인플레이션, 자산가치 폭락 등을 수반했다. 현재의 경제 위기가 외형상으로는,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폭등에 따른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으로 보이지만, 근본 원인은 패권 충돌과 ‘지경학적 파편화(geoeconomic fragmentation)’에 있다. 소련 해체와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자유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라는 상이한 지각판이 연결돼 하나의 지각판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중국 경제력의 부상과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위상 약화 등 경제력의 다원화로 잠재돼 있던 지각판 사이의 단층선을 표면으로 부상시켰다. 탈세계화라 표현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자본, 상품과 서비스 교역, 아이디어, 기술의 국제 흐름에 균열을 의미하는 경제블록의 분할이 보다 실감날 것이다. 지난 40년간 통합이 생계 수준과 생산성 증대, 글로벌 경제 규모의 증가를 가져온 만큼 지경학적 파편화는 역으로 위축, 심지어 후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반도의 지정학이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군사 안보적인 지정학 측면과 만나는 경제적인 지경학 측면의 대표적인 경우가 무역이다. 무역은 경제 규모(GDP)와 거리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은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 외환위기 이후 무역흑자 기조가 정착됐다. 그리고 무역흑자 기조의 일등공신이 대중 무역흑자였다. 그러나 올해 전쟁 이후 러시아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있고, 특히 5월부터는 대중 무역이 적자로 전환했다. 무역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의 파편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의 현재 어려움이 대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무역적자 등에 기인하고 있는데 둘 다 패권 충돌에 따른 지경학적 파편화의 결과라면 이 어려움은 일시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대내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가계 (실질 및 가처분) 소득의 후퇴와 (주식-부동산-코인 등) 자산가치의 감소, 소비와 성장 둔화, 대외적으로 무역적자와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성장 둔화와 환율 상승과 보유 외환의 감소,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의 부정적 시선의 증가라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형상으로 이러한 어려움은 다른 나라와 유사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첫째, 환율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오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환율의 빠른 상승으로 유류세 인하나 국제 유가 하락 효과가 거의 없는 이유다. 악순환이 작동한다면 환율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국인 사이에서도 달러 사재기가 확산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정부는 외환거래 사전신고 폐지를 추진함으로써 환율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둘째, 유동화시키기 어려운 부동산 자산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주식가치가 주택가치보다 약 1.2배 큰 반면, 한국은 거꾸로 주택가치가 주식가치보다 2.4배 이상 크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시 부동산시장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시장 경착륙은 가계 파산, 금융회사 부실, 경기 침체, 실업 증가 등을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태평양 지각판과 유라시아 지각판 사이의 단층선인) 한국은 단층이 활성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국가든 국제 규범 위반하고 질서 존중 안 하면 규탄하고 연대해서 제재가 필요하다”며 윤석열 정부는 단층을 앞장서 활성화시키고 있다. 위기의 악순환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97년 외환위기가 ‘심근경색형 충격’이었다면 이제 시작인 22년 위기는 ‘골병형 충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패권 시대의 종언

러시아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으로서는 맞는 말이지만 푸틴의 주장은 사실이다. 봉건제가 군사력으로 경제력을 축적하고, 경제력이 군사력 확장의 경제적 토대가 돼 팽창을 추구하는 체제라면, (상공업자가 주도한) 자본주의는 (자본과 군사력)의 결합에 의한 제국 건설(탐욕의 팽창)이라는 차이를 갖는다. 자본주의 제국을 만든 영국 패권의 기반이 파운드와 군사력이었듯이 미국 패권의 기반은 달러와 군사력이고 20세기 미국의 패권은 1·2차 세계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입증했다. 미국 패권의 또 다른 축인 달러 패권은 IMF와 세계은행을 설립한 브레튼우즈 체제였고, 달러 가치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받아들였다. 즉 미국 경제의 절대적 경쟁력과 그에 따른 무역흑자 구조의 덕택으로 1달러=360엔, 1달러=4.20마르크 등 각국의 통화가치를 달러에 고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패권은 역설적으로 미국 패권의 정점이었던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 동서 진영 구분에 의한 냉전 질서가 구축된 것은 핵 시대의 도래에 의한 것이었다. 즉 미국과 소련 모두 핵을 보유함으로써 군사력에 의한 패권 완성은 불가능한 프로젝트였고, 미국 군사력 패권의 1차 위기는 (무승부로 끝난) 한국전쟁에서 그리고 2차 위기는 (미국에게 패배를 안긴) 베트남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패권의 경제적 토대인 달러의 힘도 경제력의 다원화에 따라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1차 위기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질서로 만든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에서 비롯한다. 산업화의 확산에 따라 일본과 서유럽 주요국이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축소하면서 미국은 1971년부터 무역수지 적자국으로 전환하는 등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주는 것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해외로 달러가 유출됐다. 금태환 정지 선언은 달러 가치의 안정성을 무너뜨린다. 이때 발생한 것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달러 가치 폭락에 따라 (손실을 보는) 석유 등 1차 상품 공급국가들의 상품가격 정상화가 인플레와 경기침체를 유발한 것이다. 미국은 달러의 기득권(기축통화 발권력)을 이용해 달러 가치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 변동환율제로 바꾸면서 금융적 이해(월가의 이익 중심)로 국제통화질서와 경제체제를 재편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금융투자 수익으로 메꾸고 금융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등 미국을 세계의 투자수도로 건설하겠다고 대내외에 천명한다. (금융 가치의 논리로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고, 워싱턴이 월가에 의해 지배되는) ‘금융화’가 진행된 배경이다. 즉 70년대 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달러 가치를 회복시켜 인플레를 진정시킨 후 금융은 경제 운용의 중심이 된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 경기침체감사가 금융위기발이었기에 인플레 하락 속 침체였다. 