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사실인데 뭐가 문제야?라는 말을 쓰고 들어왔다.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의로우며 공공의 안녕과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과연 사실은 항상 정의로울까? 2020년도 6월에 개봉한 결백이라는 영화가 있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과연 법은 다 정의의 편에 서 있는가?, 과연 사실만이 정의인가?라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며 이 사회에서 가지는 정의의 시스템 오류로 인해 뒷맛이 씁쓸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법이 지배하는 법치주의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법은 만인 앞에 공정해야 하고 공공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시스템이며, 이러한 법이 사실(fact)을 넘어 진실(truth)되고 정의(justice)롭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질문을 뱉어내지 못했다. 과연 사실과 진실은 항상 같은 말이며, 진실은 항상 정의의 편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진실과 정의라는 말과 마주하게 된다.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 없는 사실로 사실은 실제의 일을 뜻하며, 정의는 마땅하고 공정한 것을 말한다. 공공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마땅하고 공정하게 되기 위해 거짓 없는 사실이 필요하겠지만 사실이 과연 정의로운가?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No다. 과연 사실만을 말하는 세상은 정의롭고 공공의 안녕과 이익에 부합할까? 필자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실제로 교육역사제도생활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사실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며 전혀 정의롭지 않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손쉽게 알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리는 범죄자를 연행할 때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 하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이를 미란다 원칙이라 한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로 제정된 이 원칙은 미란다라는 청년이 납치, 강간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은 상태로 조사를 받으며 본인이 죄에 대해 자백을 하고, 자백자술서를 직접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던 일을 계기로 생겼다. 아무리 인권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이 경우 중범죄에 대해 사실은 정의로 결론됐는가? 사실이 난무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하는 것, 머리가 나쁜 사람에게 머리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 등을 사실이라는 이유로 얘기한다면 이 또한 정의로운가? 변하지 않는, 거짓 없는 사실을 우리는 진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원인(cause)이고 정의는 결과(effect)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정의로우려면 그 과정에서의 공동체의 공동선(共同善)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기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 내에서의 안녕과 이익을 위한 노력의 결과가 정의이기에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정의는 없다는 말을 한다. 이는 시대적, 상황적으로도 언제든 정의는 변할 수 있다는 말로, 거짓 없는 사실로 변하지 않는 진실과는 대조되는 말이다. 물론 진실을 외면한 정의는 살아남을 수는 없다. 진실과 정의가 늘 같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진실과 정의가 늘 합치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진지하게 공공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진실한 세상인지 아니면 정의로운 세상인지를. 윤준영 한세대학교 휴먼서비스대학원 공공정책학과 교수
오피니언
윤준영 한세대학교 휴먼서비스대학원 공공정책학과 교수
2022-03-01 12:49