경기침체 때마다 (금융 부양을 의미하는) ‘연준 풋(Fed Put)’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그린스펀 풋’, 금융위기 때의 ‘버냉키 풋’(‘헬리콥터 벤’), 금융위기 이후의 장기간 초금융완화를 유지한 ‘옐런 풋’ 등이 그것이다. 파월도 2018년 연속 4차례, 총 1%p 인상한 후 월가가 발작(?)을 일으키자 2019년 금리를 3차례, 총 0.75%p 인하하면서 금융완화(‘파월 풋’)에 동참했지만, 주지하듯이 ‘파월 풋’은 팬더믹 이후 진가(?)를 드러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랠리가 이어진 배경이다. 군사력만으로 할 수 없었던 패권 완성을 레이건이 군비경쟁으로 소련을 해체시킨 것도 달러의 힘이었다. (단일시장 형성을 의미하는) 세계화는 그 결과물이다. 이처럼 ‘연준 풋’은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이자 (군사력과 더불어) 미국 패권을 완성시켜준 전가의 보도였다. 그런데 이 연준 풋이 오미크론발 공급망 교란과 중·러를 배제한 공급망 구축(탈세계화)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보여준 오락가락 모습이나 인플레 통제 능력에 대한 의구심 등 연준이 신뢰를 잃어버리는 배경이다. 문제의 근원은 미·러 패권 충돌(워싱턴의 정치실패)에서 비롯한 인플레이션을 연준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 신뢰 확보의 전제조건들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간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정치실패발’ 물가안정을 위해 필요한 급격한 금리 인상은 금융안정을 희생해야 하는 반면, 금융안정을 챙기려면 물가안정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 신뢰의 추락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군사력에 의한 패권 추구가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푸틴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막을 내렸다고 말한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시계제로 상황을 만든 경제기술동맹

윤석열 정부의 실력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 있다. 지난달 [21세기 문법]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런데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한 미국의 구상에 한국의 동참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으로 한국의 기업과 산업,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구조화되었다. 공동성명은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경제기술을 안보 수단화시킨 경제기술동맹, 한미 동맹 내용의 글로벌화로 압축된다. 첫 번째 내용은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 사이에 이의가 없는 부분이다.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 ‘핵 대 핵’ 구도, 그리고 일본이 그토록 바라던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동북아 대립진영 구도 만들기에 동참을 선언한 것이다. 한미일 (군사)협력의 중요성 강조로 일각에서 한반도에 일본 자위대의 진출 우려를 제기하는 배경이다. 바이든이 한국 방문을 삼성전자 공장 방문으로 시작했고, 정의선 면담으로 한국 일정을 마쳤듯이 바이든의 한국 방문 목적은 경제기술동맹의 구축과 공급망의 안정적 구축에 있다. 지난해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포괄적 전략동맹’에서 경제기술의 협력은 안보 영역이나 동맹 차원이 아니었던 반면, 윤석열-바이든 회담에서는 경제기술이 안보 영역으로 흡수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기술을 안보 차원으로 바꾼 이번 ‘포괄적 전략동맹’을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의 뼈대로 만들기 위해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포괄적 전략동맹의 글로벌화’에 해당한다. 문제는 경제기술을 안보의 수단으로 삼은 한미 경제기술동맹이나 이를 지역적, 국제적으로 구현시키려는 IPEF는 사실상 중국의 반도체와 전기차, 디지털 경제생태계 구축 등을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중국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번 한미 경제동맹의 의도를 중국 고립화로 규정하며 반발하는 이유이다. 산업화에 뒤처졌던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선진국형 ‘디지털 경제생태계’를 추구했고, 이를 위해 선진국형 반도체 산업생태계 구축을 추진했다. 바이든 미국은 중국이 플랫폼 경제나 전기차 등 미래차에서 위협 대상이 되지 않도록 파운드리 강자인 TSMC와 메모리 반도체의 강자인 삼성전자를 중국으로부터 단절시키고, 미국 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메모리 반도체와 전기차의 미국 내 생산 확충이 필요하다. 한미 경제기술동맹이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국가에 대해 반도체나 배터리 등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 심사나 수출 관리의 협력을 위해 국가안보실(NSC)에 경제안보대화를 포함하고,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복원 정상회의(Summit on Global Supply Chain Resilience)’와 장관회의 신설을 핵심 내용으로 담은 이유이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은 경제기술을 국가안보와 연결한 포괄적 전략동맹의 목표를 IPEF에 반영해 중국을 고립시키고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윤석열-바이든>표 포괄적 전략동맹이 ‘민주주의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 증진, 부패 척결, 인권 증진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성격을 규정한 이유이다. 이러한 목표는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패권 유지에 방해가 되는 러시아 등에도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의 목표를 지역적,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 ‘스스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한국을 미국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인권 보호와 정보의 흐름을 보장하는) 개방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육성하고, 개방·투명·보안이 확보되는 5G와 6G 개발 등을 위해 ‘디지털 권위주의(digital authoritarianism)’ 위협에 공동 대응을 천명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배격을 적시했다. IPEF의 성공적 출범을 위해 미국으로서는 인도와 아세안의 참여를 만들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인도와 아세안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 강요를 거부해왔고, 그 연장선에서 미·중의 균형을 추구해왔던 한국의 역할을 기대해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한 미국을 선택함으로써 한국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한국의 참여가 거북할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의 성과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한 경제기술동맹으로 기업 경영 및 산업구조는 불확실성이 구조화됐고, 이로 인해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도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해외 수입 품목 중 거의 50%가 중국 의존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한국의 기업과 산업, 경제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됐다. (미국 전략의 종속변수가 되기를 선택한) 윤석열 정부는 (현 시기 패권 충돌이 만들어내는) 마이너스(-) 섬 게임에서 대한민국을 ‘동북아의 우크라이나’로 만들고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마이너스 섬’ 게임 시대의 리더십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나도 피해를 보는 ‘마이너스(-) 섬’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경제학에서는 멍청하다(stupid)고 한다. 금융위기 이후 표면화된 미·중 경제전쟁에서 시작된 탈세계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냉전 해체가 가져온 세계화란 다름 아닌 경제의 전지구적 통합이었고, 인터넷 및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류 사회는 하나로 통합된 초연결 시대로 진입했다. 그런 점에서 탈세계화란 이미 깊숙이 연결되고 통합된 세계를 (인공적으로) 파편화시키겠다는 것이고, 그 충격은 (공급망을 중심으로 한) 경제생태계의 와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경제에 드리우는 먹구름은 바로 그 충격의 산물이다. 세계경제는 ‘공급망 충격’발 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큰 효과가 없는) 긴축을 강요받고 있고, 그 결과 자기파멸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량을 회수한다고 (전쟁이 폭등시킨) 유가나 곡물이나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같이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경상수지가 취약한) 개도국이나 신흥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커질 것이고, 그 결과 정치적 불안정도 심화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하나로 통합된 초연결 세계는 상호의존의 심화를 의미하고, 그에 따라 협력과 연대는 글로벌 공공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계가 협력보다 대립이 심화하는 근본적 이유는 ‘20세기 패권주의 세계관’과 ‘21세기 통합된 초연결 세계’의 불일치(mismatch) 때문이다. 특히, 패권주의 시대를 주도했던 미국과 서유럽과 일본 등은 (금융위기와 팬데믹 등으로) 지난 20년간 경제력이 쇠퇴하면서 20세기식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35%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76%까지 추격했다. 격차 축소는 중국의 고속성장도 한몫을 했지만, 21세기 이후 미국의 성장 둔화도 이바지했다.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0년대 3.3%에서 2001~2007년은 2.5%, 2008~2021년은 1.6%로 하락해왔다. 특히 노동생산성은 1990년대부터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연평균 2.2%로 증가했으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1.5%로 하락했다. 원인은 대공황에 견주는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도 미국 사회는 금융위기의 최대 요인으로 지적되는 불평등 해소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엘리트층이 세금 부담의 증가를 통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한) 불평등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일반정부 부채(D2) 기준으로 GDP 대비 132.6%나 되는 상황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재정 투입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국채 이자 부담으로 금리의 빠른 인상을 포함한 통화정책 정상화도 쉽지 않다. 유럽 경제도 (독일 정도를 제외하고 북유럽국조차) 달러 기준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20년간 전쟁을 했음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야반도주(?)하듯이 철수한 미국이 (상당한 비용 지불 없이 유럽과 일본 등의 도움만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을 제압할 수 있겠는가? 바이든이 트럼프식의 대중 경제 보복을 승계(?)하고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시도하지만,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중국의 상품 수출 증가율은 세계 평균 10.8%를 크게 추월한 약 30%에 달했고, 중국이 유치한 해외직접투자(FDI)도 전년보다 32% 늘어난 3천340억 달러로 중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뒤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중국에서 사업하는 많은 미국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처럼 대중 압박도 버거운 상태에서 푸틴 정권의 와해를 시도하고 있지만,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 원유 수입국인 인도가 비협조적이다. 게다가 미국은 사실상 세계 경제의 공공재인 달러결제시스템(SWIFT)을 무기화함으로써 달러 의존 축소의 가속화라는 부메랑을 맞이할 것이다. 이처럼 다원화된 세계는 국가 간 협력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패권주의 세계관이 글로벌 경제생태계를 파편화시키며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로 통합된 초연결 세계에서 탈세계화는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화가치의 하락으로 이중 충격을 받는) 신흥국이, 그리고 한 국가 내에서도 저소득층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기에 탈세계화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 공동체는 파편화되며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원이 없고 수출 의존이 높아 타격이 클 수밖에 없고, 다른 한편 팬데믹이라는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국제 연대와 협력을 주도해왔던) 한국은 국제정책 협력이라는 소프트파워 리더십을 발휘해 탈세계화 충격을 최소화시켜야만 한다. 윤석열 정부의 실력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우크라이나 비극 : 국가의 힘과 대통령의 조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가 경제라는 입장과 힘을 통한 평화의 유지 입장이 충돌한다. 그런데 전자가 힘의 중요성을 외면한 적도 없는데 평화가 경제는 힘이 없는 평화라는 딱지를 붙인다. 실제로 전자의 견해를 대변하는 민주당 정부에서 국방비 예산이나 방위력 개선비 증가율 모두 더 높았다. 그 결과 현재 군사력도 전 세계 6위까지 올라갔다. 안보는 국가공동체의 (잠재적) 리스크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는 일이다. 국가의 힘을 키우는 것에 표면상 이견은 없다.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둘러싸고 지혜의 경쟁만이 있어야 한다. 국가안보의 초당적 대응을 얘기하는 배경이다. 초당적 대응이라도 최종 결정권자인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리더는 안보위기 관리역량과 더불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또한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비극은 국가의 힘과 더불어 리더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 비극은 무엇보다 외부개입을 불러들인 내부 분열이 화근의 시작이었다. 국민통합은 정치의 문제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비극은 정치실패의 결과물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국민통합의 중요성이 부각하며, 유사한 지정학적 조건을 갖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 2차 법정토론에서 정치개혁이 주요 이슈로 부상한 배경이다. 통합정치는 소외되는 국민을 최소화시키는 문제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강화를 의미한다.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꾸고, 여야정 정책협력과 국가안보의 초당적 대응의 제도화가 수면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국민통합과 더불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소프트파워의 확보다. 지정학적 중간국의 경우 외교적 자율성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비슷한 처지의 많은 국가 간 연대를 주도할 힘이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의 원천은 문화와 가치, 국제정책 등이다. 다행히 최근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주목을 받고 있고, 그 원천으로 활기차고 성공적인 민주주의 창출이 지적되고 있다. 경제적 성공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K-문화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한 단계 도약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주지하듯이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대한민국을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하였다. 이는 우연이 아닐 뿐 아니라 정치인들은 이를 한국 소프트파워의 분기점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팬데믹은 개도국에 1차 타격과 더불어 백신 불평등으로 2차 타격까지 입혔다. 그런데 팬데믹 위기의 와중에 새로운 방역 문법을 만들어낸 한국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모두가 자유로워지기 전에 엔데믹은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의 자유(2020년 5월 73차 WHO 초청 연설)에 개도국은 공감을 보냈다. 여기에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미국은 (백신 공급을 매개로 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해야 했고,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 역부족이었기에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에 대한 합의가 나왔고, 그 연장선에서 지난해 6월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가 UN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국으로 변경된 것이었다. 당시 지위 변경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 개도국 그룹이었는데, 선진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개도국으로서는,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인 백신 확보와 관련하여, 한국이 자신들의 염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의 염원은 단순히 백신을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백신 자급화를 위해 백신․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 교육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허브가 필요했다. 한국의 WHO 인력양성 허브 선정은 네 가지 주요 의미가 있다. 첫째, 개도국은 선진국에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요구해왔는데 한국이 처음으로 물고기 잡는 법을 지원하는 선진국으로 나선 것이다. 둘째, 세계 최대 당면과제인 팬데믹을 해결하려면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고 글로벌 보건의료 안전망을 갖춰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한국이 주도함으로써 한국의 위상이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셋째, 한국이 바이오산업 선도국으로 점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날 주요 혁신이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교육과정에 참여한 세계 청년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은 한국이 바이오산업의 선도국으로 부상하는데 핵심 자산의 역할을 할 것이다. 넷째, 기존 선진국이 전후 (의식의 식민화를 통해) 자신이 지배한 국가의 엘리트 구축을 시도한 것과 달리 대한민국은 홍익의 관점에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멋진(cool) 나라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는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한 K-문화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안보에 중요한 국가 간 연대의 핵심인 소프트파워는 K-문화와 더불어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통합정치 역시 민주주의 확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신념은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제1 요건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2030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길

나는 국민에 고용된 거야! 그러니 약자의 편에 서는 관료가 될 거야! 넷플릭스 드라마 신문기자 중에 남편이 공무원인 부부간 대화다.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면 무지한 사람 중에는 좌파 같은 소리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무지한 사람들이다. 우파의 가치란 정치는 민주주의 원리로, 그리고 경제는 시장의 원리로 사회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경제를 시장의 원리에 맡기자는 주장은 그 방식이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은 (공정) 경쟁의 원리에 맡겨야 하고, 경쟁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기에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리고 이 불평등은 경쟁이 공정하지 못할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그 불평등은 사회 갈등의 원인이자 심지어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상식이다. 불평등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민주주의가 해왔다.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수백 년 지속한 이유다.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의 세계와 달리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계다. 그리고 한 사회 50% 이상의 소득은 일반적으로 사회 평균 소득보다 낮다. 따라서 정확하게 1인 1표의 원리가 작동하면 국가는 약자의 편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국가 자원(특히 재정자원)이 약자에게 유리하게 배분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부자에 대한 누진세가 강화되고, 빈자에 대한 공적 지원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가 조세의 기능 중 하나를 소득 재분배로 설정한 이유다. 이러한 약자친화적 정부 운영을 싫어하는, 즉 부자의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부유층들은 국민을 파편화2022원자화시키는 국민 갈라치기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른바 분할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이다. 노동자가 개인으로 파편화돼 사용자인 자본 측과 협상하면 기울어진 역학 관계 때문에 불리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반면, (연대해) 조직노동자로 대응하면 불공정한 계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사적으로 사용자 집단인 자본 측이 끝없이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한 배경이다. 좋은 정치란 사회 구성원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주는 일이다. 사회통합은 그 결과물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줄 자신이 없을 때 정치는 갈라치기의 유혹에 빠진다. 사회분열은 그 결과물이다. 국가의 공적 자원을 사익 추구의 대상으로 삼는 집단일수록 갈라치기 전략을 극대화한다. 사회분열이 공동체에 끼치는 피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갈라치기는 특히 선거 과정에 고조된다. 이념 갈라치기와 지역 갈라치기는 갈라치기의 전통적 수단이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갈라치기를 만들어낸다. 기술변화와 그에 따른 경제의 플랫폼화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제생태계가 부상하면서 그 충격이 2030, 특히 20대에게 가장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사업모델은 전통 산업처럼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고용 관계 및 기업조직의 유연화로 노동 및 고용조건도 불안정해진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그리해 절망감이 크고 분노를 표현할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다. 2030 중 남성, 특히 이대남의 반페미 정서에 기댄 젠더 갈라치기 선거 전략이 정치권에 부상한 배경이고, 여성가족부가 희생양이 된 배경이다. 갈라치기는 논리만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사실 청년 남성이나 청년 여성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사실 젠더 갈등의 해법은 단순하다. 양성평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양성평등은 구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교육의 변화는 물론이고 문화 변화도 필요하듯이 시간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양성평등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없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2030은 금융 접근 기회의 구조적 불공정으로 자산 불평등에 가장 노출된 세대다. 유동성과 자산가격 급등을 자산축적의 기회로 삼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문제는 이념이나 지역 갈라치기에서 평범한 국민 누구도 승리자가 된 적이 없듯이 젠더 갈라치기에서도 2030은 정치싸움의 소모품일 뿐이라는 점이다. 2030이 승리자가 되는 길은 미래에 대한 불안 대신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2030 앞에 놓여 있는 불공정과 불평등 격차 해소를 정치에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소모품이 아닌, 2030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길이고, (이념이나 지역 갈라치기에 휩쓸렸던) 기성세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될 것이다. 최배근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우리가 서 있는 곳과 가야 할 곳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돈의 이동 방향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 개 기업(애플, 약 2.9조 달러)의 가치가 200여개 국가 중 경제규모에서 5위인 영국(2020년 GDP 약 2.7조 달러)보다 크고, 암호화폐의 총 가치(2021년 11월 기준, 약 3조 달러)가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한국의 총통화량을 넘어서고, 메타버스 가상 부동산이 430만 달러(약 51억 원)에 거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과 돈 등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뀔 때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듯이, 산업사회 생태계에서 (디지털상에 모든 사람과 그들의 삶을 연결하는) 디지털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디지털 생태계의 세상은 산업문명과 다른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디지털 생태계로의 이행은 어렵다. 강 생태계와 사막 생태계에 살아가는 생명체가 다르고, 생명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자연환경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농업사회 생태계와 산업사회 생태계는 각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가치관 및 세계관이 다르고, 사회운영 원리가 다르고,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방식이 다르기에 문명과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태계는 고정 형태가 아니라 계속 진화한다. 산업사회와 산업문명이 지난 수백 년간 진화해왔듯이 디지털 생태계는 이제 출발을 했을 뿐 계속 진화해갈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생태계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문명 전환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문명을 이해해야만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 적응대응할 수 있다. 디지털 문명의 특성들은 디지털 생태계를 열고 있는 플랫폼 사업모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플랫폼 사업모델은 디지털 상에 모든 것을 연결하여 가치를 공동창조한다. 따라서 이익 공유가 필수적이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세상은 위계와 거리가 멀고 (남녀노소부터 성소수자 등까지) 어떠한 차별도 용납되지 않는 개방적 세계이다. 디지털상에서 연결을 통해 함께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소통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고, 능동성을 갖고 협력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플랫폼 사업모델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는 (물적 요소가 아닌) 양질의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사업화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상의 플랫폼 사업모델 특성들에서 보듯이 첫째, 디지털 생태계는 (상대를 이롭게 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타자리(利他自利) 가치관을 갖는 새로운 인간형을 요구한다. 플랫폼 사업모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유튜브 포함) 구글서비스나 애플의 앱스토어 모델, 그리고 이들 모델에서 파생한 페이스북, 우버, 에어비앤비 사업모델 등이 모두 이타자리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플랫폼 사업모델은 주변 사업으로의 플랫폼 확장이나 (2차 스마트 모빌리티인) 미래차 플랫폼 구축 경쟁, 심지어 모든 것을 디지털상에 담겠다는 메타버스 만들기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앱스토어 모델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플랫폼에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솔루션 만들기에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플랫폼 기업들이 대학 졸업장을 더는 고용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듯이 산업사회의 교육방식이 솔루션 만들기에 필요한 사람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한민국 국민은 (디지털 생태계에 친화적인) 홍익문화의 DNA를 갖고 있다. 한국의 문화는 흔히 눈치문화로 불렸다. 눈치는 부정적인 비굴함과 상대에 대한 배려(공감성)라는 긍정성의 양면성을 갖는다. 그런데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가 눈치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상당 정도 해소시켰다. 공감역량이 뒷받침된 자의식의 성장이 디지털기술과 더불어 K-문화를 폭발시키는 배경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K-문화를 활용해) 제조업 의존적인 경제에서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 및 산업체계의 다양화라는 산업재편, 지방소멸, 청년 일자리라는 서로 맞물린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20세기의 전통산업에 K-문화 콘텐츠 입히기, 지역사회경제의 (블록체인형) 플랫폼화, 지역 무형지식재산의 NFT 만들기 등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위해 청년을 중심으로 국민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디지털 생태계로의 전환을 위해 새로운 (경제)기본권의 도입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인 이유다. 이와 더불어 미국형 플랫폼 사업모델의 한계를 넘기 위해, 즉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함께 새로운 답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는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교육 대전환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교육혁명, 대한민국 대전환의 출발점

청년은 현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얘기가 진부하게 들리는 사람은 시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의 시대에 사는 보통사람들은 소득이 5분의 1에 불과했던 30년 전보다, 지금의 5%에 불과했던 4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여유가 없다는 얘기를 한다.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기성세대는 청년세대보다 불평할 자격이 없다. 현재의 사회를 만든 주체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선택할 자격이 없듯이 청년세대에게 현 사회는 선택할 수 없는 상수다. 21세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21세기에 태어난 청년의 고통은 기성세대가 만든 20세기 문법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부모세대보다 더 많이 공부한 청년이 일자리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유는 현 학교교육시스템이 일자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의 기업들은 직원 채용할 때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대학 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미국에서 대학이 기업의 버림을 받는 현실이다. 경제이론(인적자원론)에 따르면 기업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채용하고, 신입 사원의 생산성은 교육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솔직히 대부분 기성세대가 자녀를 어떻게 해서든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이유도 자녀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않은가. 기업이 대학 졸업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대학교육을 포함 학교교육시스템이 청년들이 관심 있는 기업들의 업무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0세기 학교교육시스템으로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축소되면서 능력(성적)에 따른 공정주의가 강화하는 배경이고, 많은 수능 만점자들이 신규 진출 숫자를 제한해 밥그릇을 지키는 의사나 변호사 등 20세기의 대표적 직업군에 종사하는 배경이다. 대학이 오늘날 기업들에 버림을 받는 이유는 산업사회의 산물인 학교교육시스템과 IT 및 인터넷 기술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업모델의 가치창출 방식 간 불일치 때문이다. 미국의 시대인 20세기 미국경제의 핵심산업인 제조업의 상징 기업인 GE의 주가는 2000년 정점을 찍고 하락 추세가 지속하다가 2018년 6월에는 다우지수에서 퇴출됐다. GE의 쇠퇴 속에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이른바 플랫폼 사업모델(디지털 생태계)이 부상했다. 양자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일단 기업가치에서 20세기 기업들은 대체로 5천억달러를 넘기 어려웠다. 그런데 후자는 2조5천억달러까지 넘어섰다. 경제 규모(GDP)가 애플 등의 기업가치를 넘는 국가가 7개에 불과할 정도로 새로운 사업모델의 등장으로 오늘날 기업은 국민경제 단위를 넘어서게 됐다. 반면 기업가치가 1천200억달러에 불과한 폭스바겐의 직원이 30만7천명이 넘는 반면, 2조6천억달러의 애플 직원은 15만4천명에 불과하다. 기업가치와 고용 규모의 상관성이 깨진 것이다. (과거 도시화 과정에서 보았듯이) 기업가치가 높은 사업모델로 사람과 자본 등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현재의 학교교육시스템이 새로운 사업모델의 가치창출에 기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플랫폼 사업모델이 수반한 인공지능(AI) 기술과의 공존으로 기존에 존재하는 답을 찾는 교육은 무의미하다. 플랫폼 사업모델의 가치창출은 데이터 활용 및 AI 기술의 지원으로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역량을 요구한다. 즉 좋은 아이디어와 더불어 그 아이디어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요구한다. 창의성(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력(cooperation) 등 4C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자신이 수행할 직무에 흥미를 갖고 다른 사람과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기업이 채용 기준으로 삼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 현실은?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 같은 인간을 만드는 찍어내기 교육, 극단적인 경쟁으로 내모는 줄세우기 교육을 고집하는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청년 문제는 당사자를 넘어 공동체와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결혼과 출산에 소극적 혹은 부정적 사고로 이어지며 저출산과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로 특히 기회가 적은 지방을 중심으로 지방소멸 문제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년을 시대 부적응자로 만드는 현재의 학교교육시스템은 기업에는 새로운 수익사업 창출 실패로, 그리고 국가 경제에는 산업생태계의 활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배근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부동산 정의, 잘못 낀 첫 단추의 정상화로

LH 사태나 개발사업에서 민간개발업자가 취득하는 천문학적 수익은 부동산 정의 없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가 대외적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대통령이 올해 두 차례나 사과할 정도로 부동산 정의 실현에 실패한 원인도 부동산을 매개로 한 부패카르텔을 해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에서 강준현 의원이 공개한 노무현 정부 이래 역대 정부의 신규 준공(입주) 주택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연평균 54만6천315호로 두 번째로 많았던 박근혜 정부때보다 21.3%나 증가했다. 수도권과 서울의 주택도 각각 36.3%와 3.6%가 증가했다. 아파트는 47.2%나 증가했는데, 특히 수도권과 서울에서 각각 81.4%와 36.3%가 증가했다. 물론 이 기간 가구 수도 급증했다. 2016년 대비 2020년까지 전국, 수도권, 서울의 가구 수는 각각 8.3%, 9.9%, 5.4%가 증가했다. 그러나 가구 수 증가를 고려해도 문재인 정부에서 주택 공급량은 박근혜 정부때보다 더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이유가 주택 공급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돈이 많이 풀린 이유와 더불어 재벌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제관료, 이른바 모피아의 의도적 방해 때문이었다. 투기수요에 의한 불로소득 차단과 질 좋은 장기공공임대주택의 대규모 공급, 그리고 가계부채 관리 등을 목표로 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다주택 소유의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기재부(2017년 9월)는 보유세 강화를 거부했고, 심지어 세제 혜택(2017년 12월)을 통해 민간임대사업 활성화, 즉 다주택 소유를 역으로 장려했다. 게다가 금융위원회(2018년 1월)는 투기지역 내 대출 억제 조치에서 임대사업자는 제외하는 특혜를 제공한다. 그 결과 임대사업자 증가는 박근혜 정부 4년간 32만1천명에서 문재인 정부 4년간 72만7천명으로 증가폭이 두 배가 훨씬 넘었다. 천준호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법인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법인 임대사업자가 지난 11개월(2020년 10월27일~2021년 9월30일)간 임대사업을 등록한 법인이 매입한 주택은 약 4만7천채였는데 이 중 3억원 이하 주택이 77%가 넘었다. 그리고 주택구입 자금 중 차입이 68%에 달했다. 금융 지원으로 서민 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입함으로써 서민 주택 가격을 상승시킨 것이다. 모피아는 기본적으로 공공임대를 선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관련된 주택도시기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약 80조원이었으나 문재인 정부 때는 2019년까지 최대 74조6천억원에 불과했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면 그만큼 민간이 공급하는 주택 수요가 줄어들고, 이를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은 싫어한다. 은행 영업의 주요 부분이 주택금융이기 때문이다. 가구 수 증가를 주도하는 것은 1인 가구이고, 특히 2016년 대비 2020년까지 약 27% 증가한 수도권 1인 가구가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 1인 가구 증가를 주도한 것은 상대적으로 주택구입 능력이 부족한 20~34세 청년층 1인 가구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는 29% 이상, 수도권 전체는 35%가 증가했다. 따라서 청년층 등 1인 가구를 위한 장기공공임대 공급은 주거 정의에 필수조건이다. 모피아의 엇박자 정책은 풀린 돈과 더불어 가계부채를 급증시켰다.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은 2021년 2분기 기준 약 56%에 달한다. GDP 대비 가계부채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3월 76.6%에서 2017년 3월 87.3%로 4년간 10.7%p 증가했으나 2021년 3월 104.9%로 문재인 정부 4년간은 17.6%p나 증가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와 금융 당국은 주택시장 과열 경고를 내보내고, 가계부채 총량관리를 위해 대출 억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상환 능력 기준의 강화나 갭투자 방지를 위한 전세대출 억제 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수요자나 서민 등의 피해로 이어진다. 이 와중에 금융위원회는 대부업체에 대한 시중은행의 대출을 허용해주고,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없는 경제적 취약계층을 대부업체로 밀어내고 있다. 사실, 가계대출은 다주택 소유자 등 부동산 부유층이 집중적으로 이용했다. 2020년 기준 부동산자산 상위 2%의 가계부채 비율은 317%인 반면 하위 30%는 72%에 불과하다.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가계부채를 많이 이용한 다주택 소유자의 대출을 회수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는 부동산 카르텔의 주장대로 공급 부족이 아니라 모피아의 저항을 넘어서지 못한 결과였다. 최배근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불평등 해결 없이 금융위기는 불가피

스페인의 잃어버린 12년! 유로화 도입 이후 금리가 낮은 독일 등에서 스페인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유동성 증대에 따른 금리 하락은 부동 산시장과 건설 경기 붐, 그리고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약 3배나 증가한 유동성 공급에 따라 주택 실질가격은 1998년부터 금융위기 직전까지 연 9%씩 상승해 10년 만에 다시 2.3 배 올랐다. 30%대에 있던 가계부채는 80%대 까지 상승했고, GDP도 2.7배나 상승했다. 금융위기 발발은 안전지대로 자금유출, 주택가 격 하락, 부실 은행에 공적자금 투입, 국가채무 급증과 가계부채 구조조정, 경기침체와 금융완화 지속으로 전환됐다. 금융위기와 더불어 주택가격은 45% 하락했고, GDP 및 1인당 GDP는 각각 21%와 23% 이상 감소했다. 가계부채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스페인 국가채무는 36.7%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139.2%까지 급등했다. 스페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과 영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의 가계부채발 금융위기는 가계가 붕괴하면 국가재정도 붕괴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가계부채발 금융위기는 인재(人災)다. 한국은 현재의 상태가 지속하는 한 가계부채발 금융위기는 피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4년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폭은 GDP 대비 17.6% 포인 트(p)로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하는 43개국 중 1위이다. 가계부채발 금융위기에 대한 경험을 가진 미국이 3.2%p, 영국이 5.7%p, 이탈리아가 4.4%p 증가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리스가 -1.1%p, 포르투갈은 3.5%p, 스페인이 0.8%p, 아일랜드가 17.7%p로 오히려 감소했다. 또한, 코로나19 상황(2019년 말부터 2021년 1분기 말 사이)에서도 한국은 9.5% 포인트가 증가한 반면 미국과 유로존과 일본 등은 각각 4.1% 포인트, 5.2% 포인트, 5.7% 포인트가 증가했을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가계부채를 방어할 수 있었는가? 이 국가들은 모두 국가채무의 규모가 큰 나라들 임에도 국가채무 증가로 방어한 것이다. 같은 기간에(국가채무 증가폭가계채무 증가폭) 비중을 보면 한국은 0.4배에 불과한 반면 미국과 유로존은 각각 6.3배와 4.8배나 된다. 소득이 높을수록 채무 감당 능력이 높다는 점에서 부채는 소득 대비 비중이 중요하다. 금융위기 발발 직전 미국의(부동산자산가계소득) 비율이 5.5배가 채 안 됐다. 그런데 2020년 말 한국 은 7.2배이다. 문제를 알면서 방치하는 것은 죄악이다. 가계부채발 금융위기가 터지면 한국경제는(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의 가계부채(GDP 대비)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40%대 중반 정도에서 안정적이었다. 외환위기 이후(카드사태 때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계속 증가해왔다. 가계부채는 근본적으로 금융의 탈선에 따른 불평등에서 비롯한다. (단기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금융논리의 확산은 복지 축소와 기업 구조조정 상시화 등으로 불평등을심화하고, 다른 분야와 달리 자산 대부분이 대출인 금융(회사)의 성장은 사회의 채무화를 의미한다. 불평등 심화는 총수요 증가 둔화 기업 투자 및 성장 둔화 금리 인하 자산가격 상 승 일반인의 추격 매수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금융위기와 금융부문 구제 국가채무 증가와 가계 지원 축소 불평등 심화의 악순환을 만들어왔다. 예를 들어, GDP 대비 가계소비지출 비중은 2002년 59.1%에서 2007년 52.9%, 2016 년에는 46.4%, 지난해에는 44.6%까지 감소했 다. 가계부채 증가가 내수를 취약하게 하고, 성장을 둔화시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빠르게 증가시킨 것이다. 가계부채를 해결하려면 금융의 탈선을 바로 잡고 불평등을 해소해야만 한다. 공공성을 외 면하고 수익성만 추구하는 금융의 탈선을 방치 하는 한 금리 인하는 부유층의 자산축적 수단 으로 전락한다. 예를 들어, 2020년 3월 기준 부동산자산 평균 30억7천600만원을 보유한 최상 위 2%의 가계부채비율은 평균 317%인 반면, 부 동산자산을 거의 보유하지 못하는 하위 30% 는 72%에 불과했다. 상위 2% 가구 평균의 연간 소득도 1억6천631만원으로 하위 30% 가구 평 균의 연간 소득 3천795만원의 4.4배나 된다. 자산과 소득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저금리로 금융자원을 이용해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가진 반면, 담보 자산도 없고 소득이 낮아 신용도가 낮은 하위층은 은행 접근기회에서 배제되고 고금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장 기울어진 운동장인 금융이 빈익빈 부익부의 원천이 되는 것 이다. 모든 국민에게 금융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해줘야 하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문법] 한국은행을 국민에게

지난주는 중앙은행의 시간이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p 인상 했고, 연준의 파월 의장은 연내 테이퍼링 시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모두 예상된 결과였고 모두 보통사람의 어려운 경제적 삶을 개선해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테이퍼링은 금융긴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팽창 속도를 줄여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찍어낸 통화량이 줄어드는 것은 내년 5월 이후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은 한은에 초점을 맞추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 인상하면서 경기회복 흐름의 지속, 물가상승 압력의 증가, 그동안의 금융완화 기조에 따른 금융불균형 우려 등을 지적했다. 경기회복 속에 물가상승 압력의 증가로 금리를 인상한다면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기회복은 양극화를 보이고, 물가상승도 공급측 요인 및 기저효과라는 점에서 단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금리를 인상한다고 단기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없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전에 비해 2.6% 올라 물가목표치 2%를 넘었지만, 공급측 요인인 농산품과 지난해 크게 하락했던 석유류 가격 상승률이 1.5% 포인트 이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한은의 물가관리는 약 3~4년에 걸친 중기적 시계의 기준이고, 지난 3년간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도 되지 않는다. 금리 인상의 결정적 요인은 과도한 집값 상승과 그에 따라 위험 수준에 이른 가계부채 때문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이 효과는 거두기 어려우면서 부작용만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은의 금리 인상 조치는 가계부채 폭증에 따른 금융 취약성이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한 면피성 조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을 자신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은이 금융불균형 지표의 기준으로 삼는 대표적 지표가 신용갭이다. GDP 대비 민간부문 대출 규모의 비중이 균형값을 초과하는 정도로 정의하는 신용갭이 2020년에 (10% 초과할 경우인) 경보단계를 한참 뛰어넘는 18.4%였다. 외환위기 때도 13.2%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역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경착륙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이 문제는 부동산정책과 통화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 억제 또한 효과보다는 실수요자나 무리하게 대출을 얻어 추격매수에 뛰든 사람, 그리고 생계형 부채를 짊어진 서민들의 부담만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은행이 추가로 공급한 돈이 73조원이었고 시중의 총통화량이 495조원 이상이나 증가했지만, 증가한 돈이 실물경제나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유통속도가 코로나19 직전에 0.659에서 지난해에는 0.605로 떨어졌다. 그런데 올해 1분기에는 0.589로 하락이 지속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보통사람의 경제적 삶의 개선과는 무관함을 반증한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기준 돈을 벌어 이자도 갚을 수 없는 중소기업의 비중이 절반이 넘었다. 경기 후퇴기에 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은 부유층의 자산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다. 부동산자산 상위 0.2%의 가계부채 비율이 317%(평균 부채 3억7천만원)에 달하지만, 하위 30%는 72%(평균 부채 2천만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금융자원 접근의 구조적 불공정성으로 금융완화정책은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자산시장 과열만 조장한다.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하면서 불필요한 자산시장 과열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외면한 결과다. 중앙은행이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돈을 공급하는 방식은 시중은행을 통해 국민에게 빌려주는 방식(금융정책)과 정부에 돈을 빌려줘 재정지출로 국민에게 돈을 곱급하는 방식(재정정책)이 있다. 기본적으로 양자 모두 총통화량을 증가시킨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으나 전자는 시중은행과 민간의 채무를 늘리는 반면, 후자는 정부의 채무를 늘리는 차이가 존재한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출이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 정부채무는 늘어나지만, 가계부채는 늘지 않고 부동산시장 과열도 막을 수가 있다. 그 대신 은행 등 금융회사나 재벌(건설)자본 등은 그만큼 돈을 벌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은의 통화정책은 보통사람보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와 금융불균형이 심해진다. 그리고 도래할 책임 추궁에 대한 핑곗거리를 만들면서 또다시 어려운 사람이나 실수요자 등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을 자본에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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